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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의 세속화와 속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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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각적 반성 -> 직업적 학문, 주체적 해방 -> 예속적 억압, 상호적 배려 -> 일방적 권위로 유교가 타락하는 과정은 기독교의 타락 과정과 유사해 보인다.

「기축시대 이후, 동서양의 정신의 영웅들은 모두 당대를 거슬러 또 다른 지평의 ‘현실’을 읽었던 사람들이다. 유교 또한 그러했다. 『논어』를 펼치면 공자와 그 집단이 당대의 상식과 이념과 투쟁하고 있는 생생한 기록을 만난다. 그런 점에서 유교는 본시 ‘순응적’이 아니고 ‘비판적’이다. 우리는 이때의 ‘도(道)의 기사도’들을 한 대 이후 형성된 제도화된 유교, 권력화된 유교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유교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들은 유학이 소집단의 유랑생활을 청산하고 권력과 제도의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부터 생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교가 자각적 반성에서 직업적 학문으로, 주체적 해방에서 예속적 억압으로, 상호적 배려에서 일방적 권위로 바뀌었던 것이 바로 이 때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는 성공적이었으되, 한대의 난만한 경학은 유교를 서재의 권력으로 세속화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유교의 생명력을 고갈시켰다. 이것은 역설이다. 한대 유학이 사상사의 주류를 도교와 불교에게 빼앗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유교가 거듭나기 위해서는 세속화 이전의 그 본래의 실천적 비판적 정신을 되살려야 했다. 복송을 거쳐 주자학은 이 과업을 달성함으로써 유교의 르네상스를 이룩했다. 그렇지만 그 또한 변방에서 주류로 등록되면서 동일한 세속화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조선의 주자학 또한 도입기에서 안정기로 나아가면서 성찰의 도구에서 입신의 도구로 변질되었다. 주자학의 이 세속성이 5백 년간 학술을 배타적으로 고립시킨 주요인이었다. 비판으로서의 학문은 본시 개방적이기 때문이다.」*

14/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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