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리뷰, 서평, 감상 (120)
모험러의 책방
집중적으로 반복해 시간을 들이면 공부가 잘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비효율적인 방법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착각하고 있다. '반복'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반복할 것이냐다. 우선 무엇을 반복해야 할 것인가? 반복해야 할 것은 '배운 것을 떠올리려고 해보는 것'이다. 당장은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아도 좋다. 무얼 읽고 무얼 훈련 했는지 떠올리려는 노력 자체가 그저 반복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기억력을 강화하고 성장을 빠르게 한다. 반대로 책을 덮고 떠올리려고 해보는 노력 없이 그저 집중적으로 반복해 읽는 것은 내용을 '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공부한 내용은 순식간에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다. 이 방법을 처음 책을 읽을 때부터..
마루야마 겐지의 『천년 동안에』를 읽다 보면 마치 요즘 돌아가는 세계 정세를 보고 작가가 엊그제 쓴 소설이라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데 서지정보를 찾아보면 1996년 최초 출간이다. 그만큼 이 소설의 어떤 부분은 마치 2017년 오늘날의 세상을 보여주는 양 예언서를 방불케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사자가 되지 못하고 낙타, 혹은 양떼에 머물 뿐인 인간 군상을 끊임없이 질타하고 조롱한다. 삶의 참된 맛은 야성적으로 사는 데서, 아무도 지배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지배받지 않는 자유를 추구하는 데서 솟구쳐나오며, 안주하고 무리짓는 순간 짐승의 눈빛을 잃고 노예로 전락한다는 게 그의 핵심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은 그의 에세이집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 『나는 길들지 않는다』에 나온 중심 메시지가 ..
『장르 글쓰기 01: SF·판타지·공포』는 장르 문학계 고수들의 값진 조언으로 가득하다. 구체적인 작법에 관한 조언도 있지만, 장르 소설을 잘 쓰기 위해 필요한 핵심 자질들을 어떻게 북돋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주고 있다. 이를테면, 백지 공포(작가의 장벽, writer's block)는 어떻게 극복할까, 착상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신비롭거나 무서울까, 생동감 있는 인물은 어떻게 창조할 수 있을까, 자료 수집은 어느 정도나 해야 하는 것일까, 편집자들은 원고의 몇 페이지나 읽고 계약을 결정할까, 장르의 클리셰는 얼마나 알아야 할까 등등. 이 책에 글을 남긴 수십 명의 현역 작가들은 모두 살벌한 경쟁을 뚫고 글쟁이로 살아 남은 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말한다. 믿고 일을 맡길 ..
느리게 쓴다. 이것이 저자 루이즈 디살보가 유명 작가들의 편지, 일기, 인터뷰 등을 조사한 끝에 내린 결론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을 47가지 버전이나 쓴 후에야 결정했다. 퓰리처상 수상자 마이클 샤본은 '텔레그래프 애비뉴'(Telegraph Avenue)를 완성하는 데 5년 가까이 걸렸다. 버지니아 울프는 하루 세 시간씩 글을 썼는데, 하루에 쓴 분량은 약 535자였다. 이는 창작 능력이 최고조로 달해 있을 때였다. 긴 말 할 것 없이 최고의 작가들이 글쓰기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보자. "예술의 대부분은 기교다. 기교를 배우려면 끈기 있게 시간을 버텨내는 인내가 필요하다."- 오르한 파묵(Orhan Pamuk) "하루에 두 페이지를 쓰면 주말 즈음에는 열 페이지가 되어 있..
글쓰기에 몰입된 상태의 그 독특한 감각. 그것을 몽유병 상태라 부르든, 최면 상태라 부르든, 명상 상태라 부르든, 알파파 상태라 부르든, 예술적 혼수 상태라 부르든, 그 상태로 쉽게 진입할 수 있고, 진입한 후에는 유지할 수 있으며, 빠져나와서는 비판적 자아를 작동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 작가의 핵심 능력이라고 도러시아 브랜디는 『작가 수업』에서 말한다. 모든 작가들은 저마다 의식하지 못한 채로 자기만의 의식을 행하고 있다. 그 의식은 천차만별이다. 승마, 뜨개질, 카드놀이, 산책, 조각, 바닦 닦기···. 하루키의 의식은 아마도 마라톤과 영문 번역일 것이다. 공통점은 요행이든 계획된 것이든 마음의 수면 저 뒤편으로 스스로 빠져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배울 수 있다. 습관으로 만들 수..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처럼 행동하라(Act as if it were impossible to fail).′ 책 『깨어나 네 삶을 펼쳐라』(Wake Up and Live!, 1936년 첫 출간)의 핵심 메시지다. 메시지만 보면 그저 성공을 꿈꾸고 믿으라는 ′시크릿′류 자기계발서 같지만 다르다. 이 책의 방점은 ′행동′에 찍혀있다. 즉, 쓸데없이 고민하거나 걱정하는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무언가 이루고 싶은게 있으면 당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행동에 돌입하라는 것이다. 하다 못해 관련 정보라도 스크랩을 시작하라. 알아보고, 찾아보고, 움직여보고, 가보고, 배워보라. 결과는 염두에 두지 마라. 그러면 몸이 마비되고 망상에 에너지가 낭비된다. 여기서 ′절대 실패하지 않을 것 처럼′의 늬앙스는 ′반드시 성..
* 스포일러 경고 * 인간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라고 카를 구스타프 융은 말했다. 남녀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도 서로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하는 자기 실현의 욕망이다. 연인을 통해 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상적인 남녀 관계에서 둘은 만나 하나가 되는 게 아니라, 온전한 둘이 된다. 그런데 다른 성과 관계 맺는 방식은 자기 내면의 다른 성과 관계 맺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 너머에, 우리 내면에는 아니마(여성성)와 아니무스(남성성)라는 반대편 성이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이 내면의 다른 성을 발견하지 못하고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우리는 끊임없이 허전함, 허무함, 외로움,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시달린다. 타키와 미츠하가 그랬던 것처럼. 반대로 서로의 성이 서로..
그리고 380만 년의 영원 문학이 끝났다, 근대문학이 끝났다, 예술이 끝났다, 세계는 끝났다, 역사는 끝났다, 이 시대는 특권적인 시작과 끝이고 역사상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날 것이다, 라는 종말론적 병적 사고는 새롭지 않고 진부하다.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이 종식된 5세기 무렵 암울한 말이 유럽을 떠돌았다. "세계는 늙었다." 로마의 영광은 사라졌고,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은 쇠퇴하고, 이제 우리는 지옥에 떨어지려 한다. 이제 세계의 종말이 오려 한다. 7세기에도 수도사 마르퀼프는 이 세계의 종말을, 어두운 비애를 열심히 설파했다. 8세기에는 '성 바르두전'이라는 책이 나와, 세상은 이제 끝이다, 더 이상의 변전은 없다, 결정적인 최후의 시대라고 썼다. 1000년도에는 다들 야단법석. 이 시절 기증문의 첫머리..
우리에게는 보인다: 중세 해석자 혁명을 넘어 지난 밤들 요약: 문학이야말로 혁명의 본질이며 폭력은 이차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읽는 것, 다시 읽는 것, 쓰는 것, 다시 쓰는 것, 이것이야말로 세계를 변혁하는 힘의 근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불충분. 그곳도 넘어야 한다. 단지 문자를 쓰는 것'만'이 특권적으로 권력, 나아가 혁명에 속한다는 생각을. 루터파는 자신들을 뭐라 불렀을까? 근대인, 새로운 시대의 사람이라 불렀다. 중세라는 호칭을 일반적인 것으로 만든 것도 루터파. 그런데 14세기부터 16세기, 즉 루터가 출현하기 이전 오컴의 윌리엄을 필두로 하는 후기 스콜라학파도 자신들의 유명론을 가리켜 '근대의 길/방법'이라 불렀다. 또 있다. 12세기 중세 해석자 혁명에 참가한 법학자, 신학자 들이 이미..
읽어라, 어머니인 문맹의 고아여: 무함마드와 하디자의 혁명 멸망을 향해 쇠망의 길을 걷고 있던 로마, 한 남자가 기도한다. "언제까지입니까? 주여, 언제까지입니까? 아무리 지나도 내일인 겁니까? 왜 저의 더러움이 바로 지금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자 노랫소리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집어 들고 읽어라." 그는 집어 들고 읽었다. 어디까지나, 어디까지나 읽었다. 그의 이름은 사도 바울 이래 최대 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 신비주의의 역사는 죽임을 당하거나 광기를 무릅쓰고 읽거나의 역사. 여성 신비가 테레지아 앞에 예수가 나타나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나는 너에게 마치 펼쳐진 책처럼 될 것이다." 신비가는 금지된 책을 읽고 유럽 역사에 남을 신학 문헌을,..
루터, 문학자이기에 혁명가 마르틴 루터가 일으킨 '대혁명'이란 무엇인가. 성서를 읽는 운동. 루터는 무엇을 했는가? 성서를 읽었다. 그는 성서를 읽고, 성서를 번역하고, 그리고 수없이 많은 책을 썼다. 이렇게 하여 혁명이 일어났다. 책을 읽는 것, 그것이 혁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알았던 것이다. 이 세계에는,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루터는 이상할 정도로 ― '이상해질 정도'로 ― 철저하게 성서를 읽고 또 읽었다. 이 세계의 질서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게다가 그 질서는 썩어빠졌다. 모든 사람이 그 질서에 근거가 있다고 생각했다. 루터를 제외하고.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미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미친 것일까? 루터가 말했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도이고 명상이고 시련..
문학의 승리 참된 철학자, 예술가는 "유일한 참된 충고자, 고독이 하는 말을"(스테판 말라르메) 따른다. 어리석음을 택하라. 정보를 차단하라. 지식과 정보는 사람을 병들고 쇠약하게 한다. "타락한 정보가 있는 게 아니라 정보 자체가 타락한 것이다"(질 들뢰즈). '비평가'들은 모든 것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또 설명할 수 있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고, '전문가'들은 한 가지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환상에 매달리고 있다. "제한과 미. 그대는 아름다운 교양을 가진 인간을 찾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마치 아름다운 지방을 찾을 때처럼 역시 제한된 전망과 광경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분명히 전경적 인간들도 있다. 확실히 그들은 전경적인 지방처럼 교훈적이고 훌륭하다. 그러나 아름답지 않다." - 니체,..
1. 어째서 당신이 '젊은' 소설가인가? 내 나이 일흔일곱이지만 소설가로 입문한 것은 고작 28년 전으로 나는 매우 젊고 전도유망한 소설가이다. 앞으로도 50년 동안 훨씬 더 많은 책을 써내려갈 것이다. 2. 창조적 소설가의 특징은 무엇인가? 삶의 모순들을 펼쳐놓고 해답을 찾아보라고 주문할 뿐 공식을 정해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때로 소설가는 철학자가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한다. 3. 논문은 꼭 따분해야 하는가? 오히려 어떤 학문이라도 일종의 추리소설, 즉 어떤 종류의 성배를 찾는 탐구 보고서처럼 써야 한다. 4. 왜 소설을 쓰기로 마음 먹었는가? 그러고 싶은 충동을 느껴서. 5. 어떻게 소설을 쓰는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6. 좀 더 친절하게 답해 달라 첫째, '영감'이란 약삭빠른 작가들이 예술적으로 ..
예전에 스타워즈 소설, '다스 몰: 섀도우 헌터'(Darth Maul: Shadow Hunter, 국내 미번역)를 읽고 놀란 적이 있다. 우선 스토리의 수준이 높았다. 애들이나 청소년 용이 아니라 성인 용인, 프로의 작품이었다. 또 하나 놀란 점은 작품의 분위기였다. 어두웠다. 제다이를 비롯 많은 사람들이 목숨 걸고 희생해도 파멸을 피할 수 없고 진실을 밝힐 수 없어 절망적인 안타까움만 깊어가는 소설이었다.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를 보면서 위 소설이 떠올랐다. '다스 몰: 섀도우 헌터'를 읽을 때 특별한 느낌이 드는 이유 중 하나는 독자가 스타워즈 에피소드1 이후의 스토리, 즉 팰퍼틴 의장을 둘러싼 스토리를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후 닥칠 결말을 앎으로써, 그 배경 이야기들에 대한 호기심..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은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고, 소설가의 정신 세계가 궁금한 사람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준다. 좌절은 소설가가 되는 건 운이라는 것이다. 타고나야 한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운명론적인 느낌이 드니 일단 운이라고만 해두자. 하루키는 야구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그래, 소설을 써야 겠다.' 이것은 하루키 본인도 영어의 에피퍼니(epiphany)라는 단어를 빌려 말하는 바, 일종의 계시다. 사도 바울이 느닷없이 계시를 받아 사도의 삶을 살기 시작했듯, 하루키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와 소설가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계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종의 예언도 이루어진다. 생애 처음으로 ..
"I’ve been poor my whole life, like a disease passing from generation to generation. But not my boys, not anymore."*(나는 늘 가난했지. 가난은 전염병처럼 세대를 건너 전염돼. 그러나 내 아이들은 안 돼, 더 이상은.) 황무지 속에서 죽어가는 마을에 번영하는 곳은 오직 은행과 카지노뿐. 인디언 원주민을 내쫓던 식의 원시적 약탈은 첨단금융이 행하는 세련된 약탈에 자리를 내주었고, 그 앞에 황인종과 백인종은 평등해졌다. 속수무책인 시대, 아이러니하게도 마을 주민도 30년 만에 처음 본 흘러간 시절의 원시적 강도짓이 은행가를 짐짓 당황하게 했다. 지배의 방식이 세련되어 졌어도, 저항의 방식은 여전히 구관이 명관인 걸까...
“We never lose our demons, we only learn to live above them,” (우리는 우리 내면의 악마를 없앨 수 없다. 오직 그 위에서 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뿐이다.) “Silence your ego and your power will rise."(너의 에고를 침묵시켜라. 그러면 너의 힘이 떠오르리라.) 16/11/03 * 영화 의 대사 중. 2013/11/17 - 신성하고 위대한 에고2013/11/13 - 무심(無心)의 의미2013/09/21 - 성인의 병2013/05/08 - 지식과 에고2012/06/28 - 마음이 취하는 모습들명대사들 영화들
섀도우런 홍콩은 게임보다는 SF 소설에 가깝다. 엄청난 양의, 정말 엄청난 양의 텍스트가 나온다. 이번엔 배경이 홍콩이라 풍수지리, 음양오행, 기의 흐름 같은 테마를 중심으로 게임의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다.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개념과 서구적이고 기술적인 개념 모두가 어우러져 게임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거대 사적 기업들이 지구 전역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회의 윤리는 무엇을 허용하고 허용할 수 없는가, 인간과 기계가 융합되는 세상에서 어디까지가 인간 본질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인가, 기(氣)도 분명한 과학적 실체라면 그것의 통제와 조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자들과 섀도우러너들의 생존을 위한 폭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성인을 위한 게임이다...
이즈오벨: 이 모든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조세핀 창의 평판에 흠집도 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 [쪼만한 데커의 얼굴이 굳는다.] 수만, 어쩌면 수십만 명이 격은 20년 간의 비탄, 20년 간의 고통들.. 고벳: 늘 그래. 그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이야. 힘있는 자들이 게임을 벌이고 댓가는 힘없는 자들이 지불하지. 16/08/08 * Shadowrun: Hong Kong - Extended Edition의 대사 중. 2016/08/08 - 섀도우런 홍콩(Shadowrun Hong Kong)2014/09/27 - 섀도우런 리턴즈2014/09/27 - 섀도우런 리턴즈의 교훈2015/05/23 - 섀도우런 드래곤폴2015/05/23 - 섀도우런 드래곤폴의 교훈2014/11/16 - 신봉건제도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