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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장, 명구절

인간은 몸이다

모험러
"어떻게 제 마음이 빛을 발하게 만들 수 있겠나이까?"

― 반성하여라.

"어떻게 반성합니까? 반성하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 반성한다는 것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너의 몸을 깨닫는 것이다.

"나의 몸을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이오니이까?"

― 너의 몸에 구현되어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중략)

"무언가 알쏭달송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뭔 말인지 명확히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이 기회에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인간은 몸이다. ... "인간은 몸이다"라는 이 한 명제를 우리는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몸은 인간의 전부다. 노자는 인간의 전부가 몸이라고 했다. 몸이 없으면 인간존재가 없다. 몸이 없으면 인생의 대환도 있을 수 없다. 불교가 말하는 일체개고도 실상 저기 서있는 나무가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고는 나의 몸으로부터 연유되는 것이다. 내 몸이 없는데 무슨 고통이 있단 말인가!

나의 몸은 시공연속체 속의 시공연속체이다. 인간의 모든 것,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오직 몸이 있기 때문에만 가능한 것이다. 이성이나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특수한 실체라는 생각은 근원적인 오류에 속하는 것이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나의 몸은 생멸의 한 단락에 불과한 것이지만 전 우주의 과정을 집약해놓은 진화의 산물이며, 그것은 우주의 공간이며 우주의 시간인 것이다.

(중략)

인간의 삶에는 보편, 절대, 완전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순간, 인간은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히거나, 그 광기를 제어하기 위한 겸손의 수단으로 또다시 초월적 실체들을 요청하게 된다. ... 칸트가 초월철학을 말했기 때문에 서양의 문명사는 대종합을 성취했지만, 기존의 문명의 편견들에서 결국 한 발자국도 본질적인 도약을 이룩하지 못했다. 궁극에 이르러 또다시 신과 영혼과 자유를 말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서구문명의 극도의 정신적 빈곤을 입증하는 것이다. 모든 초월은 내재적 초월일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은 몸이 몸을 초월하는 것이다. 몸이 몸을 초월하는 것은 몸에서 끊임없이 발현되는 천명의 주체적 자각일 뿐이다. 

13/07/17

* 도올 김용옥, <사랑하지 말자>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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