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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계도 자연종이며, 파생세계는 가능성의 세계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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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세계도 자연종이며, 파생세계는 가능성의 세계

모험러

「그런데 이렇게 생겨난 파생종들이라도 하나의 독립된 정체성을 지닌 개체들이 지속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면, 그것도 여전히 하나의 자연종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고유한 정체성을 규정하는가이다. 생물학적 의미의 종species 개념은 형태학적, 혹은 생태학적, 유전학적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이런 점에 비추어보면 어떤 일군의 개체들이 고유한 형태학적 특성과 생태적 특성을 공유하고, 유전적 특성을 공유하고 있다면 하나의 '종'으로 불릴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물리적이고 자연적인 세계와는 다르다고 여겨지는 문화의 세계나 예술의 세계는 파생종이기는 하지만 분명한 하나의 자연종이다. 그리고 그런 한에서 문화세계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함께 구성하는 중요한 부분 세계다. 우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후설이 지적한바 다양한 세계가 얽히고 중첩되어 있다. 그래서 문화세계를 배제하고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말할 수 없다. 즉 문화세계가 없는 세계는 '이' 세계와는 다른 종류의 세계다. 이렇게 문화세계가 하나의 자연종이라는 것은 무엇을 함축하는가?


파생세계는 가능성의 세계다. 이 점은 가장 강한 의미의 자연종인 물리적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탄소와 수소 그리고 산소 등의 분자들은 다양한 결합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런 결합은 끊임없이 시도된다.(이런 방식으로 설명을 이어가면, 파생세계에 관한 논의는 생물학적이라기보다는 화학적 비유로도 말해질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결합이 생겨나고, 그 결합을 토대로 다시 새로운 결합이 생겨남으로써, 우리 눈앞에 아미노산과 단백질, 그리고 마침내 숨 쉬는 생명이 생겨날 수 있다. 이처럼 주어진 가능성들 중 하나가 실현된 것이 우리 세계의 실제 모습이다. 물론 이런 가능성이 결코 무한히 열려 있을 수는 없다. 가능성은 모종의 한계를 갖는다. 그 한계는 자연적일 수 있고, 논리적일 수도 있다. 달리 말해 파생세계의 가능성은 파생세계 내의 존재자들에게 할당된 본질의 한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 의식이 구성한 대상의 '본질적 한계'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생명체 속에서는 끊임없는 가능성의 실현이 이루어진다. 네 가지 염기의 단순한 구조적 배열이 빚어내는 가능성은 기하학적인 수의 다양성을 만들어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종을 생각해보면 된다. 각 생물종 내의 개체들이 빚어내는 다양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파생세계들 역시 유사한 운명에 처한다. 무수한 돌연변이 세계와 다양한 변종이 생겨날 수 있다. 자연세계의 생명체들 중 어떤 돌연변이 개체들이 성공적으로 새로운 종을 만들어내는 경우가 있듯이, 파생세계들 중 어떤 것들은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시켜주는 토대를 구축할 수 있다. 물론 그런 파생세계들 중 일부가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역사적 흔적으로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는 것 또한 당연해 보인다. 소설가들이 구성해낸 파생세계는 아주 일시적인 세계다. 과장해서 말하자면, 유전적 변형이 만들어낸 일시적인 돌연변이 같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생세계들을 우리의 세계 목록 안에 집어넣는다고 해서 세계의 건강이 흔들릴 것이라는 걱정은 지나치다. 오히려 한 생태계 안에서 무수하게 시도되는 다양한 변이가 주변 환경의 변화에 역동적으로 대처하는 데 효과적이듯이, 세계를 이해하고 이에 대처하려는 인간에게 있어 파생세계로서의 문화세계가 지닌 다양성의 역할은 결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견고한 토대에 의지하는 듯 보이는 자연과학조차 사정은 다르지 않다. 과학자들이 기술하는(혹은 구성하는) 물리적 세계들은 주어진 '이' 세계를 설명하기 위한 모델들, 예들 들어 시공간 안의 사건들로 채워진 우주를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적 모델들로 설명해볼 수 있다. 헤르만 민코브스키의 선형적 세계 모델이나 복수-세계 모델(Many-Worlds Model) 등이 그렇다. 그런 모델들은 결국 수학적(혹은 논리적) 가능세계들을 개진하는 것이며 그것들 중 어느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잘 설명해줄 수 있는 모델인지는 경험적으로 결정될 문제다. 모델의 적합성이 경험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은 곧바로 두 가지 함축을 분명히 드러낸다. 하나는 그런 모델을 구성해보는 시도의 이유다. 우리가 여러 세계를 구성해보는 까닭은 사실 '바로 이' 세계를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서다. 즉 파생세계의 토대로서, 모든 가능한 변양을 일으키는 토대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파생세계의 변양 가능성이 바로 그런 토대세계의 논리적 가능성의 한계와 사실상 일치한다는 것이다. 


'세계족' 안에 포함되는 다양한 파생세계는 마치 유전자 풀이 빚어낼 수 있는 다양성처럼, 경우에 따라서는 무의미한 시도들을 포함하는 모든 가능성을 구현해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능성이 수학적인 의미의 무한은 아니다. 마치 유전자 조합의 수학적 확률처럼 파생세계의 가능성 역시 원칙적으로는 제한되어 있다. 이때 유전자 풀에 해당되는 것은 물론 파생세계의 토대가 되는 세계다. 그런 의미에서 토대세계는 가능한 파생세계의 한계를 미리 지정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16/05/26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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