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까칠한 구도자의 시시비비 방랑기> 본문

리뷰, 서평, 감상

<까칠한 구도자의 시시비비 방랑기>

모험러

인(仁)하지 않으면 명상이 다 무슨 소용이고, 기공이 다 무슨 소용인가. 깨달음을 이뤘다는 둥, 한 소식 했다는 둥, 생사관문을 뚫었다는 둥, 쿤달리니를 깨워 차크라를 열었다는 둥, 사람의 오로라를 보고 미래를 본다는 둥 폼 잡아보지만, 끝내는 그저 괴팍할 뿐인 자신의 기질적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 철부지들. 뭔가 이뤘다고 착각하여 배움을 멈추고 탐구를 멈추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눈에는 지성의 빛이 없고 몸에는 대장부의 품위가 없으며 가슴에는 공손한 덕이 없으니, 사람들이 무얼 보고 '도인'들을 본받을 것이며 무얼 보고 명상의 길에 선뜻 들어설 것인가. 아, 환상적이고 신비로운 수행과 깨달음이 아닌 일상에서 차곡차곡 이루어지는 지극히 평범한 중용의 도(道)에 뜻을 둔 학인이야말로 참으로 귀하구나. 그러나 기인열사들도 모두 내버려 두어라. 누군들 철부지가 아니랴.


「잘 익거나 기름지거나 매콤하거나 달콤한 것은

참으로 맛난 것이 아니다.

참으로 만낫 것은 오직 담백할 뿐이다.


신비하거나 기이하거나 우뚝하거나 색다른 사람은

지인至人이 아니다.

지인은 오직 평범할 뿐이다.」


- 채근담


15/01/18


* 윤인모, <까칠한 구도자의 시시비비 방랑기>를 읽고.


'리뷰, 서평,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0) 2015.02.16
<잘쓰려고 하지마라>  (0) 2015.02.13
<임사체험>  (0) 2015.01.21
<까칠한 구도자의 시시비비 방랑기>  (1) 2015.01.18
<상처는 절대 소독하지 마라>  (0) 2014.12.06
나는 길들지 않는다  (0) 2014.12.03
<인터스텔라>  (0) 2014.11.08
이토 진사이의 <동자문>  (0) 2014.11.03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1 Comments
  • 프로필사진 지성의 전당 2018.07.30 20:45 신고 단언컨대 최고의 상근기는 어떤 사람이냐 하면 정말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이러한 의제를 놓고, 숙고하고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카르마도 아니며, 공덕도 아니며, ‘선택’을 받아서도 아니며, 특정 민족도 아니며, 특정 종교적 신앙심도 아니며, 특정 수행과 고행도 아니며, 특정 지역도 아니며, 특정 문화도 아닙니다.

    대다수의 구도자와 수행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자기는 태어난 ‘누구와 무엇’으로 여기며, 즉 육체와의 동일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서, 즉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고 여기면서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어린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에 대한 탐구를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뭐냐 하면, 정말 나는 ‘무엇’일까? 정말 나는 ‘누구’일까? ‘이것이(육체) 정말 나일까?’하고 스스로 자기에 대해서 한 번 더 의심해 보고, 의문을 가져 보는 것입니다.

    자기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날 수가 있겠습니까?

    자기가 자기를 오해하고 있으며, 그 오해로 인해서 ‘거짓된 자기’가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통찰은 ‘자기 불신’을 찾아내는 게 아니라, ‘지금의 자기’를 의심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최고의 상근기는 ‘도가 이렇다, 깨달음이 이렇다, 진리가 이렇다’ 이런 말을 늘어놓는 자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제는 ‘나는 무엇이다’에 머물지 말고 “나는 누구인가?”로 넘어오세요.

    이 말이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뭐냐 하면 ‘나는 누구이다’, ‘나는 무엇이다’에만 자기 ‘스스로’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순수합니까!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즉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자각’으로 이어지며, ‘자각’함으로 모든 것이 출발하고 ‘시작’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최종적으로 자기 자신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을 안다는 것이고, 자신을 안다는 것은 ‘홀로 독립적이다’라는 이해를 갖는 것입니다.

    즉 ‘자기 자신’에 대해서 책임을 다하는 것입니다.


    ‘존재’적인 측면에서는 의문에 대한 답을 구해야만 하며, 설혹 ‘답’을 구했다 할지라도 그 ‘답’의 진위여부는 영원히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지금까지의 동일시가 사라지고 나면, ‘나’는 ‘비존재’적인 측면으로서, ‘존재’적인 측면의 ‘주인’임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에 대한 자각은 완전한 ‘자유’라 할 수가 있습니다.


    -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합니다. www.uec2018.com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