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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성과 단순성

모험러
어마무시하게 복잡해 보이는 이론도 살피고 또 살피다보면, 무한히 단순한 어떤 직관 하나를 계속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고 있는 것.

「철학자가 제시한 문제를 보면 우리는 그의 주변에서 토론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내놓는 해답에서 우리는, 과거 혹은 현대에 나온 철학의 여러 요소들이 가지런하게 또는 헝클어져, 그리고 약간 모습이 바뀌어 있는 것을 본다.

어떤 견해는 그가 현대에서 얻었고 또다른 것은 과거의 것에서 암시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물론 그가 읽고 배운 것을 가지고 그가 빚어낸 철학을 대부분 다시 구성할 수 있다. 작업을 시작하여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여러 가지 영향을 저울질해보며 흡사한 점을 가려낸 나머지, 마침내는 그의 학설에서 우리가 찾던 것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다. 즉 철학자가 그 속에서 살아온 사상의 어느 정도 독창적인 종합을 본다.

그러나 대가의 사상과 번번이 접촉을 거듭함에 따라서 우리는 점차 전혀 다른 느낌에 침투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처음에 골몰해온바, 비교하는 작업이 헛수고였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철학을 다른 철학에서 얻은 요소로 다시 구성하고 그 주변을 둘러싸던 사상과 다시 결부시키는 노력을 우선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마도 영영 그 철학의 참된 모습을 포착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이는 인간 정신의 됨됨이, 새로운 것을 낡은 것에 귀착시키려고 몹시 애쓴 다음에야 새로운 것을 깨닫기 시작하는 (그 인간 정신의 됨됨이)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철학자의 사상의 둘레를 도는 대신 그 속에 자리를 잡고자 더욱 힘을 기울임에 따라 우리는 그의 학설이 모습을 바꾸는 것을 본다. 우선 복잡한 면이 줄어든다. 다음에는 학설의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마침내는 모두가 오직 한 가지 점으로 모여드는데 우리가 비록 그 점에 도달하는 것을 단념해야 할지라도, 더욱더 가까워질 수는 있으리라고 느끼게 된다.

그 점에는 무한히 단순한 그 무엇이 있는데, 너무나 놀라울 만큼 단순하기 때문에 장본인인 철학자는 그것을 말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때문에 그는 일생 동안 내내 말을 계속하였다. 그는 자기가 마음속에서 생각한 것을 공식으로 만들려고 하면 반드시 그 공식을 고치고, 다음에는 그와 같이 고친 것을 다시 고칠 수밖에 없다고 느꼈으리라. 이와 같이 그는 자기의 학설을 더욱더 복잡하게 하고 거듭 발전시킴으로써 완성하려고 하는 자기의 이론을 자꾸 교정했지만 그 결과는 다만 자기의 독창적 직관이 지닌 단순성에 점점 더욱 접근할 수 있는 내용을 표현했을 따름이다. 한없을 듯이 보이는 그의 학설이 지닌 모든 복잡성이란 따라서 다만 그의 단순한 직관과 이를 표현하는데 사용한 수단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낼 뿐이다.」*

- 앙리 베르그송, <사유와 운동>

14/11/11

* 한형조, <왜 동양철학인가>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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