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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보다 위파사나(깨어있기)를 권한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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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보다 위파사나(깨어있기)를 권한다

모험러
인류사에 여러 성인들이 있었지만, 붓다만큼 쉽고 간단하고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수행법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알려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위파사나는 단순히 불법의 정도(正道)인 것이 아니라, 모든 수행의 근본이다. 

「나는 화두를 들기보다, 차라리 서암의 화두처럼 ‘주인공’을 부르는 성성법(惺惺法)을 권하고 싶다. 인간의 대부분의 활동은 대개 무의식적 상태에서 일어난다. 대개의 선사들이 인정하고 있듯이 각성된 상태에서 인간은 자신의 내적 본질과 분열되지 않고 일체가 되며, 그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행위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주적 화해의 무도가 된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려고 하기보다’ 자신의 의식과 감정, 의지와 욕망의 미세한 흐름까지를 각성하고 제어하는 통제력이 더 긴요하다. 자신의 호흡과 심신의 활동을 끈기 있게 파지하는 ‘자각의 훈련’이 지속되면 『대승기신론』이 말하는 거친 오염들이 줄어들고 이윽고 미세한 의지의 충동들이 들여다보일 것이고, 심신은 점점 더 헐거워질 것이다. 이 방법의 장점은 여럿이다.

1) 자신이 그 효과를 즉각 알 수 있고,
2) 지속적 파지와 더불어 호흡이 안정되고 그와 더불어 내적 본질과의 일체감이 더욱 깊어진다.

이것은 점진적 과정, 즉 기본적으로 점수의 방법이다. 이 ‘자각’의 수련은 삶의 공간, 즉 일상의 일과 사람과의 관계를 끊지 않고 실천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결정적인 장점으로 제시한다. 바람직한 수련은 그 자체 ‘과정’이면서 동시에 ‘목적’이어야 한다.

이에 비해 화두는 그렇지 않다. 화두를 들 때, 그것은 에너지의 불건전한 전이를 차단시켜, 자신의 불건전한 욕망과 의지, 정감을 순화시키는 일차적인 효과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효과는 더 이상 진전되기 힘들다. 그 지속적 파지는 일종의 자신감이라기보다 불안감과 초조감으로 다가온다. 왜냐? 화두는 그 자체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 진리를 보겠다는 초조감이 화두에 드는 자신을 늘 열패감에 시달리게 하고 자신의 존재를 무력하게 하기 쉽다. 그 제자리걸음은 쉬 피로해지고, 흔들린다.

화두는 인위적인 공간을 설정하고 거기에 자신을 가둔다. 그것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현실적 삶의 공간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킬 수밖에 없다. 화두를 들면, 다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농사를 지을 수도, 책을 읽을 수도, 상담을 할 수도, 물건을 만들 수도 없다. 이것은 산속의 소수 예외적 수도승들에게 요청할 수 있는 일이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일정한 직무를 감당해야 할 사람들의 수련법은 아니다. 화두는 그럴 경우, 역설적으로 “남의 돈을 세는 일”에 그치고 말 수 있다.」*

14/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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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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