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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위쳐와 마찬가지로 사프콥스키는 후스 전쟁 3부작에서도 대중 문화나 기타 문학의 전통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이 등장하고, 소설이 다루는 시기보다 뒷 사람인 괴테의 말도 인용된다. 심지어 1부 제목 바보의 탑 나렌투름마저 후대에 건축된 정신병동이지만, 작가는 그걸 능청스럽게 1400년대 중세에 써먹고 있다. 주인공: "이거.. 안전한 거에요?" 마법사: "안전한 건 없어. 그 어떤 것도. 모든 것은 이론일 뿐이야. 그런데 내 친구 중 한명이 말했듯, 모든 이론은 잿빛이며 오직 푸르른 것은 살아있는 황금가지일 뿐이지."* 또한 소설에는 구텐베르크가 직접 등판해 독자를 웃음짓게 한다. 그가 선보인 활판 인쇄술을 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모습이 재밌다. 공교롭게도 최근 구..
"교회 측이 세상에는 신이 없다거나, 그 누구도 십계명을 신경 쓰지 않는다거나, 우린 루시퍼를 경배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극받는 건 이해한단 말이야. 그런 종류의 금언에는 그들이 이단이라고 소리치는 게 이해가 된다고. 근데 실상은 어때? 그들을 가장 분노케 하는 게 뭐냐 이 말이야. 배교, 성체에 대한 부정, 무신론 이런 거? 아니, 복음주의적 가난을 실천하자는 목소리에 가장 분노하고 있지. 또 겸손, 희생, 신과 민중을 섬겨야 한다는 말 따위에 가장 분노하고 있고. 누구라도 그들에게 권력과 돈을 포기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광분하고 있어. 이게 바로 그들이 이단들을 그토록 맹렬히 공격하는 이유야. 젠장, 가난의 성자 프란치스코가 화형대에서 불태워지지 않았다는 걸 오히려 기적으로 여겨야 할 판이야..
"「욥기」는 겸손을 요구한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은 ‘내가 잘나서 그렇다.’거나 ‘신의 은총을 받았다.’는 식으로 교만한 생각을 하기 쉽다. 「욥기」는 내 행복이나 성공이 물거품 같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4년 한학자 성백효는 서울대학교 졸업식 연사로 나서 “주역의 64괘 가운데 모두가 길한 것은 오직 겸괘뿐이므로 이는 겸손함을 말한다.”라고 말했다. 다른 63괘에는 모두 길흉이 공존한다. 오직 겸괘만이 온전히 길하다." - 김환영, 따뜻한 종교이야기
"나는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사람마다 그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을 지닌 문장, 즉 단어의 연쇄가 있다고. 그런데 또 한 가지 문장이 더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가진 문장이었다. 운이 좋다면 이 가운데 두 번째 것을 얻게 된다. 하지만 첫 번째 것을 얻을 가능성도 확실히 있다. 그것이야말로 이런 문장이 작동하는 방식이니까. 사람들은 각자 별다른 훈련을 하지 않아도 그 치명적인 문장을 나누어주는 방법을 터득하지만, 두 번째 것을 나누어주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하다." - 필립 딕, 발리스(VALIS), 각색.
"옛날 옛적, 폴란드에는 한 가지 관습이 있었지. 다른 남자의 아내를 유혹한 자는 다리로 데리고 가는 거야. 거기에 부랄을 철 구두 징으로 콱 박아 넣는 거지. 그 사람 옆에는 칼 하나를 두고 이렇게 말해주는 거야. '자유를 원해? 그럼 스스로 잘라'" (다른 남자의 아내를 유혹한 주인공에게 한 말.) ---------- (신화 속의 생물을 본 주인공은 놀란다. 그러나 그 옆에 있던 기사는 놀라지 않았고, 그 모습에 주인공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게 어둠 속에서 나왔을 때 당신은 움찔하지 조차 않았죠. 심지어 목소리조차 떨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당신이 그와 얘기하던 모습은.. 감탄스러웠어요. 그건.. 밤의 생물이잖아요. 뭐랄까.. 낯선 존재(alien)말이에요." (기사는 한참 주인공을 바라보다 마..
얀 후스가 화형 당하자 극심한 민중 봉기와 학살극이 벌어진다. 그런 '이단'들의 만행을 성토하던 성직자에게 한 기사가 조용히 답한다. 얀 후스를 화형대에 매달지 않았더라면 그 모든 문제는 쉽게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왕 지기스문트는 얀 후스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하지만 성직자들은 이단에게 한 약속을 지키는 건 명예가 아니라 죄라며, 그 결정을 옹호한다. 그러자 그 기사는 내가 기사로서 서약을 한다면, 그건 신 앞에서 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설령 그게 터키인과 한 약속이라도 지키겠다고 말한다. 그러자 다시 성직자는 말한다. 터키인에게는 지켜도 되지만, 이교도에게는 아니라고. "무어인이나 터키인은 무지와 야만에서 온 이단이오. 그는 개종할 수 있소. 그러나 교황청 반대자들과 교회..
"모든 나라가 각자의 관습을 가지고 있다. 세계 각국과 그곳 사람들을 알아 나가는 일은 얼마나 흥미로운가. 예를 들어 실레지아와 독일 여인들은 눕혀 보면 절대 시프트 원피스를 그들의 배꼽 위로까지 들어 올리지 않는다. 폴란드와 체코 여인들은 기꺼이 스스로 몸을 들어 올려, 가슴 위까지 벗는다. 하지만 세상 그 무엇도 그녀들이 완전히 벗도록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 부르고뉴 여인들은 한 번에 모든 것을 벗어던진다. 그들의 뜨거운 피는 열정이 들끓는 순간 피부에 그 어떤 옷 조각도 닿는 걸 허용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 이렇게 세상을 익히는 일은 얼마나 기쁘기 그지없는가. 부르고뉴의 전원은 분명 아름다울 것이다. (이 이후 부르고뉴 여인의 교성)" - Sapkowski, Andrzej. The Tow..
「1420년 세상의 종말은 일어나지 않았다, 많은 것이 종말을 가리키고 있었음에도. 천년왕국설 신봉자들은 종말의 날짜를 꽤나 구체적으로 예언했다. 1420년 2월, 성 스콜라스티카의 날 다음 월요일로. 그러나 그날은 오지 않았다. 월요일은 왔다가 갔고, 화요일도 왔다가 갔으며, 수요일에도.. 여전히 아무것도 없었다. 주의 왕국이 도래하기 전, 그날을 예비해 온다는 심판과 복수의 날은 결코 도래하지 않았다. 천년이 지났음에도 사탄은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지 않았고, 그 어떤 죄인이나 신의 적도 검, 불, 굶주림, 우박, 짐승의 송곳니, 스코피언의 침이나 뱀의 독에 소멸하지 않았다. 신실한 자들은 타보르, 베라넥, 오렙, 사이언, 올리브산, 다섯 선택된 도시에서 이사야의 예언에서 말해진 대로 주의 두번째 도래..
그 비는, 계속 내렸다. 그것은 거센 비였고, 영구적인 비였고, 진땀나는 비였으며, 찌는 비였다. 그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가 쏟아부었다가 몰아쳤다가 눈을 때렸고 무릎까지 차올랐다. 그 비는, 다른 모든 비를 잠기게 하는 비였고, 다른 모든 비의 기억도 빠뜨리는 비였다 그 비는, 킬로그램과 톤 단위로 쏟아졌고 정글을 헤집고 나무를 가위처럼 잘라버리고 풀들을 깎아내고 대지에 터널을 내고 덤불을 쓸어버렸다 그 비는, 인간의 손을 주름진 유인원의 손으로 바꾸었고, 그 비는 단단한 유리같이 내렸으며, 그 비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 레이 브레드버리, The long rain(끝없는 비) 도입부. 직접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