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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느리게 쓴다. 이것이 저자 루이즈 디살보가 유명 작가들의 편지, 일기, 인터뷰 등을 조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을 47가지 버전이나 쓴 후에야 결정했다. 퓰리처상 수상자 마이클 샤본은 '텔레그래프 애비뉴'(Telegraph Avenue)를 완성하는 데 5년 가까이 걸렸다. 버지니아 울프는 하루 세 시간씩 글을 썼는데, 하루에 쓴 분량은 약 535자였다. 이는 창작 능력이 최고조로 달해 있을 때였다. 긴 말 할 것 없이 최고의 작가들이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보자. "예술의 대부분은 기교다. 기교를 배우려면 끈기 있게 시간을 버텨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르한 파묵(Orhan Pamuk) "하루에 두 페이지를 쓰면 주말 즈음에는 열 페이지가 되어 있..
글쓰기에 몰입된 상태의 그 독특한 감각. 그것을 몽유병 상태라 부르든, 최면 상태라 부르든, 명상 상태라 부르든, 알파파 상태라 부르든, 예술적 혼수 상태라 부르든, 그 상태로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진입한 후에는 유지할 수 있으며, 빠져나와서는 비판적 자아를 작동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작가의 핵심 능력이라고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 수업』에서 말한다. 모든 작가들은 저마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자기만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 의식은 천차만별이다. 승마, 뜨개질, 카드놀이, 산책, 조각, 바닦 닦기···. 하루키의 의식은 아마도 마라톤과 영문 번역일 것이다. 공통점은 요행이든 계획된 것이든 마음의 수면 저 뒤편으로 스스로 빠져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울 수 있다. 습관으로 만들 수..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처럼 행동하라(Act as if it were impossible to fail).′ 책 『깨어나 네 삶을 펼쳐라』(Wake Up and Live!, 1936년 첫 출간)의 핵심 메시지다. 메시지만 보면 그저 성공을 꿈꾸고 믿으라는 ′시크릿′류 자기계발서 같지만 다르다. 이 책의 방점은 ′행동′에 찍혀있다. 즉, 쓸데없이 고민하거나 걱정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무언가 이루고 싶은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에 돌입하라는 것이다. 하다 못해 관련 정보라도 스크랩을 시작하라. 알아보고, 찾아보고, 움직여보고, 가보고, 배워보라. 결과는 염두에 두지 마라. 그러면 몸이 마비되고 망상에 에너지가 낭비된다. 여기서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처럼′의 늬앙스는 ′반드시 성..
* 스포일러 경고 * 인간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라고 카를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도 서로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자기 실현의 욕망이다. 연인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상적인 남녀 관계에서 둘은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온전한 둘이 된다. 그런데 다른 성과 관계 맺는 방식은 자기 내면의 다른 성과 관계 맺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 너머에, 우리 내면에는 아니마(여성성)와 아니무스(남성성)라는 반대편 성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 내면의 다른 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허전함, 허무함, 외로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시달린다. 타키와 미츠하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로 서로의 성이 서로..
그리고 380만 년의 영원 문학이 끝났다, 근대문학이 끝났다, 예술이 끝났다, 세계는 끝났다, 역사는 끝났다, 이 시대는 특권적인 시작과 끝이고 역사상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종말론적 병적 사고는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종식된 5세기 무렵 암울한 말이 유럽을 떠돌았다. "세계는 늙었다." 로마의 영광은 사라졌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쇠퇴하고, 이제 우리는 지옥에 떨어지려 한다. 이제 세계의 종말이 오려 한다. 7세기에도 수도사 마르퀼프는 이 세계의 종말을, 어두운 비애를 열심히 설파했다. 8세기에는 '성 바르두전'이라는 책이 나와, 세상은 이제 끝이다, 더 이상의 변전은 없다, 결정적인 최후의 시대라고 썼다. 1000년도에는 다들 야단법석. 이 시절 기증문의 첫머리..
우리에게는 보인다: 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 지난 밤들 요약: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폭력은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 그곳도 넘어야 한다. 단지 문자를 쓰는 것'만'이 특권적으로 권력, 나아가 혁명에 속한다는 생각을. 루터파는 자신들을 뭐라 불렀을까? 근대인,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라 불렀다. 중세라는 호칭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든 것도 루터파. 그런데 14세기부터 16세기, 즉 루터가 출현하기 이전 오컴의 윌리엄을 필두로 하는 후기 스콜라학파도 자신들의 유명론을 가리켜 '근대의 길/방법'이라 불렀다. 또 있다. 12세기 중세 해석자 혁명에 참가한 법학자, 신학자 들이 이미..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 무함마드와 하디자의 혁명 멸망을 향해 쇠망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 한 남자가 기도한다. "언제까지입니까?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아무리 지나도 내일인 겁니까? 왜 저의 더러움이 바로 지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자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그는 집어 들고 읽었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읽었다. 그의 이름은 사도 바울 이래 최대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비주의의 역사는 죽임을 당하거나 광기를 무릅쓰고 읽거나의 역사. 여성 신비가 테레지아 앞에 예수가 나타나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마치 펼쳐진 책처럼 될 것이다." 신비가는 금지된 책을 읽고 유럽 역사에 남을 신학 문헌을,..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무엇인가. 성서를 읽는 운동. 루터는 무엇을 했는가? 성서를 읽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 '이상해질 정도'로 ―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다.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게다가 그 질서는 썩어빠졌다. 모든 사람이 그 질서에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를 제외하고.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루터가 말했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이고 명상이고 시련..
문학의 승리 참된 철학자, 예술가는 "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스테판 말라르메) 따른다. 어리석음을 택하라. 정보를 차단하라. 지식과 정보는 사람을 병들고 쇠약하게 한다.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질 들뢰즈).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또 설명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고, '전문가'들은 한 가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매달리고 있다. "제한과 미. 그대는 아름다운 교양을 가진 인간을 찾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마치 아름다운 지방을 찾을 때처럼 역시 제한된 전망과 광경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명히 전경적 인간들도 있다. 확실히 그들은 전경적인 지방처럼 교훈적이고 훌륭하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다." - 니체,..
1. 어째서 당신이 '젊은' 소설가인가? 내 나이 일흔일곱이지만 소설가로 입문한 것은 고작 28년 전으로 나는 매우 젊고 전도유망한 소설가이다. 앞으로도 50년 동안 훨씬 더 많은 책을 써내려갈 것이다. 2. 창조적 소설가의 특징은 무엇인가? 삶의 모순들을 펼쳐놓고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때로 소설가는 철학자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다. 3. 논문은 꼭 따분해야 하는가? 오히려 어떤 학문이라도 일종의 추리소설, 즉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 4. 왜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는가?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5.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6. 좀 더 친절하게 답해 달라 첫째,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