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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은 자신을 향한 예배 본문

명문장, 명구절

유학은 자신을 향한 예배

모험러
「유교에서의 합일은 다시 말하지만 '자신과의 대화'이고, 이것의 무대는 '일상의 생활'을 떠나지 않는다. 조지프 니덤은 도가가 "과학과 모순되지 않은 유일한 신비주의"라고 칭탄한 바 있다. 나는 유학을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모순되지 않은 유일한 신비주의"라고 말하고 싶다.

유교는 두 극단을 피해 중용을 기획했다. 의미는 오직 생활 속의 규율과 일상적 습관에 있다. 바로 그 신기할 것도 없고, 통속적인 삶의 자잘한 현장이 의미가 구현되는 성소이다. "중용의 도는 부부에서 출발한다." 가장 비근하고 친근한 기거와 교제, 일과 놀이를 의미로 승화시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다. 『중용』은 말한다. "높은 지위와 많은 재물을 사양할 수도 있고, 흰 칼날을 맨발로 밟기는 쉬워도 중용을 지키기는 정말 어렵다."

사람들은 자신의 의미와 존재를 '자신의 밖에서' 추상적으로 찾으려는 유혹에 쉽게 빠진다. 중용은 그것을 경계해 마지않는다. 도道가 행해지지 않는 것은 목표를 현실 바깥에서 그리고 자신의 일상적 삶의 공간 밖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일상이 곧 성사聖事이다. 

그런 점에서 유학은 하드웨워가 필요하지 않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일을 하며, 휴식하는 바로 그 자리가 의미가 구현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나 위계는 거추장스럽다. 서원이나 사당은 없어도 좋다. 족보도 가부장도 필요하지 않다. 단 하나의 조건이라면 자신과 관계하고 동시에 타자와 관계하는 인간 조건이 있을 뿐이다. 서원이든 사당이든 유교의 건축과 상징에 장식과 문양이 극도로 절제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원의 좁은 방, 가구도 없는 무채색의 좁은 방, 그 빈 공간이 바로 유학이 임하고 있는 거소이다. 유학은 바로 그 자잘하고 통속적인 일상 속에서 보상도 기대도 없이 올리는 자신을 향한 예배이다.」*

14/11/13

* 한형조, <왜 동양철학인가>에서 발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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