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인간 (34)
모험러의 책방
「오늘날 형식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데 따르는 퇴행적·환원주의적 영향이 가장 염려스러운 분야는 예술이다. 종족의 창의적 에너지는 예술에 가장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 어느 종족이든 그 사회에 적절하고 삶을 뒷받침해주며 사회를 성숙하게 해주는 신화와 의례는 창의적 선구자와 예술가의 통찰을 통해서만 생겨난다. ... 참된 힘을 가진 낭만주의는 당대의 형식을 깨고 새로운 형식으로 나아가지만, 형식을 아예 이루지 못해 분한 마음에서 박살내고 폄하하는 낭만주의도 있다. 고전주의 예술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형식이 어렵지 않은 고전주의는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형식을 가지고 유희할 수 있으며, 그것을 통해 자신의 창작 목표를 풍요롭고 생기 있게 표현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니체도 같은 생각일 것 같은데..
"인간 안에는 늘 짐승들의 피가 흐른다. 필요한 것에 만족할 때, 그 피는 안전하게 내부에 머무른다. 하지만 쾌락을 위해 신이 준 선물을 남용하기 시작할 때, 인간 안에서 각종 짐승의 피가 튀어나온다. 깨어있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언제나 짐승이 된다." - Tolstoy, Leo. The Greatest Short Stories of Leo Tolstoy . CDED. Kindle Edition. 각색. "The Imp ant the Crust".
「세계의 창조는 일회적 행위로서 이해해서는 안 되며, 신이 무시간적인 까닭에 끊임없이 이루어진다. 인간의 본래적 과제는 신과의 통일에 도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영혼의 가장 저급한 것이 하늘의 최상의 것보다 더 높기 때문이다. 사물들은 영혼 안에서 세계 안에서보다 더 가치 있다(설교 17). 여러 설교 구절들은 신에 대한 사랑에 의해 인간은 곧바로 신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에크하르트는 신의 탄생에 대해 말하는데, 거기서 신은 낳는 자일 뿐만 아니라 태어나는 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언제나 거듭해서 신이 인간에 의한 주관적 전유에 맡겨져 있음을 시사한다. "내가 신을 보는 눈은 신이 나를 보는 눈과 동일하다."(설교 13) … 그는 그리스도가 신의 아들임은 원리적으로 모든 인간에게 도달 가능한 것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유전학자 중 하나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볼티모어는 인간의 복잡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인간 게놈 안에 컴퓨터가 풀어내지 못한 유전자가 많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곤충이나 식물보다 엄청나게 복잡한 인간의 성질이 유전자 수가 많다는 데 기인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인간의 복잡성, 이를테면 놀랍도록 다양한 행동, 의식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능력, 절묘하게 몸의 균형을 잡는 능력, 외부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자신을 변화시켜 적응해가는 탁월한 능력, 학습 능력, 기억력, 뭐 더 나열할 필요도 없이 이러한 복잡성이 어디서 나오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남은 과제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한편에서 몇몇 과학자들이 '후성유전학(..
「인간은 과학적 예측을 무력화시키는, 이른바 자기충족적 예언을 실현하는 재귀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혹은 아주 인문학적으로 말해서 자유를 지닌 존재다. 과학이 인간을 해명하려는 순간 이제까지 견지해온 과학의 방법적 표준을 위반해야만 한다. 이는 또 다른 의미에서 과학 스스로의 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위기는 신화에서 형이상학으로, 다시금 형이상학에서 과학으로 이행할 때 반복되었던 위기이기도 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위기가 되풀이하여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서 위기의 양상은 언제나 달랐다. 그리고 그렇게 변화된 양상에 따라 학문의 주체인 인간에 대한 이해와 문제의식도 변하고 있다. 예컨대 포스트모던 시대의 탈형이상학적 경향은 형이상학적 주장에 대해, 그리고 독단적으로 보이는 ..
「라투르의 표현처럼 근대 과학이 이전 세대의 신비주의와 어두움으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해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기초한 객관성이라는 이념을 방패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해방의 이념은 결과적으로 기계론이라는 획일적 세계관 속에 자신을 가두게 되고, 그에 따라 낭만주의적 반동에 직면해야 했다. 이는 인간이라는 이중적인 존재자의 역동성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때로 합리적인, 그러나 온전히 합리적이지만은 않은 존재, 르네상스가 묻고, 칸트가 다시 물었던 것처럼 '인간'은 해명되지 않은 신비였다. 이로써 생겨나는 역동적인 과정은 학문 개념을 유동하게 만든다. 오래된 관념처럼, 진리가 변하지 않듯 또 본질이 변하지 않듯, 학문의 본성도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학문 역시 변화해가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서 초인이란 실현해야 할 이상이나 도달해야 할 목표를 표상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넘어서도록 고무시키는 그 어떤 것을 표상한다. 인간의 위대함은 그가 성취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땅 위에서 그의 일상적인 태도를 통해 증명하고 있는 충실성 속에 있다. "인간은 짐승과 위버멘쉬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것이다."[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니체는 뒤에서 실패와 치명적인 추락에도 불구하고 곡예사를 찬양했던 것이다. 소심하고 겁이 많은 군중들과..
「그렇다. 실제로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아직 선택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우리가 이미 한 선택들로 인해 과연 우리는 칸트가 그렸던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인지 아니면 그와 반대로 2세기 동안 삼위일체 원칙[영토/국민/국가의 동맹]이 부단히 주창되고, 단단히 자리 잡고 마음껏 장려되어온 후 현대의 모험이 시작된 당시보다 목표에서 훨씬 더 멀어진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단순히 인간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거기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인간적인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것이 담론의 대상이 되었을 때만 그렇게 될 수 있다. ······ 오직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함으..
「그러나 체계가 그 변화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기 위해서는 획일적이며 고착된 모형으로 축소되지 않아야 한다. 괘의 조합체계는 약정된 틀에 갇히지 않을 때만이 그 타당성을 지닌다. 변화는 미리 주어진 어떤 틀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운행사상이 진정 실재에 대한 이해에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운행 그 자체를 고정된 틀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운행이란 그 자체 속에 언제나 다름과 괴리와 새로움이 드러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왕부지는 의 고대 주석가들의 해석을 좇아 보다 깊이 있는 체계와 변형, 완벽성과 가변성을 연결하는 관계를 천착하였다. 모형이 모형인 이유는 삶이 그 자체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운행사상이 의미를 지니는 이유는 바로 그 ..
「그런데 이러한 시인의 소명이 사회학자의 소명과 관련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 사회학자들은 시를 거의 쓰지 않는다(우리 중에는 직업상의 일들로부터 안식년을 내어 글을 쓸 시간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가짜 시인'처럼 되는 것이 싫거나 '가짜 사회학자'가 되는 게 화가 난다면, 우리 역시 숨어 있는 인간의 가능성들을 발굴하는 진짜 시인이 하는 일과 비슷한 일을 해야만 한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명백하고 자명한 진실들의 벽, 오늘날 지배적인 어떤 이데올로기가 그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그 지배의 합당함을 입증 받는다면, 바로 그 이데올로기의 벽을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한 벽들을 허무는 것은 시인의 소명일 뿐 아니라 사회학자의 소명이기도 하다. 가능성들 앞에 ..
우리에게는 비이원성의 철학, 중용의 철학이 필요하다.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존재는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생각함으로써 존재하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도 참된 존재는 현존재이며, 죽음과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인간만이 현존재이다. 이들의 존재론 혹은 형이상학에서 참된 존재는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이 깔려 있다. 이것은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 규정된 것을 우선시하고 나머지 가치 개념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적 도구라는 입장에서 이분법적 사유들이 발생한다. 정신/육체, 이성/감성, 인간/자연, 남성/여성, 개발/미개발 등의 구도가 근대적 사유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 체계에 수반된 잘..
「[초목, 와석에도 양지가 있냐는 질문에 왕양명 선생의 답] 인간의 영이나 자연의 영이나 다 같다. 만일 초목, 와석에도 인간이 갖고 있는 양지가 없다면, 초목도 초목이라고 할 수 없으며, 와석도 와석이라고 할 수 없다. 어찌 초목, 와석에도 양지가 없겠는가. 또 천지도 사람 같은 양지가 없다면, 천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천지 만물이라는 것이 한 몸이다.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일점령명一點靈明"이다.」* 이에 대해 김흥호 선생의 해설 「하이데거가 말한 '인간은 무엇인가? 현존재現存在이다'와 같은 말이다. 다른 모든 만물도 모두 '존재자'인데 사람만이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독특한 지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보면 인간은 하나의 일점령명이라 할 수 있으며, 이것은 아주 유명한 말이다. 우주를 기름..
「인간은 인간으로서 용광로에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신이 된다.」* 14/10/22 * 미하일 나이미, 2014/06/23 - 의식의 4단계 2014/08/01 - 자유의지는 환상인가 실재인가? 미르다드의 서
「구름이 자신의 모양과 정체성을 영원히 고수하기 위해서 한 공간에 계속 머무르려고 애쓰며 삶을 허비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가? 결국 그 구름은 어리석은 노력으로 인해서 좌절과 허망함 말고 그 어떤 것을 얻게 될 것인가? 구름은 자신을 잃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구름이 죽어서 사라지지 않는 이상 자신의 진면목인 대양을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은 신을 품고 있는 구름이다. 자신을 비우지 못하면 인간은 자신을 발견할 수 없다. 이 얼마나 큰 비움의 환희인가!」* 14/10/17 * 미하일 나이미, 미르다드의 서 나는 누구인가
「내포 질서에서는 마음이 물질, 특히 몸을 접고(감싸고) 있다고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몸은 마음만이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 물질 우주 전체를 접고(감싸고) 있다. 이러한 몸과 마음의 관계는 사실 4장에서 이미 다루었다. 우리는 거기서 고차원 실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고차원 실재가 더 낮은 차원의 요소들로 투영된다. 이 요소들 사이에는 위치를 특정할 수 없고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관계도 성립하고, 몸과 마음의 관계와 같이 서로가 서로를 동시에 감싸고 있는 관계도 성립한다. 따라서 더 넓게, 더 깊게, 더 내밀히 들어가면 실재는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다. 실재는 더 높은 차원으로서 마음과 몸의 바탕(common ground)이면서 마음과 몸을 넘어서 있다. 따라서 몸과 마음은 단지 어느 정도로만 ..
괴델 불완전성 정리는 인간 이성의 한계와 동시에 인간 정신의 측량할 수 없는 깊이를 보여준다. 이성은 정신의 한 도구일 뿐이다. 인간에게는 이성뿐만 아니라 직관과 영감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인간은 인공지능 기계가 아니다. 「논리학자: 그래서 튜링 기계의 정식화에 의해서 발견한 기본적인 정리가 모두 그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 주의해주십시오. 괴델·튜링의 불완전성 정리는 어떤 튜링 기계도 모든 진리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처치의 정리는 튜링 기계가 언제 정지하는가를 사전에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령 인간 이성 혹은 인간 그 자체가 튜링 기계라면 이것들의 한계를 초월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운동선수: 이 심포지엄을 시작하면서 육상경기에서 사람..
「―인간은 왜 그런 착각(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을 하도록 만들어졌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이 없다면 '나'와 '자아'가 연결될 수가 없다. 매 순간마다 수백 가지 다른 이유들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나'라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가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을 했다는 스토리를 만들면 그 스토리를 통해 연관이 없는 점들을 연결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점들을 연결시켜주는 선이 결국 '나'라는 자아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 자체도 사실은 착각이다.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김대식(뇌과학 전공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 중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
「언젠가 벅민스터 풀러는 "자연은 인간이 계속 살아가도록 열심히 일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면서, "그러나 자연은 우리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들만이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14/07/08 * 윌리엄 애쉬워드,
* http://youtu.be/9Rhvxy0r2Do "생각해보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두 단계 밖에 없어요. 제일 처음인 '무의식적 무지'와 마지막인 '무의식적 앎'. 즉, 처음 레벨을 벗어나면 행복하게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마지막까지 가는 수 밖에 없어요." - 영상 중 위의 강의는 음악 외의 분야에도 적용될 뿐 아니라, 의식 일반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인간은 아직도 에덴동산 안에서 의식이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짐승과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 지복(bliss) 상태에 있는 신 사이 어디쯤 있다. 그래서 인간의 '간'자가 '사이 간間'자인 걸까? 괜히 니체가 사자의 단계를 넘어 인간 의식의 최종 단계를 어린아이로 비유한 게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의식과 이성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지의 단계..
「100년 넘게 마르크스 사회주의는 '사회에 의한 구제'를 약속하는 가장 강력한 세속신앙이었다. 특히 지식층에 있어서 마르크스 사회주의의 엄청난 매력은 그 복잡한 이데올로기나 비현실적이 되어 버린 경제학보다는 종교적인 약속에 있었다. 이제는 누구도 집단적인 힘이 완전한 사회, 혹은 완전에 가까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간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인류를 만들 수 있다고는 더욱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50년 전에는 그러한 사상이 일반적이었다. 사유재산의 폐지를 시작으로 여러 가지 사회정책이 인간을 바꾸어 새로운 종류의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은 비단 사회주의자만이 아니었다. 압도적으로 많은 수의 정치사상가가 그렇게 생각했다. 1989년과 1990년에 일어난 사건은 한 시대..
「모더니티의 인간학적 규정이 합리성(Rationality)이라고 한다면, 플레타르키아(민본성民本性)의 인간학적 규정은 합정리성(Reasonableness)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합리성은 인간의 이성(Reason)을 감정이나 현상론적 감각으로부터 분리시키지만, 합정리성은 인간의 이성을 칠정(七情)이라는 감정의 한 측면으로 귀속시킨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인간의 모든 생명현상을 느낌(Feeling)으로 일원화시킨다. 인간의 수학적 계산능력이라는 것도 인간의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고도화된 계산능력이라도 그것은 의식의 현상이며, 의식은 느낌의 고도화에서 발생하는 사태이다. 그것이 토톨로기적인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고 해서 몸의 느낌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헤겔이 보기에 기존 형이상학은 무한자를 인식하고자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무한자를 일상적 경험의 유한한 세계를 초월하는 어떤 것으로서 잘못 해석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헤겔에게 있어 신은 인간들이 그에게 의존하는 만큼이나 인간들에게 의존한다. 신적인 것이 그 자신을 마침내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활동과 자기인식을 통해서일 뿐이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의 자기인식과 활동이 없다면 신적인 자연본성은 확실히 여전히 실존하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하고 잠재적이며 미완성의 무규정적인 것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적인 것을 완전하게 하고 완성하며 실현함으로써 인간의 활동 그 자체가 신적이게 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의 활동을 통해서일 뿐이다. 사실상 오로지 우리의 활동을 통해서만 신적인 것이 그 자..
「이 책의 논제는 '진화 과정의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일부가 되는 것이 현재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과정에서 매순간 즐기는 최고의 방법' 이라는 점이다. 진화의 작동 원리와 거기서 우리가 맡은 역할을 이해하면, 현재의 세속적인 문화에서 찾지 못하는 방향과 목적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목표를 포기하고 장기적이고 보편적인 이익을 위해 봉사하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 그와 정반대다. 자신의 개성을 최대한 개발하면서 동시에 우주에서 진행되는 더 큰 과정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사람은, 인간이 결국 혼자라는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욱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바이기도 하지만, 역사에 수동적으로 쉽쓸리기보다는 그것을 만들어가는 편이 더 만족스럽다.」* 천인합일의 경지. 13/12/21 * 미하이 칙센트미..
인간이 먼저 바뀌어야 세상이 바뀌는가, 아니면 세상이 먼저 바뀌어야 인간이 바뀌는가.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했다. 「진보는 환영이 아니며 실제로 이루어지지만, 느리게 진행되고 언제나 실망스럽다. 늘 새로운 독재자가 낡은 것을 물려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독재자가 대체로 아주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엄연히 독재자다. 따라서 언제나 두 가지 관점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체제를 바꾸기 전까지 어떻게 인간 본성을 개선할 것인가 하는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 본성을 개선하지 않는 한 체제를 바꾼들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는 관점이다. 이 두 가지 관점은 각기 다른 사람에게 호소력을 지니며, 시기에 따라 번갈아 등장한다. 도덕주의자와 혁명가는 끊임없이 서로의 근거를 공격한다. 마르크스는 도덕주의..
"이 세계는 우리 인간 때문에 망가지고 있고. 우리 때문에 자연계와 지질계, 생물계뿐 아니라 그로부터 파생된 놀라우리만치 아름답고 독특한 문화 세계까지 모두 황폐하게 변해간다. 이런 세계는 이 우주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모르는 우주 어딘가에 미지의 생명체가 존재하길 기대하는 것은 현실성 없는 바람이다. 설사 지구 아닌 다른 곳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발견된다고 해도 이 멋진 행성을 우리 손으로 직접 파괴하고 더럽히는 행동은 아무래도 용납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는 인류를 비롯한 모든 생명의 엄청난 잠재력을, 그리고 무려 40억 년에 달하는 길고 긴 생물학적 변천사의 끝에서 수천 년에 걸쳐 우리가 쌓아올린 모든 것을 저버리고 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미래와 자연계의 미래를 파괴하고 있는 ..
"어떻게 제 마음이 빛을 발하게 만들 수 있겠나이까?" ― 반성하여라. "어떻게 반성합니까? 반성하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 반성한다는 것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너의 몸을 깨닫는 것이다. "나의 몸을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이오니이까?" ― 너의 몸에 구현되어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중략) "무언가 알쏭달송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뭔 말인지 명확히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이 기회에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인간은 몸이다. ... "인간은 몸이다"라는 이 한 명제를 우리는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몸은 인간의 전부다. 노자는 인간의 전부가 몸이라고 했다. 몸이 없으면 인간존..
함선에 동력이 돌아오자 한 대원이 외친다. "It's a miracle!" 그러나 스팍은 이렇게 말한다. "There are no such things." 이 말을 뱉고 스팍은 엔진룸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엔진을 다시 작동시켜 대원 모두를 구하고 죽어가고 있는 커크를 발견한다. 스팍을 보자 커크는 묻는다. "I'm scared, Spock. Help me not be – How do you choose not to feel?" 냉철하고 논리적이며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스팍, 그가 울며 말한다. "Right now, I'm failing." 기적은 없다. 만약 있다면, 인간이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기적일 것이다. 13/05/26 SF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알았다. 인간이란 본시 어디에도 의탁할 곳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떠도는 존재라는 사실을." - 연암 박지원, 중 13/03/11
인간의 신경계는 복잡한 현대 세계를 살아가기에 알맞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가 임박해도 그것에 미리 대응하기 어렵다. 심리학자와 생물학자가 공동 저술한 『New World New Mind』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미래의 재앙이 예상되더라도 여간해서는 (비용이 많이 드는) 단기적 행동 변화를 단행하려들지 않도록 유전적으로, 또한 심리적으로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 초기의 수렵 채집인들은 진화 과정을 거쳐 제한된 환경에서 즉각적인 위협에 대처할 수 있는 빠른 반사 작용을 얻었지만, 인구 증가, 기후변화, 자원 고갈, 부채 확산 등 현대 산업 사회가 직면한 장기적 문제는 오감으로 직접 느낄 수 없다. 진화된 대뇌 기능으로 문제와 해결책을 정의할 수는 있지만, 공격·도피 반응이 각인된 뇌의 핵..
실록문학 에는 주인공이 빨치산 투쟁을 하다 끝내 '사상'을 버리고 귀순하는 대목이 있다. 그는 산에서 내려가기 전 자신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정의란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의롭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인간의 교양이니 양식이니 하는 것들은 얼마나 허무하게 벗겨질 수 있는가? 인간이 그토록 추악한 동물이라면, 나는 무엇인가? 나는 한낱 센티멘탈리스트이며 리버럴리스트에 지나지 않는가? 결국 나는 무엇에도 철저하지 못하는 얼치기이며, 위선자이며, 비겁자이며, 이기주의자에 불과한 건가? 나는 끝내 인텔리일 뿐인 건가? 내가 단지 혁명을 위한 하나의 무기가 아니고, 조직을 위한 하나의 나사일 뿐인 것이 아니라면, 이 도로 찾은 '나'는 어떻게 생긴 사람인가? 질문을 하나둘씩 던지면서, 그는 사상에 짓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