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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조와 단전호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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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학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만 전 세계 신비주의 전통에서 봤을 때는 참 독특하고 이단적인 그리고 비주류인 철학/수행 체계다. 거의 모든 신비철학과 형이상학 철학을 통합적으로 조망하고 있는 켄 윌버조차 단학은 언급하지 않는다(다시 자세히 읽어보니 언급하고 있다). 쿤달리니 요가의 차크라 개념이 단학의 개념과 가장 비슷하긴 한데, 쿤달리니 요가와도 여러 면에서 다른 것 같다. 한편 단학은 사기꾼이 득실거리고, 잘못 수행했다가는 상기병에 걸리는 수행체계로 악명이 높기도 하다.

그러나 이 수행이 주는 잠재력과 가능성은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관조(주시, 각성, 깨어있기)와 단전호흡이 결합하면 그것이 바로 성명쌍수요, 영육쌍전이다. 전자만 있다면, 심오한 몰입(삼매, 무의 경험)을 체험할지는 모르나 몸은 소외되고 건강을 잃을 수 있다. 후자만 있다면, (극단적 사례지만) 신묘한 능력이나 정력을 지닌 사기꾼이나 사이비 교주가 될 수도 있다. 단전호흡이 곧 인간 만들어주는 건 아닌 것이다. 

켄 윌버는 몸이나 감각적 인식에 초점을 맞추는 수행이 단지 그것에만 머물게 된다며 강하게 비판한다.* 나는 그의 걱정은 이해하지만 그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가 걱정하는 일은 실제로 많이 일어나지만 그건 몸과 감각에 초점을 맞춰서가 아니라, 오히려 덜 맞춰서 일어나는 것이다. 즉, 깨어있기를 행주좌와 어묵동정 모든 순간마다 행하지 않거나,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해서 그런 것이다. 오히려 '몸'(하강, 세속, 육체)에 '깨어있기'(상승, 초월, 영성)는 그가 온 힘을 다해 주장하는 비이원의 통합적인 철학체계에 완벽히 조화될 수 있는 통합적인 수행이다. 몸은 영원한 현재며, 형이상과 형이하가 만나는 장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얼마나 쉬운가, 심지어 따로 시간 낼 필요도 없다. 몸을 안 갖고 다니는 때도 있는가? 나는 아직 몸에 깨어있기보다 쉽고 간단하고 이런저런 군말할 필요가 없는 수행은 들어본 바가 없다. 몸에 깨어있다 보면, 마음에 깨어나기 시작하고, 마음에 깨어있다 보면 영에 깨어나기 시작한다.

13/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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