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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것도 자연적이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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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적인 것도 자연적이다

모험러

「다양한 영역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여러 세계를 존재론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와 관련해서 좀더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은 단지 하나의 영역이 다른 영역으로 환원 불가능하다는 사실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다양한 영역이 존립하기 위해서 우리가 좀더 신경써야 할 문제는 '의존관계'다. 이제 토대 혹은 기반이 되는 세계와 그런 토대에 의지해 있는 세계를 분리해서 말한다면, 토대에 의지해 있는 세계들은 그 토대에서 파생된 세계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들, '정치의 세계' '예술의 세계' '소설의 세계' 등은 모두 파생세계라고 지칭할 수 있다. 그러면 이내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토대세계는 무엇이고, 파생세계는 토대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파생세계의 독립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모든 파생세계는 동등한가?" 이러한 물음들은 자연스럽게 그런 파생세계들을 다루는 학문들의 존재론적이고 의미론적 문제들을 고찰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 이제 이러한 논의 모델을 파생세계로서의 상상의 세계, 혹은 여러 문화적 세계에 적용시켜보자. 그런 상상의 세계나 문화세계들도 자연적일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은 얼핏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문화세계라는 표현을 '인간에 의한', 따라서 자연적이지 않고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계처럼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이 '자연적'이고 무엇이 '인공적'인지는 그렇게 선명하게 가려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인간이 자연의 한 존재인 한, 자연적이라는 표현과 인공적이라는 표현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뿔논병아리가 주변 환경물을 이용해 튼튼한 둥지를 만든 것은 자연적인 반면, 인간이 만든 집은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엄격한 개념적 구별이라기보다는 자연과 인간을 대립시키는 문화적 관념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이 세계의 존재자와 그 존재자들이 다른 존재자와 관계하며 만들어내는 모든 행태 및 산물을 '자연적'이라고 부른다면, 그리고 인간이 자연의 한 존재자라면, 사실상 모든 인공적인 것 역시 자연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16/05/26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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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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