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성(誠) (13)
모험러의 책방
「모든 생성은 멈추지 않고 지속된다는 점에서 이미 조절을 내포한다. 조절은 유동성 속에서만 가능하다. 또한 내재하는 이 자극-조절의 능력은 운행의 비가시적 효능의 차원을 이룬다. 반면 비가시나 정신의 영역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면 불임성은 즉시에 야기되며, 그 결과 사물화(정체와 소멸)가 초래된다. 현자의 말도 이와 같아서, 그의 말이 단지 암기되고 인용되는 데 그친다면 더 이상 그 말의 생동한 의미의 원천인 내적 '흐름'을 잃게 된다. 왜냐하면 말해진 것이란 그 자체만으로는 (논리적 '진실'을 내용으로 하는) 가치를 지닐 수 없기 때문이다. 말의 뜻은 현행상의 자극과 작동상의 운행 속에서만 타당성을 지닌다. 말은 '정신'을 통하여 전달될 때 비로소 그 진정성을 얻는다. 이 통행과 활성의 기능을 중시..
「'긴장-이완', '펼침-접힘' 또는 '질서-무질서', '도약-쇠퇴': 모든 역사는 냉혹하게 '고저의 기복을 따라' 진행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투사된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내재해 있는 필연성에 따른 것이다. 즉, 작용 중인 요인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고갈되고, 그것을 보충하는 요인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므로 규제적인 역학이 생성의 각 단계마다 본래부터 내재해 ― 가장 신중한 방식으로 ―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규제적 역학이 모든 역사적 상황을 조작 가능한 장치로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전략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지만, 인류가 나아갈 도덕적 방향의 역할을 할 정도로 그렇게 지속적으로 실생활에 적용된다. 따라서 사물의 흐름 속에서 작동 중인 경..
「저는 삶을 살아가면서 실수를 피하거나 목적지에 반드시 도달하게 만드는 '성공 보장 원칙' 따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설령 그에 대한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구히 흰 여백의 페이지들로 가득해야 하고, 새로운 원칙들이 첨가될 수 있는 빈칸을 남겨두어야겠죠. 그리고 삶의 새로운 원칙들이란 분명 계속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끈질기고 지속적인 실천을 통해 떠오르는 것일 겁니다. 세계는 변하고 있고 계속해서 스스로를 변화에 맞춰 나갈 겁니다. 우리의 의도나 계획도 이 변화에 영향을 미치긴 할 겁니다. 하지만 개개인의 삶에 적용할 만한 원칙을 세우기도 전에 매우 빠르게 변화할 것입니다. 그러니 점이나 치면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열심히 일합시다. 힘닿는 데까지 지치지 않고 해야 합니다. 계속 하세요. 계..
「요컨대 우리가 희망하는 것들의 실현가능성을 뒷받침해줄 그 어떤 확실성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그 일이 성공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것이 중요한 전제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희망하기를 멈추는 이유가 되지는 못합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다고 하지만, 글쎄요, 우리가 삶에서 실천하는 것들 대부분이 성공에 대한 보장이 없는 것이지요. 또한 반드시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보장도 없습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실패나 패배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늘 이런 실패의 가능성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하죠. 또한 이것은 희망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도 우리는 무언가 희망해야 합니다. 만..
「공자가 사람을 취할 적에는 언제나 타고난 자질의 장점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을 좋아하는 면에 대해 크게 칭찬하였다. 안연에 대해 칭찬했던 것과 같은 일이 이와 같은 경우이다. 지금 자천에 대해서도 우선 그 덕을 칭찬한 뒤에 이것을 그 스승과 친구의 훈도의 성과로 파악하였다. 대체로 타고난 자질의 뛰어남에는 한계가 있지만 학문의 효과는 무한한 것이다. 만일 스승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친구에게서 도움을 받으면서 그 장점만을 받아들이다면 어떤 학문에도 통달할 수 있으며 어떤 덕이라도 완성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후대에는 진실로 호학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아랫사람에게 질문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좋은 친구를 멀리 하게 되니 결국 학문의 효과가 선천적 기질의 편향을 극복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마치 ..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의 진정한 풀이는 합생이란 말로 풀이될 수 있다고 본다. 어떤 시작도 시작을 의도할 때 우리는 그 출발점이 무로부터 출발되는 것인 양 어려워한다. 그러나 화이트헤드의 합생 이론에 의하면 모든 시작은 과거의 '힘' 즉 과거에 축적된 소여 대상 자료들과 함께 일어난다. 과거의 자료에 어울림으로 현재의 신기원이 나타난다. 그래서 현재의 시작은 과거라는 엄청남 힘에 엎혀 나타나게 되기 때문에 시작은 이미 반 이상이 시작된 상태에서 나온다. 시작인 반인 두번째 이유는 합생 속에는 부분과 전체의 구별이 없다는 점이다. 시작을 일 전체의 몇 분의 일로 생각하고, 부분이 모여 전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엇을 시작할 엄두를 못 낼 때가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작..
「유교만의 독특한 사유가 있다. 유학은 철상철하 ‘자기’를 문제 삼는다. 유학은 자기 너머를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를 구성하는 세계는 그와 맺고 있는 구체적 관계의 총칭을 의미한다. 그것은 가족관계일 수도 있고, 교유관계일 수도 있고, 몸담고 있는 직장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유학의 ‘자기’는 세계와 절연된 유폐된 자아가 아니면서, 그렇다고 전체나 보편에 자신을 헌납한 유리된 자아도 아니다. 이런 점에서 유학은 내면성과 외면성을 이분화하지 않고 ‘구체성’에서 통합한다. 유학은 이 구체적 관계에서 내가 나를 자각적으로 의미화하는 것에 모든 노력을 경주한다. 그로 하여 결과되는 보상은 이차적이다. 그는 그것이 자기를 실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일에 몰두한다. 그것뿐이다. 그는 “인(仁)이 ..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호학好學)이 으뜸이고 영민함이 그 다음이며 재능 있는 것이 또 그 다음이지. 대체로 호학의 이점은 깊어지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높아지면 누구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재능과 영민을 다한다 해도 모두 미칠 수 없지. 그러므로 호학이 천하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야. 사람들은 모두 총명이 귀한 줄은 알면서도 실상 호학의 효험이 총명보다 수만 배가 되는 줄은 모르지. 총명이 남 같지 않다고 걱정하기보다는 호학의 뜻을 스스로 돈독히 하는 게 낫단다.」* 14/11/10 * 이토 진사이, 에서 발췌, 재구성. 성(誠) 배움 이토 진사이
「성性, 성星, 성聖, 성誠은 다 같은 뜻으로 볼 수 있다. 종교, 철학, 예술, 과학을 옛날 사람들은 인, 의, 예, 지라고 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성性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이 성性을 발전시켜 인, 의, 예, 지가 되면 그것이 성聖이다. 그리고 이 성聖이란 말은 귀(이耳)는 종교, 눈(목目)은 철학으로, 입(구口)은 과학으로 코(비鼻)는 예술로 연결시켜 종교와 철학과 예술과 과학을(이목구비) 완성시켜 왕이 된 것이 성聖이라는 뜻이다. 주자나 퇴계가 말하는 성性이란 바로 인, 의, 예, 지라고 보면 되겠다. 인, 의, 예, 지가 인간이 갖고 있는 영성, 이성, 감성, 오성이며 이것이 발전되면 종교, 철학, 예술, 과학이 되어 인간의 문화와 문명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성性이라는 것이 무..
"자신에게 정직하라. 그러면 꼭 밤이 낮을 따르듯 남에게도 거짓된 행동을 하지 못하게 된다."* - 셰익스피어 의 폴로니우스의 대사 14/11/03 * 하워드 블룸, 에서 재인용. 2014/02/10 - 진실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2014/02/04 - 셰익스피어
나는 맹자, 육상산, 왕양명으로 이어지는 유가의 심학(心學) 라인도 진화론적 신비주의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이 진화론적 신비주의를 가장 분명하고 종합적으로 세상에 전하고 있는 인물은 켄 윌버일 것이다. 「세상에는 본질적으로 두 종류의 신비주의가 존재한다. 오직 초월과 신성(the Light)과의 합일만을 가르치는 신비주의가 있고, 초월적인 것과의 합일을 존중하면서도 물질 속에서 은총으로 변형되는 신성이 탄생함을 강조하는 '진화론적 신비주의'가 있다. 역사는 첫 번째 신비주의가 계급제도, 불평등, 부정의와 손쉽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신비주의에서는 세상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하거나 환상이고, 그런 세상에서 초월적인 자유를 누리는 방법은 오직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비..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은 진리(Truth)가 아니라 진실됨(Truthfulness)이다."* - 켄 윌버 14/02/10 * 브래드 블랜튼, 에서 재인용. 2014/02/04 - 2014/02/02 - 중용에서 성(誠)의 번역과 해석 켄 윌버
『중용』을 읽다 보면 늘 성(誠)의 정확한 번역어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 번역 판본마다 번역어가 다 다르다. 아예 번역을 안 하는 경우도 있고, '정성'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고, '열렬함'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고, '성실'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고, '진실'이라고 번역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찾아보니 한 논문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유가철학에서 성(誠) 개념은 단순한 윤리적 품성 개념에 한정되지 않는다. 중용만 보더라도 성실함이나 정성됨을 넘어, '존재의 시작과 끝이며', '하늘의 도'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성실'이나 '정성됨', '성심' 등으로 일정하게 번역하는 것은 왕왕히 오해를 일으킬 수 있다. 서양에서도 초기에는 단순히 'sincerity'라 번역하였으나 최근에는 더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