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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이론은 잿빛이다

모험러

위쳐와 마찬가지로 사프콥스키는 후스 전쟁 3부작에서도 대중 문화나 기타 문학의 전통을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러브크래프트의 네크로노미콘이 등장하고, 소설이 다루는 시기보다 뒷 사람인 괴테의 말도 인용된다. 심지어 1부 제목 바보의 탑 나렌투름마저 후대에 건축된 정신병동이지만, 작가는 그걸 능청스럽게 1400년대 중세에 써먹고 있다. 

주인공: "이거.. 안전한 거에요?"
마법사: "안전한 건 없어. 그 어떤 것도. 모든 것은 이론일 뿐이야. 그런데 내 친구 중 한명이 말했듯, 모든 이론은 잿빛이며 오직 푸르른 것은 살아있는 황금가지일 뿐이지."*

또한 소설에는 구텐베르크가 직접 등판해 독자를 웃음짓게 한다. 그가 선보인 활판 인쇄술을 보고 미래를 전망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의 모습이 재밌다. 

공교롭게도 최근 구텐베르크 출판 혁명이 가져온 변화를 담은 게임도 나왔으니, 그게 바로 옵시디언의 펜티먼트(pentiment)다. 현재 서구권 커뮤니티에서 작은 마스터피스로 극찬을 받는 중. 역사, 예술, 철학, 신학의 측면에서 중세를 이토록 잘 담아낸 게임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실제 중세 역사 연구자도 등판해 찬사를 보냈고, 조쉬 소여와 소통하며 버그도 신고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디렉터 조쉬 소여가 게임 디렉터이면서, 하필이면 역사와 예술에 관해 학술적 이해를 끊임없이 발전시켜온 희귀한 사례라서라고 한다. 물론 펜티먼트는 학술 에세이가 아니라 재밌는 게임이지만, 그 문화적 맥락을 구현하는 데 제대로 진심을 담았다. 

한마디로 역사 덕후가 마음껏 열정을 펼쳐보인 게임. 소여가 인터뷰한 바, 게임 패스가 아니었으면 펜티먼트는 제안조차 못해봤을 거라고 한다. 옵시디언이 더는 매번 계약을 따내 근근히 생존하는 위치에서 벗어나자, 그라운디드, 펜티먼트 같은 열정 프로젝트가 탄생해 널리 호평받고 있다. 

* 안제이 사프콥스키. 바보의 탑. 후스파 전쟁 3부작 중 1권. 위쳐 작가의 역사 소설.
Sapkowski, Andrzej. The Tower of Fools: 1 (Hussite Trilogy) (p. 95). Orbit. Kindle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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