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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 스포일러 경고 * 인간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라고 카를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도 서로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자기 실현의 욕망이다. 연인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상적인 남녀 관계에서 둘은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온전한 둘이 된다. 그런데 다른 성과 관계 맺는 방식은 자기 내면의 다른 성과 관계 맺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 너머에, 우리 내면에는 아니마(여성성)와 아니무스(남성성)라는 반대편 성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 내면의 다른 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허전함, 허무함, 외로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시달린다. 타키와 미츠하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로 서로의 성이 서로..
「우리는 "그 사람은 진짜 타고난 재능이 있어."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이 재능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선천적인 재능'이 아니다. 또한 그것이 지닌 힘과 영향력 역시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며, 올바른 접근법을 통해서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의 축적된 연구 덕분에 이제 우리는 미리 정해진, 고정된 능력 따위는 없음을 알고 있다. 인간의 뇌는 적응력을 가지고 있으며, 훈련을 통해서 (절대음감 같은) 이전에는 없던 능력을 새로 만들어낼 수 있다. 어떤 일이나 상황에서 결과나 흐름의 판도를 뒤바꿀 만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 사건, 서비스, 제품 등을 '게임 체인저'라고 하는데, 이런 인식이야말로 확실한 '게임..
「마음의 놀라운 힘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그리고 세포에 대한 연구를 통해 내가 어떻게 마음과 몸 사이의 통로가 몸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깨달았는가를 다루기 전에 한 가지 아주 분명히 해둘 것이 있다. 나는 단순히 긍정적인 생각을 한다고 해서 항상 몸이 치료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항상 우리 주변을 맴돌면서 에너지를 빼앗아가고 심신을 약화시키는 부정적 사고로부터 생명을 창출하는 긍정적 사고로 마음의 에너지를 옮겨가는 것이 건강과 행복에 중요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이 "그러나"는 매우 큰 울림을 갖는다) 그저 긍정적인 사고만을 한다고 해서 삶이 꼭 개선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긍정적 사고에서 "낙제"하는 사람들은 가끔 "더욱" 무기력해지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렇게 낙제를 하고 나면 자신에게..
「익숙한 것과 범속한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이탈의 몸짓은 "너는 네 삶을 바꿔야 한다!"라는 절대 명령의 특성을 띤다. 이탈이 발생하는 곳은 사람들이 "빌견된 사실에 대한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익숙한 관계도, 그것의 복사판도 더 이상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익숙한 관계는 이탈자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이탈자는 기존의 생활방식에 대해 깊은 불만을 느낀 나머지 그것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삶을 혹은 자기 자신을 바꾸기로 한다. 슬로터다이크에 따르면 예외적 인간은 극단적인 태도 변화, 즉 전향(conversion)을 통해 이를 행한다. 그 과정에서 드물지 않게 "혐오, 회환, 이전 존재 방식에 대한 철저한 배척과 같은" 감정이 이탈자를 사로잡기도 한다..
「우선 후설은 당대 학문의 상황을 '위기'로 진단한다. 그리고 그 위기는 근대 철학의 잘못된 문제 설정 때문이라고 규정짓는다. 그 문제설정이란 의식의 영역과 대상의 영역을 교량 없는 두 세계로 구분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이 결국은 우리가 경험되는 이 세계를 하나의 수수께끼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후설에 따르면 우리의 의식과 대상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본질적 연관관계를 맺고 있다. 즉 우리 의식은 언제든지 그 어떤 '무엇', 즉 대상을 향해 있고, 우리에게 대상으로 주어지는 모든 것은 그런 의식의 매개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대상으로 주어질 수 없다. 후설은 이를 의식의 지향성이라고 말한다. 이 지향성이야말로 인식 대상이 대상으로서 주어지는 인식의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다. 후설의 전략은 명료했다. 근대..
「따라서 현자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덕 너머에 자리한다. 자강불식의 정신으로 자신을 하늘처럼 쉼없이 새롭힘으로써 현자는 모든 순간과 상황을 거쳐 보편에 이르게 된다. 욕망과 의도가 부정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방향 자체가 사물의 본성과 상반되기 때문이 아니라 고정된 경향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된 경향이 의식의 확장을 막고 만물을 통해 나아가는 소통력을 저하시켜 의식 자체를 끊임없는 상관관계로부터 고립시키면서 마침내 의식을 매몰시키고 만다. 그리고 우리가 감각에 종속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감각 자체가 본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감각이 의식을 개별성에 파묻어 변화능력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부세계와의 금욕적인 단절을 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럴수록 외부세계는 결코 ..
「왕부지는 을 보는 두 극단적 관점의 오류를 밝힌다. 그 오류의 하나는 을 도덕론으로서만 고찰하여 에 내포된 투시력을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을 운명서로서만 고찰하여 예견능력의 토대인 도덕적 요소를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다. 사실 은 다음 두 가지 측면을 갖추고 있다. 하나는, 사람은 운행으로서의 모든 생성에 내재하는 일관성의 개념 ― 연속과 변이, 시초와 성향 ― 에 의거할 때 비가시에 이를 수 있으며 그 효능성과 맺어져 경향을 탐지하고 변화를 예견할 수 있음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생성에 관련된 모든 징후는 때로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운행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반면, 정도로부터 탈선할 수도 있는 까닭에 항상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은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도덕성이 ..
「지혜는 지켜봄을 통해 생겨난다. 공부가 아닌 알아차림을 통해, 집중이 아닌 명상을 통해 생겨난다. 지혜는 그대 의식의 성숙을 통해서 나온다. 반면에 지식은 경전과 학자들로부터 정보를 수집하고 그것들에 하나의 체계를 세우는 것을 통해 나온다. 그대 자신은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대는 어떤 변형도 체험하지 못한다. 그대가 지혜로워졌다 해도 조심하라. 궁극의 정상에서 보면 지혜조차 어리석음이다. 일반적인 어리석음보다 낫긴 하지만 여전히 어리석다. 아직 그대가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지혜를 얻으려면 실수를 겪어야 한다. 그 외에 다른 길은 없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새로운 삶의 영역을 개척하고, 실수를 통해 성숙해지며, 실수를 통해 지혜로워진다. 인류가 진화하는 것도 실수를 통해..
「우리 자아가 무의식의 바다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원형의 세계가 들려주는 진실한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이 융이 말한 개성화와 자기실현이다. 인간의 삶은 자아가 자기를 향해 가는 과정이고, 더 나아가서 인류의 문명 또한 세대를 이어 진행되어 온 기나긴 깨달음의 과정이다. 인간은 지금의 문명화된 상태에 도달하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들을 거쳐 서서히, 그리고 힘들여 의식을 확장해 왔다. 하지만 인간의 진화가 온전히 완성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인간의 본성은 허다한 부분이 아직 무의식이라는 어둠에 싸여 있다. 우리는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고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이성'이 가진 능력은 지극히 불완전하기 때문에 결코 정신의 전체성을 파악할 수..
「역설이완법의 기원: 에드먼드 제이콥슨의 업적 역설이완법의 토대는 에드먼드 제이콥슨 박사의 작업과 점진이완법이라는 그의 치료법과 함께 거의 8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점진이완법은 서양의학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이완법의 기원이 되었으며 20세기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변형되어 이용되었다. 수년간 점진이완법이 변비에서부터 이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에 보이는 효과에 대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다. 제이콥슨의 치료법이 세월의 시험을 견딘 것이다. 제이콥슨의 업적이 만들어진 배경 에드먼드 제이콥슨은 시카고의 중산층 가정에서 1888년에 태어났다. 총명한 학생이었던 그는 노스웨스턴대학교를 2년 만에 졸업했고, 18세가 되던 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최연소로 심리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시카고대학교에..
「융은 『황금꽃의 비밀The Secret of the Golden Flower』에서 그 방대한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으로 끌어올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우리의 무관심한 태도가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이치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는 무의식을 배제하고 오로지 의식만을 숭배하고 있다.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그리고 때로는 우리의 의지를 거스르는 무의식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오로지 의식에 매달리는 '의신의 일신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인간의 의식을 확장하는 것은 무의식과의 상호작용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는 모르는 것의 노예이고 아는 것의 주인이다. 우리 안의 악함과 나약함의 원인과 작용을 우리는 앎으로써 극복한다. 무의식은 의식으로 끌어..
도전적인 과제, 명확한 목표, 직접적인 피드백이 지식과 기술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생성'하게 해준다. 이 과정에서 재능이 발휘되고 '몰입'하게 된다. 이렇게 오랜 시간 훈련과 연습이 쌓이면 그것은 '자동성'이 된다. 머리(의식)로 해석하기 이전에 몸(잠재의식)이 즉각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자동화는 뇌의 선천적인 자동성 능력을 확대해주기보다는 오히려 손상시킨다. 반복적인 정신 훈련에서 벗어나게 해주지만, 더불어 심도 깊은 학습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지식을 생성하고, 기억력을 풍부하게 하고, 기술을 쌓아주는 실제 세계에서 벌이는 연습에 참여하지 못할수록 우리 마음에는 자동화에 대한 안심과 편향이 생긴다. 이 문제는 컴퓨터 시스템들이 우리가 하는 행동에 대한 직접적이고 순간적인 피드백을..
데이비드 봄의 홀로그램 이론에 의하면 전체(우주)는 부분들의 조합이 아니며, 부분은 전체의 일부가 아니다. 부분은 전체를 담고 있고, 전체는 모든 부분에 자신을 현상한다. 아래 긴 발췌는 책 내용의 '일부'이지만 책 내용 '전체'를 포함한다. 「양자장은 모든 공간 속에 스며들어 있으므로 모든 입자들은 초공간적으로 상호연결되어 있다. 데이비드 봄이 펼쳐가고 있는 실재상은 아원자 입자들이 허공 속에 저마다 뿔뿔이 흩어져 떠도는 모습이 아니라, 그 속을 움직이고 있는 물질만큼이나 실제적이고 활발히 살아 있는 공간 속에 만물이 불가분의 그물망의 일부분으로서 아로박혀 있는 모습이다. 봄의 가장 놀라운 주장 중의 하나는, 우리의 일상 속의 감각적인 현실이 사실은 마치 홀로그램과도 같은 일종의 환영이라는 주장이다. ..
「선(禪)은 마조도일(馬祖道一)이 설파했듯이 '일상적 의식'이다. 이 '일상적 의식'은 '피곤하면 잠자고, 배고프면 먹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반성하고 숙고하고 개념을 만들어내는 순간, 원초적인 무의식의 상태는 사라지고 생각이 떠오른다. 그러면 먹으면서도 먹는 것이 아니고, 잠자면서도 잠자는 것이 아니게 된다. 화살을 쏘았으나 과녁으로 똑바로 날아가지 않고, 과녁 역시 서 있어야 할 그곳에 서 있지 않다. 인간은 사고하는 존재이지만, 계산하고 사고하지 않을 때 위대한 작품을 창조해 낸다. '어린아이다움'은 오랜 세월에 걸친 연습과 자기 망각의 기예를 통해서 다시 얻어진다. 이 단계에 이르면, 인간은 사고하지만 그럼에도 사고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자연스럽게 사고한다. 바다..
「불교는 마하무드라 요가 탄트라와 선(禪) 또는 정토종에서 보는 것과 같은 대승불교의 실천 응용을 통하여 여러 세기 동안 발전하고 꽃을 피웠다. 그러나 정토종은 개인의 진화를 촉진하기 위해 극락에 태어나는 것을 목표로 삼으므로, 실제적인 불교의 가르침(즉 반야바라밀의 체험)은 선과 탄트라 요가에서만 찾을 수 있다. 역사가 입증하는 바에 따르면 이들 선과 탄트라 유파에서만 '눈을 뜬 자'들을 많이 배출했다. 따라서 불성이 개화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는 수행자라면 이들 마하무드라와 선의 가르침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선과 탄트라 양쪽의 연구 및 실습을 통하여 필자는 선의 가르침과 마하무드라의 고급 탄트라가 동일함을 알았다. 식별할 수 있는 차이는 양자의 제시 방식이 표면적이고 외부적인 견지에서 약간 다르..
「저녁노을은 장엄한 것이지만 그것은 인간성을 왜소화시키며, 자연의 일반적 흐름에 속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저녁노을도 인간을 문명으로 몰고 가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의 성취를 위해 준비된 유한한 완전성을 의식 속에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는 '예술'이 필요하다. 의식 그 자체는 최저 형태의 예술의 산물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를 선택된 유한한 현상으로 재형성할 목적으로 관념성을 실재성과의 대비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서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술로부터 현현되는 의식은 그 즉시로 새로운 의식적 동물의 특수화된 예술, 특히 인간의 예술을 산출한다. 어떤 의미에서 예술은 깊숙한 자연 속에 있는 기능들이 병적으로 과다하게 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인위적이라는 것이 예술의 본질이다. 그러나 여전히 예..
인류사에 여러 성인들이 있었지만, 붓다만큼 쉽고 간단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려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파사나는 단순히 불법의 정도(正道)인 것이 아니라, 모든 수행의 근본이다. 「나는 화두를 들기보다, 차라리 서암의 화두처럼 ‘주인공’을 부르는 성성법(惺惺法)을 권하고 싶다. 인간의 대부분의 활동은 대개 무의식적 상태에서 일어난다. 대개의 선사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각성된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적 본질과 분열되지 않고 일체가 되며, 그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주적 화해의 무도가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의식과 감정, 의지와 욕망의 미세한 흐름까지를 각성하고 제어하는 통제력이 더 긴요하다. 자신의 호흡과 심신의 활..
「인간: 조금 전에 당신은 우리의 토론 전체가 터무니없는 오류에 기초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신: 내가 자유의지가 없는 너를 창조할 수 있다는 생각 말이다! 너는 이것이 정말로 가능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궁금하게 생각했다. 자유의지가 없는 인격적 존재를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인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물리적 대상을 생각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너한테는 떠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사실, 물리적 대상이 발휘하는 인력과 인격적 존재가 발휘하는 자유의지 사이에는 내가 깨닫고 있는 이상의 유사성이 있다.) 솔직히 말해 너는 자유 의지가 없는 의식적 존재를 상상조차 할 수 있느냐? 도대체 그러한 ..
"유물론자와 유심론자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둘 다 물질이나 마음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유물론자가 원초적인 것을 택함으로써 궁극적인 것에서 멀어지는 반면, 유심론자는 궁극적인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안에 원초적인 것을 포함시킨다. 궁극적인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한다. 어느 것 하나 배제하지 않는다. 나는 '의식'이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그러므로 나는 모든 것이 의식이라고 말한다. 의식이 잠들어 있으면 물질로 나타나고, 의식이 깨어있으면 의식 그대로 나타난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의식이다."* 14/10/02 * 오쇼, 의식 오쇼
「사람들의 행동이 모두 기계처럼 어떤 조건을 따른다고 해보자. 보통 이 생각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이 유전자 구성의 산물이라는 견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이 환경 요인에 따라 결정된다는 견해다. 유전자 결정론을 믿는 이라면 나는 그러한 믿음이 그저 유전자의 산물은 아닌지 묻고 싶다. 다시 말해 유전자 구조 때문에 그런 말을 하게 되는가? 마찬가지로 누군가 환경 결정론을 말한다면 나는 그 말이 어떤 환경 조건 아래 내뿜는 단어는 아닌지 물을 수 있다. 분명 두 경우 모두 (유전자 더하기 환경이 인간을 결정하는 경우에도) 아니라고 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답변자 자신이 의미 있는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슨 말을 해도 화자는 슬기로운 지각을 빌어 말하고 있으며, 이때 그러한 ..
"미혹하면 물질이 의식을 거둬들이지만, 깨달으면 의식이 물질을 거둬들인다."* - 달마 대사 14/09/02 * 최민자, 에서 봄. 의식
「일상에서 생심동념이 없고 상을 벗어나 인연을 쉬고 분별망상을 하지 않는 일은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삼매의 경계에서만 가능한 일이지, 일상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삼매의 선정에서 일어나는 즉시 생심동념하고, 상을 취하고, 반연(攀緣)하며, 분별망상하는 것이 인간의 의식활동의 본령이다. 만약에 일상에서 생심동념하지 않고, 상을 취하지 않으며, 반연하지 않고, 분별망상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상태를 인사불성의 상태나 식물인간의 상태라고 부를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인사불성의 상태나 식물인간의 상태에서도 인간의 하의식은 끊임없이 활동을 하여 생심동념을 일으키고 상을 취하고 반연하며 분별망상을 하는 것이다. 이런 두뇌의 활동이 정지되어 뇌파가 끊어지면 우리는 사망이라고 판정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
「―인간은 왜 그런 착각(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을 하도록 만들어졌나.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이 없다면 '나'와 '자아'가 연결될 수가 없다. 매 순간마다 수백 가지 다른 이유들로 선택을 하게 되는데 '나'라는 '자아'가 있고 그 '자아'가 이런저런 이유로 선택을 했다는 스토리를 만들면 그 스토리를 통해 연관이 없는 점들을 연결시킬 수 있다. 이렇게 점들을 연결시켜주는 선이 결국 '나'라는 자아다. 따라서 '나'라는 존재 자체도 사실은 착각이다.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김대식(뇌과학 전공 카이스트 교수) 인터뷰 중 「자유 의지란 단연코 환상이다. 우리의 의지는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고와 의도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도 없는 배경 원인으로부터 ..
「도의 견지에서 보면 과도한 것은 종국에 가서 그 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다. 인류는 의식의 확장이라는 거대한 압력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인간 서로의 조화와 자연과의 조화를 회복하기 위한 해결책을 만들어내기 위해 위기를 창조했다. 의식의 상승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사례 중 하나는 과거에는 선택된 소수만이 누리던 육체와 정신의 비밀들이 보통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프랑스의 과학자 슈발러 드 루빅(Schwaller de Lubicz)은 이렇게 말한다. "사상의 혁명은 변덕의 소산이 아니다. ...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지진 운동, 기후변화,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도 인류에게 영감을 주는 정신이 이 새 시대를 예고할 것이다." 위기가 의식의 진화를 추동하지만, 의식의 변화 역시 현존 질..
* http://youtu.be/9Rhvxy0r2Do "생각해보면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 상태는 두 단계 밖에 없어요. 제일 처음인 '무의식적 무지'와 마지막인 '무의식적 앎'. 즉, 처음 레벨을 벗어나면 행복하게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결국 마지막까지 가는 수 밖에 없어요." - 영상 중 위의 강의는 음악 외의 분야에도 적용될 뿐 아니라, 의식 일반에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인간은 아직도 에덴동산 안에서 의식이 행복하게 잠들어 있는 짐승과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 지복(bliss) 상태에 있는 신 사이 어디쯤 있다. 그래서 인간의 '간'자가 '사이 간間'자인 걸까? 괜히 니체가 사자의 단계를 넘어 인간 의식의 최종 단계를 어린아이로 비유한 게 아니다. 그러나 합리적인 의식과 이성에도 도달하지 못한 무지의 단계..
「당신은 '안전지대'에 머물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다. 사람과 장소와 사물이 당신의 틀에 맞아 떨어지게끔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그것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당신은 불편해진다. 그러면 마음이 부산을 떨며 나서서 어떻게 하면 일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돌아갈지를 말해준다. 그러니 사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안전한 지대에 머물기 위해 삶을 바칠 수도 있고 자유를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당신의 한정된 틀 속에다 매사를 끼워 맞추는 일에도 평생을 바칠 수도 있고 그 틀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에 평생을 바칠 수도 있다. 이것을 좀더 들여다보기 위해 동물원 구경을 가보자. 정말 흥미롭게 구경하다가 작은 우리에 갇혀 있는 호랑이 앞에 오게 됐다고 하자. 당신은 저런 비좁은 공간에 갇힌 채 평생을..
Enlightenment, Self, and the Brain. How the brain changes with final liberation from Todd Murphy on Vimeo. 신경신학자 토드 머피의 강의 세 번째. '나'라는 개인의 실체가 있다는 느낌, 즉 '자아'의 감각은 뇌가 만들어내는 신경학적인 환영(hallucination)임을 설명하며 '무아'를 주장한 붓다의 의견이 과학적으로 옳았음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나', 개인(individual)이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없다'이다. 깨달음은 바로 이 '나'라는 자아의 느낌이 소멸하는 과정이다. 강의는 뇌의 어떤 변화가 이런 과정을 만들어내는지 뇌 각 부위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통해 깨달음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
「휴식은 무의식과 암성으로 하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휴식은 지고한 빛 속으로, 완전한 평안, 절대 고요 속으로 상승하는 것이어야 하며, 어둠을 뚫고 오르는 휴식이어야 한다. 그러면 그것은 진정한 쉼, 곧 상승하는 쉼이 된다. 진정한 안식은 의식을 확장하는 것, 의식을 전 우주로 넓히는 것에서 비롯된다. 세상만큼 광대해지면, 늘 휴식 상태에 머물 것이다. 한창 활동하는 틈에, 투쟁하고 수고하는 그 와중에, 무한과 영원을 맛보는 안식이 도래한다.」* 13/12/12 * 스리 오로빈도·마더, 에서 발췌, 편집. 2013/11/30 - 의식침전에 빠지지 말라 2013/11/13 - 상승과 하강의 통합 2013/09/12 - 고요함이 교만과 게으름으로 스리 오로빈도
「질문: 왜 어떤 영적 수행자들은 어느 면에서는 진전을 이룬 것 같지만 다른 면에서는 여전히 미개한 멍청이로 보이나요? 윌버: (웃음) 의식의 발달 모형을 가지고 내가 하려는 일 중 하나가 두 가지를 개괄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지류와 파동이라고 부를 수 있지요. 지류는 인지적 발달과 정서적 발달, 대인관계의 발달, 영적 발달 등과 같은 서로 다른 발달 계통입니다. 이런 지류들 각각은 그 발달상의 다양한 단계 또는 파동을 거쳐 가지요. 연구 결과가 보여 주는 것은, 첫째 이런 지류들은 아주 독립적으로 발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가령 영적 지류에서는 진전을 이루지만 정서적 또는 대인관계와 같은 다른 지류에서는 '지체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둘째, 이런 지류들은 비록 독립적으로 발달하지만 모두가 동..
팔자대로 살 것이냐, 자유롭게 살 것이냐. 「피타고라스는 두 개의 법칙이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필연의 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힘의 법칙이다. 필연의 법칙은 무의식적인 사람들에게 작용한다. 기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은 필연성에 의해 살아간다. 필연성보다 더 높은 법칙은 힘의 법칙이다. 더 의식적으로 깨어났을 때, 필연성을 초월하여 벗어났을 때 그대는 힘을 통해 살기 시작한다. 그대는 풍부한 힘에 의한 삶을 시작한다. 이때 그대의 삶은 단순히 필연성에 의한 것이 아니다.」* 13/05/30 * 오쇼, 에서 인용. 2013/02/23 - 월드피스 다이어트 오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