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존재 (25)
모험러의 책방
「사실 메시아주의는 다양한 형태를 띠고 있고, 항상 종교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적 메시아주의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어떤 의 존재를 정립하는데, 그런 왕국의 도래는 현실 역사의 종말을, 즉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니체는 자신의 동시대인이었던 마르크스를 한 번도 인용한 적이 없다. 그렇지만 니체는 진보란 관념 자체를 거부하고, "잘못된 이념"으로 간주했다. 이는 문명의 개혁이 가능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단지 근대적인 '진보'라는 것이 실상 데카당스의 동의어, 인간성의 획일화와 위대한 것을 향한 모든 열망의 포기와 동의어였음을 말하는 것뿐이다. 항상 완전성을 다른 장소, 이후의 시간에 두지 말고, 초월성이 실제로 존재하는 곳에서, 즉 내재성의 한가운데에서 초월성을 찾아..
「여기서 우리는 변화를 살피는데 보다 확고한 근거를 갖추게 되는 바, 이원적이고 폐쇄적인 체계에서, 하나의 진전에는 반드시 다른 하나의 후퇴가 있기 마련('변變'은 양이 물러나는 것이고 '화化'는 그와 동시적으로 행해지는 음의 진전)이다. 변화가 있다함은 바뀜이 있음을 뜻한다. 생산이 없는 순환이란 없으니, 교대란 갱생의 조건 그 자체이다. 쉼이 없는 운동은 소진될 것이며, 운동이 되지 못하는 쉼 또한 소멸되고 말 것이다. 동과 정은 '서로를 내포하니', 낮은 운동이며 밤은 쉼이다. 이 교대로 말미암아 세계의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고 한결같이 지속된다. 하늘에는 가시와 비가시, 땅에는 성쇠의 교대가 있다. 그러므로 대립이란 '존재'와 '무'의 대립이 아니라 현동現動과 잠재潛在(명明과 유幽)의 대립일 뿐이..
「이를테면, 강剛과 유柔는 서로 대립하며, '건조'한 것이 있으면 습한 것도 있다. 그러나 건조한 것의 건성만을 고집하다 보면, 딱딱해지기는커녕 부러지기 십상이며, 습한 것의 습성을 고집하다 보면, 유순함이 지나쳐 액화되어 버린다. 적대적 양상의 각 부분은 상반된 성향들과 균형을 이룸으로써, 즉 반대 부분과의 의존과 소통에 의해 구체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여기에서 두 공리가 도출된다. 그 하나는, 이것은 저것과의 관계에서만 존재한다(각 양상은 다른 양상과의 대립관계를 통해서만 그 자체로 존재하며 정체성을 갖는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이것은 또한 저것이다(다시 말해, 정체성 속에서 확인되는 각 양상은 반대의 것에도 속한다)라는 사실이다. 물론 다름은 운행의 기원에 이미 나타난다. 하지만 대립에서 기인..
「중국인들은 실재적인 모든 것을 장치로서 간주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무한한 일련의 가능한 원인들을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 그들은 성향의 불가피한 특성에 민감하기 때문에, 단순히 개연적일 뿐인 목적에 대해서도 사유하지 않는다. 우주 발생론에 관한 목적론적 전제도 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그들은 세계의 시초에 대해 이야기하지도, 세계의 결말을 상상해보지도 않는다. 오래전부터 언제나 작동 중인 상호작용만이 존재할 뿐이며, 실재는 이러한 상호작용의 끊임없는 운행일 뿐이다. 그러므로 중국인들은 그리스적 개념에 따라 생성과 감각적인 것에 대립되는 '존재'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기능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들은 '실재 속에서 작동 중임을 우리가 어디에서나 확인할 수 있..
「철학: 하나의 관념에 집착지혜: (특권적인) 관념이 없다. 도달한 입장이 없다. 특별한 자아가 없다. 모든 관념을 동일한 면에 위치시킨다. 철학: 철학은 역사적이다.지혜: 지혜는 역사가 없다. (우리는 지혜에 대한 하나의 역사를 기술할 수 없다.) 철학: 설명에 의한 발전(증명)지혜: 말의 다양성 (지혜는 되돌아가야 하는 것, '음미해야 하는' 것이다.) 철학: 보편성지혜: 총체성 (현자의 말은 항상 지혜의 전체를 말한다. 하지만 매번 개별적인 각도에서 그러하다.) 철학: 내재성의 측면(카오스를 단절)지혜: 내재성의 근간 철학: 담론(정의)지혜: 통찰(격려) 철학: 의미지혜: 명증성 철학: 난해하기 때문에 숨겨져 있음지혜: 명증하기 때문에 숨겨져 있음 철학: 인식하기지혜: 깨닫기('to realize'..
「역설이완법의 기원: 에드먼드 제이콥슨의 업적 역설이완법의 토대는 에드먼드 제이콥슨 박사의 작업과 점진이완법이라는 그의 치료법과 함께 거의 8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 이 점진이완법은 서양의학에서 쓰이는 대부분의 이완법의 기원이 되었으며 20세기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변형되어 이용되었다. 수년간 점진이완법이 변비에서부터 이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에 보이는 효과에 대해 많은 연구가 수행되었다. 제이콥슨의 치료법이 세월의 시험을 견딘 것이다. 제이콥슨의 업적이 만들어진 배경 에드먼드 제이콥슨은 시카고의 중산층 가정에서 1888년에 태어났다. 총명한 학생이었던 그는 노스웨스턴대학교를 2년 만에 졸업했고, 18세가 되던 해에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하여 당시 최연소로 심리학박사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는 시카고대학교에..
"The fact is the sweetest dream that labor knows." (실재는 노동이 알고 있는 제일 달콤한 꿈이다.) - Robert Frost, 중 「이 구절은 여러 가지 면에서 수수께끼이다. ... 하지만 이 구절과 이 시에서 프로스트가 찾아낸 것은 삶과 앎을 위해서는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점이다.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일을 통해서만 우리는 존재, 즉 '실재'에 대해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해가 아니다. 이것을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다. 이것은 속삭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속삭임을 듣기 위해서는 그 속삭임이 들리는 곳에 아주 가까이 다가서야 한다.」* 15/03/24 * 니콜라스 카. (2014). 유리감옥: 생각을 통제하..
「우리의 우주는 가장 대칭적인 상태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하지 않으며, 우주 전체는 진공이었다. 그 후에 나타난 두 번째 상태에서는 물질이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은 대칭성이 아주 조금 붕괴되어 있으면서 에너지가 더 낮은 상태이다. 우주가 두 번째 상태로 접어들면 물질-반물질의 대칭성이 우주 전역에 걸쳐 빠르게 붕괴되고, 이 과정에서 방출된 에너지는 창조의 순간에 입자로 변형되었다. 우리는 이 사건을 '빅뱅'이라 부른다. ... 그러므로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의 답은 다음과 같다. "무(無)는 그 자체로 불완정하기 때문이다."」* - 물리학자 프랭크 윌첵 15/02/09 * 로렌스 크라우스, 에서 봄. 2015/..
, 또 하나의 뉴에이지적 헛소리를 담은 책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는데 저자 이름이 '다치바나 다카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누구인가. 치밀한 과학적 사고, 압도적인 독서량, 지독한 자료조사와 근거제시의 철두철미함으로 유명한 일본 최고의 지성아닌가. 그런 다카시가 임사체험에 관해 책을 썼다니.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나 그는 전세계를 직접 발로 뛰며 손수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러면서도 공정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자료를 해석하고 있었다. 때로는 추리소설을 읽는듯한 스릴도 있는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최상급의 저서다. 다만, 그가 임사체험이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오직 두 가지 세계관만을 염두해 둔 것은 아쉽다. 모든 것이 물질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일원론, 물질계..
우리에게는 비이원성의 철학, 중용의 철학이 필요하다. 「파르메니데스에 의하면 존재는 생각하는 것과 동일하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생각함으로써 존재하고, 하이데거에게 있어서도 참된 존재는 현존재이며, 죽음과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는 인간만이 현존재이다. 이들의 존재론 혹은 형이상학에서 참된 존재는 사유하는 존재라는 것이 깔려 있다. 이것은 이성적 사유에 의해서 규정된 것을 우선시하고 나머지 가치 개념을 부차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성적 도구라는 입장에서 이분법적 사유들이 발생한다. 정신/육체, 이성/감성, 인간/자연, 남성/여성, 개발/미개발 등의 구도가 근대적 사유의 핵심을 이룬다. "이러한 이분법적 사유 체계에 수반된 잘..
「'하느님'이란 말이 한에서 유래했다고 할 때에 한은 하나(一)이면서 여럿(多)의 양면을 그 속에 포함하는 말이다. 그래서 하느님도 이 양면적 성격을 갖게 된다. 일자로서 측면은 하느님의 초월적, 그리고 다자로서 측면은 내재적인 성격을 나타낸다. 전자는 유신론적(theism) 성격을 후자는 범신론적(pantheism) 성격을 나타내는데 극단적인 유신론과 범신론은 위험하다. 다자를 배제시킨 일자는 절대주의(absolutism)와 영원주의(eternalism)에 떨어지고, 일자를 배제시킨 다자는 상대주의(relativism)와 허무주의(nihilism)에 떨어진다. 신은 절대적이고 영원한 존재로 하늘 위에 있어서도 안 되고, 세상에 파묻혀 상대적인 무정부 상태로 빠져서도 안 된다. 신은 초월하면서 내재해야 ..
「신과 세계는 상호 의존적이다. 아무것도 독립적이 아니다. "존재하기 위해 자기 자신밖에는 요구할 것이 없는" 그러한 독립적 존재는 없다. 반대로 모든 존재들은 존재하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요구한다. 신이 고려됨이 없이 세계를 이해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사실성들이 이렇게 상호 의존적이게 하는 것은 이 우주를 본질적으로 행위의 과정으로서 파악하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다. 피조물을 떠나서 '창조성'의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창조성과 시간적 피조물을 떠나서 신에게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창조성'과 '신'을 떠나서 시간적 피조물에게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도 어렵다(화이트헤드, 중).」* 14/11/26 * 김상일, 화이트헤드 2014/11/17 - 형이상학의 과제 2014/11/27 ..
「존재는 어떤 기성품같이 이미 만들어진 틀도 아니고, 완전한 형상이나 이데아 같은 것도 아니다. 이런 틀, 형상, 이데아 같은 것도 됨됨에 의해 만들어져 나간다는 것이 과정의 원리이다. 만약 소강절이 항아리에 대해 점을 쳐보지 않았더라면 항아리는 깨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항아리가 도공의 손에 의해 만들어 질 때 운명이 결정되어져 몇 날 몇 시에 깨질 것이라는 운명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만약 그 항아리가 다른 사람의 손에 있었더라면, 그날 그 시에 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필이면 소강절의 손에 들어와 그의 방에 우연히 놓여져 있게 된 것이 바로 그 항아리의 운명을 결정했다. 그래서 운명이란 것도 과정 속에서 만들어져 나가는 것이다. 결코 우리는 운명의 방관자적 관찰자 위치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운명을 ..
'소멸'도 좋지만 김상일 선생이 쓰는 '이울어짐'(perishing)이라는 번역어가 화이트헤드의 의도를 더 잘 살리는 것 같다. 「아리스토텔레스 ― 더 정확히는 플라톤 ― 의 생성의 학설은 소멸의 학설(doctrine of perishing)에 의해 균형잡혀져야 한다. 계기는 소멸할 때에 존재의 직접성으로부터 직접성의 비존재로 이행한다. 그러나 이는 무(無)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여전히 '굽힐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인 것이다. '모든 시간은 소멸하여, 해명을 위한 방도가 되어간다.'(Pereunt et imputantur.) 인류의 일상적 표현은 우리 과거에 3개의 양상 ― '인과성', '기억', 그리고 직접적 과거의 경험을 그것의 변형된 현재의 기초로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는 것 ― 을 부여한다..
「물질의 공성이란 모습이 없는 참본성, 즉 공과 색, 무와 유를 상호 관통하는 진여성(眞如性)을 일컫는 것이다. '진공묘유'(眞空妙有), 즉 텅 빈 것은 묘하게 있는 것이다. 여기서 공은 모든 형상을 일으키는 살아 있는 '공'으로, 무궁무진한 생명력을 가진 허虛나 도道와 같은 것이다. '공'은 의식 차원의 개념이다. 물질의 공성을 깨닫는다는 것은 비어 있음과 있음이 한 맛임을 안다는 것이요, 생·주·이·멸 사상의 변화가 그대로 공상(空相)임을 깨달아 생사를 여의게 되어 걸림이 없는 의식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매순간 깨어 있는 의식이 아니고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묘각의 경지이다. 과거나 미래의 속박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있을 때 그러한 깨달음은 저절로 일어난다. 그러나..
"아무리 유물론자라고 해도 자신을 펼치고 싶지 않은 영혼이 있을까? 그러한 영혼은 존재할 수 없다. 삶의 목적이 실현되는 것은 영혼이 열리는 것이다."* - 하즈라트 이나야 칸 "나는 나의 존재를 펼치기를 원한다. 움츠리고 싶지 않다. 움츠러들 때 진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릴케의 말에 동의한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움츠러들 때마다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13/11/25 * 존 웰우드, 에서 봄. 2013/06/02 - 당신은 머지않아 죽는다 2013/11/10 - 잠재력을 실현해보고 싶은 충동
"우리 모두는 잠재력을 최대한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찾고 있다. 자기실현, 인간성의 개화, 인간성의 완성을 향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 욕구는 완전히 진화된 진정한 자기의 확립을 향한 추구이며, 통합(또는 합일, 전체성)의 역할에 대한 드높은 관심이다. 이원성이 보다 포괄적이고 차원 높은 일원성 속에서 해소되면, 인간 내부의 분열은 치유되고 보다 통합된 존재가 출현한다. 이것은 또한 자기 자신의 최선의 가능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충동이기도 하다. 만일 가능한 존재방식 이하로 존재하기를 의도한다면 경고하노니, 당신은 남은 여생을 깊은 불행 속에서 살게 되리라."* - 매슬로우 무서운 경고다. 어떻게 하면 가능한 존재방식 이상으로 살 수 있을까? 뭐 뻔하지, 위험한 삶을 사는 것이다. 불확실성에 도..
어제는 이불 빨래를 했다. 기다리는 시간에 오랜만에 라디오를 켜고 이리저리 채널을 돌려보다 윤하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잠깐 들었다. 윤하가 사연을 소개하는데 한 사연이 '남자친구랑 어디 와서 무엇무엇을 하고 있어요. 부럽죠? '식의 말이 통신어체로 과장된 귀여움으로 매우 부담스럽게 표현되어 있었다. 갑자기 종이(사연) 찟는 소리가 들리더니 윤하가 신경질내면서 "어우, 내가 니 친구냐?" 하는데 듣다가 야밤에 홀로 방에 누워 껄껄 웃었다. 저 옛날 신해철이 '음악도시'에서 "앞으론 이런 사연 보내지 마세요" 하고 북북 사연을 찢은 이후로 이런 통쾌함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윤하의 목소리는 어딘지 좀 달관한듯하고 쓸쓸한듯한 목소리였다. 오늘 컴퓨터를 켜고 다음 메인 화면을 봤더니 각종 유명인사의 트위터란에 윤..
"어떻게 제 마음이 빛을 발하게 만들 수 있겠나이까?" ― 반성하여라. "어떻게 반성합니까? 반성하고 싶어도, 무엇을 어떻게 반성해야 하는지를 모르겠습니다." ― 반성한다는 것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나 자신을 안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 너의 몸을 깨닫는 것이다. "나의 몸을 깨닫는다는 것이 무엇이오니이까?" ― 너의 몸에 구현되어 있는 우주의 모든 원리를 깨닫는 것이다. (중략) "무언가 알쏭달송 잡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뭔 말인지 명확히 파악이 되질 않습니다. 이 기회에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인간은 몸이다. ... "인간은 몸이다"라는 이 한 명제를 우리는 충실히 이해해야 한다. 몸은 인간의 전부다. 노자는 인간의 전부가 몸이라고 했다. 몸이 없으면 인간존..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을 끝맺음하는 절의 제목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카뮈의 말을 빌려 우리의 삶을 시지프스의 처지와 비교한다. 잘 알려져 있듯이, 시지프스는 원점으로 다시 돌아오는 바위를 쉬지 않고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우리 삶도 그토록 고된 형벌이란 말인가? 삶은 헛되고 무의미하다는 말인가? 아니다.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를 통해, 삶의 고통을 회피하지 말고 '자각'하라고 말했다. 그 어떤 운명도 경멸이나 무시, 회피를 통해서는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을 자각할 때, 바위를 굴려 올리고자 몸부림치는 그 투쟁 자체도 우리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삶이 주는 고난 속에서도 시지프스는, 아니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결국 시지프스는 있는 그대로의 ..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말이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시대는 데카르트의 명제를 다음과 같이 바꿔 놓았다. "나는 보여진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 「사람들이 나를 보면 볼수록,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선택하면 할수록, 점점 더 내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납득시켜주는 증명처럼 여기게 되는 셈이다. 바로 이러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람들이 유명인들이다.」* 13/01/29 * 지그문트 바우만, 을 참조, 각색. 2013/01/27 - 유동적 현대의 삶 2012/10/30 - 듣고 싶지 않아 2012/12/17 -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내가 존재한다는 것, 이것 이외에 모두는 가설이다.* 그러니 믿어야 할 건 없다. 알아야 할 건 많지만.** "문: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답: 하늘과 땅을 가리키지 않는다. 문: 하늘과 땅을 가리키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답: 오직 나 홀로 존재한다."*** - 천평산 종의선사와 한 학인의 대화 13/01/01 * 마하라지, 어디에선가 했던 말. ** 오쇼, 에서 했던 말. *** 이은윤. 에서 봄.
아래는 내가 읽은 가장 혁명적인 구절의 하나. 「1. 나는 누구입니까? 일곱 가지 기질로 이루어진 이 거친 몸은 내가 아닙니다. 소리를 듣고, 감촉을 느끼고, 색을 보고, 맛을 느끼고, 냄새를 맡는, 다섯 가지 지식 기관은 내가 아닙니다. 말을 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다섯 가지 행위 기관은 내가 아닙니다. 호흡 등의 다섯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쁘라나 등 다섯 가지 생명 기운은 내가 아닙니다. 생각하는 마음조차도 내가 아닙니다. 대상에 대한 잔류 인상만 지니고 있을 뿐, 아무런 대상도 아무런 기능도 없는 무지 또한 내가 아닙니다. 2. 이것이 다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 앞에서 말한 것들을 모두 ‘이것도 아니다’라고 부정한 뒤에 단 하나 남는, ‘나는 존재한다’(I am) ..
영성과 진화론이 조화될 수 있을까? 있다. 진리는 결국 하나로 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적응들은 말 그대로 값비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부모도 자식들에게, 수백만 년 동안의 개발을 통해 최적화된 감각, 감정, 정신 능력이라는 형태로 엄청난 부를 주는 것이다. 이 적응들은 믿을 수 있고 효율적이고 복잡하며, 스스로 성장하고 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떤 기술도 이들을 당해낼 수 없다. 인간의 유전체는 조상에게 전달받은 부의 금고요,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다. 소비자본주의가 우리가 이 사실을 망각하도록, 그래서 생명 그 자체에 지고 있는 빚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진정한 필수품이자 고가품인 생물학적 적응들을 소유한 우리가 시장에서 거래되는 ..
나는 마르크스의 모든 저서 중 그가 26살에 쓴 를 가장 사랑한다. 내게 이 저작은 노자의 과 장자의 와 같은 반열이다. 아, 나는 얼마나 생각하고, 사랑하고, 탐구하고, 노래 부르고, 싸워 왔는가. 나는 얼마나 생명을 더 표현하였고 더 단순한 삶을 살아왔는가. 나는 오늘 더 '존재'하였는가 더 '소외'되었는가. 마르크스는 묻는다. “그대가 먹고, 마시고, 책 사고, 극장, 무도회, 선술집에 가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이론적으로 따지고, 노래 부르고, 그림 그리고, 싸움하는 일 등을 더 적게 할수록, 그대는 더욱더 많이 절약하게 될 것이고, 좀벌레나 도둑이 먹어 치울 수 없는 그대의 보화, 그대의 자본은 더욱더 커질 것이다. 그대의 존재가 적을수록, 그대의 생명이 덜 표현될수록, 그대는 더욱더 많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