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끝없이 의견은 갈라지며 하나의 진실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즐겨라 본문
「그렇다. 실제로 역사는 결코 끝나지 않았으며, 우리는 아직 선택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선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궁금해 할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우리가 이미 한 선택들로 인해 과연 우리는 칸트가 그렸던 세상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인지 아니면 그와 반대로 2세기 동안 삼위일체 원칙[영토/국민/국가의 동맹]이 부단히 주창되고, 단단히 자리 잡고 마음껏 장려되어온 후 현대의 모험이 시작된 당시보다 목표에서 훨씬 더 멀어진 것은 아닌지 말이다.
단순히 인간들이 만들었다고 해서 세상이 인간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거기서 인간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인간적인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오직 그것이 담론의 대상이 되었을 때만 그렇게 될 수 있다. ······ 오직 세상과 우리 자신에 대해 말함으로써만 우리는 세상과 우리 자신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으며, 그것들에 관해 말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되는 것을 배운다.
그리스인들은 이를 인간됨(humanness)이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우정, '인간에 대한 사랑(philanthropia)'에 관한 담론 속에서 달성된다. 그것은 기꺼이 세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려는 태도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아렌트의 이러한 말은 역사를 역류하는 흐름을 막아 세운 다음 역사를 '인간 공동체'라는 이상으로 좀 더 가까이 다가가도록 하기 위한 미래의 노력들을 위한 프롤레고메나[서설]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보아야 한다. 그녀의 지적 우상인 레싱의 견해를 쫓아 아렌트는 "타인들에게 열린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든 '휴머니티'의 전제조건"이라고 단언한다. "······ 실로 인간의 대화는 그것에 다른 사람이나 그가 하는 말에 대한 즐거움이 속속들이 배어들어가 있는 점에서 단순한 수다나 심지어 토론과는 다르다." 아렌트가 보기에 "세상일에 대해 토론하다 보면 무수한 의견들이 나타나는 게 즐겁다"고 한 것이 레싱의 위대한 장점이었다.
레싱은 지금까지 ― 적어도 파르메니데스와 플라톤 이후 ― 계속 철학자들을 괴롭혀온 바로 그것을 즐겼다. 즉 진실이란, 말로 언급되자마자 즉각 수많은 의견들 중의 하나로 바뀌며, 도전받고, 재정식화되고, 수많은 다른 담론의 주제 중의 하나로 축소되는 것이 그것이었다. 레싱의 위대함은 인간 세상에는 단 한 가지 진실만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적 통찰뿐만 아니라 진실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사람들 사이에는 끝없는 담론이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즐긴 데 있다. 단 하나의 절대적 진실이 나타난다면 ······ 그러한 논쟁이 모두 종식을 고해야 할 것이며 ······ 그리고 그것은 휴머니티의 종말이라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와 의견이 다르다는 사실(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지 않는 것을 소중히 여겨라. 인간들의 함께함의 경우 우리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것과는 다른 기준에 기반할 때 더 큰 혜택이 주어질 수 있다고 믿어라. 무엇보다도 우리만 절대적 진실로 통한 직통선을 이용할 수 있다거나 그래서 토론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론은 뻔하다고 확신하는 태도를 의심하라)은 인간 공동체로 가는 길 위의 장애물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의견들이 진실의 모든 것이며, 무엇보다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는 확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진실이 만약 우리와 다를 경우 그저 '단순한' 의견일 뿐이라는 믿음이 바로 장애물이다.」*
15/10/25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리퀴드 러브. (권태우 & 조형준, Trans.). 새물결.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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