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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옛날에 한 목공은 마치 신이 빚어낸 것처럼 너무나 훌륭한 종 받침대를 만든 다음에 말하길, “세상사로부터의 초연함과 ‘잊어버림’(보상과 칭송에 대한 잊어버림 그리고 자기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잊어버림)을 통해 내가 깨달은 진리는 나의 ‘호흡-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19장, 곽경번 판, p.658). 그런데 이러한 경험은 모든 사람이 가장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피카소는 목공의 이러한 고백에 가장 훌륭한 해석을 제공해주고 있다. “각각의 존재는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평범한 사람은 이 에너지를 수만 갈래로 나누어 소모한다. 나는 모든 에너지를 단 하나의 방향, 즉 그림에 쏟아붓고, 그것을 위해 나머지 것들 ― 당신과 그 밖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나 자..
「스승은 네 가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즉, (특권적인) 관념이 없고, (미리 정해진) 필연성이 없고, (고정된) 입장이 없으며, (개별적인) 자아가 없다.」* - 『논어』, 「자한」, 4 15/09/05 * 프랑수아 줄리앙. (2009). 현자에게는 고정관념이 없다: 철학의 타자. (박치완 & 김용석, Trans.). 한울. 에서 재인용. 2014/08/20 - 마음을 닦는 학문 2014/08/18 - 공자, 노자, 붓다의 맛 2014/01/19 - 무아(無我)의 군자 2015/09/05 - 현자에게는 내가 없다 프랑수아 줄리앙 논어
「현자는 이렇게 "그 어떤 개별적인 관점 속에 정체되는 것"을 삼가했으며 "만물의 흐름과의 일치"를 주구하면서 변화를 사유의 거울로 삼고 "과정과 논리"를 지혜의 수련법으로 익혔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유를 들어 줄리앙은 "현자에게는 고정된 '입장'이 없다"고 감히 주장했다. "현실은 지속적인 변모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자의 행위 또한 그러한 것이다." 현자에게 고정관념이 없다는 것은 "현자에게는 내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줄리앙은 그 이유를 다음 네 가지로 설명한다. i) 현자는 자신이 주장하는 관념이 있다고 해도 이를 통해 아무것도 재단하지 않기 때문이며, ii) 그 '아무것'도 존중해야 할 정언명령으로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며, iii) 또한 그 어떤 입장 속에 고정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며..
, 또 하나의 뉴에이지적 헛소리를 담은 책이려니 하고 지나치려는데 저자 이름이 '다치바나 다카시'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누구인가. 치밀한 과학적 사고, 압도적인 독서량, 지독한 자료조사와 근거제시의 철두철미함으로 유명한 일본 최고의 지성아닌가. 그런 다카시가 임사체험에 관해 책을 썼다니. 읽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역시나 그는 전세계를 직접 발로 뛰며 손수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그러면서도 공정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자료를 해석하고 있었다. 때로는 추리소설을 읽는듯한 스릴도 있는 흥미진진하고 유익한 최상급의 저서다. 다만, 그가 임사체험이 해석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오직 두 가지 세계관만을 염두해 둔 것은 아쉽다. 모든 것이 물질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일원론, 물질계..
말로만 다를 뿐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깨달은 성자로 불리는 라마나 마하리쉬는 힌두교 전통의 수행자였다. 그러나 그의 깨달음이 불교 전통 아래에서 수행한 스님들의 깨달음과 어디 다르던가? 마히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읽어보라. 책을 펼치자마자 내리 꽂히는 무아無我의 벼락에 정신이 다 얼얼할 지경이다. 「붓다 사상의 중핵을 이루는 공 개념이나 유아唯我 개념이 힌두 사상의 아트만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불교사상에 관한 대부분의 저작들은 붓다의 연기법이 힌두 사상의 브라흐마나 아트만과 같은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명백한 결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힌두 사상에서 유일자 브라흐마와 개별 영혼 아트만은 생명의 본체와 작용,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말하자면 생..
"공자의 절사(絶四)*, 안연의 낙도(樂道),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는 모두가 똑같이 마음을 닦는 학문(心學)이다."** 14/08/20 * 절사(絶四): 무의(毋意: 억측), 무필(毋必: 집착), 무고(毋固: 고집), 무아(毋我: 아집). ** 선영 지음, 박완식 편역, 심학
「애석한 것은 후세의 학자들이 각자 자기가 소속된 가르침에 묶여 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유학을 익히는 자는 그 속에서 구속되어 있고, 노자를 익히는 자는 세간의 모든 제도와 가치를 무시하고 미친듯이 행동을 방종하게 하며, 불교를 배우는 자들은 자기만이 옳다는 아집 때문에 그 소견이 궁색하게 좁아진다. 이러한 학자들의 폐단은 모두가 아집에 기인하는 해로움이다. 학자들이 정말로 애써 아집을 타파할 수만 있다면 광대한 시야를 가리고 있는 울타리를 부수고 대방가(大方家)가 되리라. 후세에 불교를 배우는 무리들이 노자를 모른다면 곧장 단멸의 허공 속으로 달려가느라 목전에 존재해 있는 법이 모두 장애가 되고 하는 일에서 해탈을 얻지 못할 것이며, 공자를 모르고 불법만을 가지고 세상을 거닌다면 결단코 세도인정(世道..
Enlightenment, Self, and the Brain. How the brain changes with final liberation from Todd Murphy on Vimeo. 신경신학자 토드 머피의 강의 세 번째. '나'라는 개인의 실체가 있다는 느낌, 즉 '자아'의 감각은 뇌가 만들어내는 신경학적인 환영(hallucination)임을 설명하며 '무아'를 주장한 붓다의 의견이 과학적으로 옳았음을 입증해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윤회하는 '나', 개인(individual)이 있느냐는 질문의 답은 '없다'이다. 깨달음은 바로 이 '나'라는 자아의 느낌이 소멸하는 과정이다. 강의는 뇌의 어떤 변화가 이런 과정을 만들어내는지 뇌 각 부위의 역할과 상호작용을 통해 깨달음의 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
요즘엔 출판사 서평만 읽어도 책의 핵심을 다 알게 되는 것 같다. 아래는 신간 출판사 서평의 일부이다.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분석하는 것을 멈추라고 요구한다. 오히려 자신을 잊어라! 동의한다. 칙센트미하이도 어느 책에선가 사람이 불행을 느낄 때는 대부분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라고 말한 바 있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심리학 정보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졌을까? 아니, 행복해질 수는 있을까? 저자는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짓부터 당장 그만두라!”고 당부한다. 자기 내면의 문제를 찾고 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아 파헤칠수록 “삶은 지뢰밭이 된다!”는 것이다. 너무 많이 생각하고, 최고의 결과를 얻으려는 노력은 오히려 우리를 엉뚱한 길로 인도한다. 고민과 고통으로 점철된 가..
「군자가 집중된 상태에서 중용을 행하면 사적인 욕심이 없는 무아(無我)이기 때문에 무엇을 행하여도 무엇을 하겠다는 의식적인 것이 없고, 반드시 하겠다는 것도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하여도 행함 자체에 얽매임이 없다. 무엇을 하여도 무엇을 했다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무지(無知)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군자는 언제나 세상을 위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성실하여 수고로우면서도 겸손할 따름이다. 군자가 무지, 무아라는 것은 자신의 본성을 자각하여 인의예지의 사덕을 주체로 살아감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체적 자아는 없지만 도덕 주체아는 있으며, 개체적 관점에서 얻어지는 지식은 없지만 지혜는 있다. ... 중용(中庸)을 군자의 성정을 중심으로 나타내면 본성이 시의성에 맞게 그대로 발현하는 치중화(致中..
「쾌락은 강력한 동기유발 요소이지만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아요. 그런 면에서 쾌락은 사람들에게 현재의 욕구에 만족한 채 편안함과 안정감을 찾게 하는 보수적인 힘이죠. 그러나 무아도취(enjoyment)는 항상 즐거운 것만도 아니고, 때로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등산가에게는 탈진, 혹독한 추위 때문에 온몸이 얼어붙을 것 같은 고통, 추락 사고를 당할 위험이 으레 따르게 마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산에 오르는 일을 결코 그만두지는 않거든요. 물결이 넘실거리는 청록빛 바다가 훤히 보이는 아름다운 해변의 야자수 아래 앉아 칵테일을 음미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부는 산마루에서 느끼는 환희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13/12/13 * 마틴 셀리그만, ..
에고를 죽이려고 노력했었다니, 아니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미친짓이었던가. 그건 마치 몸을 죽이고도 살아 있기를 바라는 것과 같지 않은가? 에고야 그 동안 정말 미안. 「에고와 영혼, 자아가 모두 동시에 현존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지나칠 정도로 혼동을 일으켜 온 관념인 '무아(無我)'의 진정한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무아는 기능적인 자아가 결여된 상태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그런 상태는 현자가 아닌 정신병자다). 무아는 개인이 더 이상 그런 자아와 배타적으로 동일시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무아'라는 개념에 문제가 있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성인다운'이나 '영적인'이라는 말에 대한 모든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에고 없는 현자'를 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보통 현자들..
「설간(양명의 제자)이 꽃밭의 풀을 뽑으면서 말했다. "세상에서 어찌하여 선은 배양하기 어렵고, 악은 제거하기 어렵습니까?" 양명 선생께서 대답하셨다. "배양이랄 것도 없고, 제거라 할 것도 없다. 그렇게 선악을 보는 것은 모두 낡은 관념으로부터 생각을 일으킨 것이므로 곧 잘못될 수 있다." 설간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양명 선생이 이어 말했다. "천지의 생명의지는 꽃이나 풀이나 한가지이다. 어찌 선악의 구분이 있겠는가. 그대가 꽃을 감상하려고 하기 때문에 꽃을 좋은 것으로 여기고 풀을 나쁜 것으로 여긴다. 만약 풀을 쓰려고 한다면 다시 풀을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한 선악은 모두 네 마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선도 없..
한 스님과 더불어 앉아 윤회, 수행, 붓다, 깨달음, 소의경전, 절간 생활, 조계종 상황, 화엄경 등의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내가 여쭈었고, 스님이 답해 주었다. 윤회에 관해서는 이런 질문을 했다. ― "부처님 말씀으로는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제가 이해하기에는 이 '무아' 사상이야말로 힌두교의 '아트만' 사상과 다른 불교의 핵심 사상인데요, 그렇다면 '나'가 없는데 윤회하는 주체는 누구입니까?" "이런 비유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여기 불꽃이 일고 있는 초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그리고 꺼져 있는 초도 하나 놓여있습니다. 이제 이 초의 불을 옆의 초심지에 닿게 해서 불을 옮겨 봅시다. 자, 무언가 옮겨지긴 옮겨졌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옮겨진 주체를 말할 수 있을까요? (... ..
일부 종교를 비롯 도 닦는 업계에서 내가 가장 많이 목격한 광경은 다음과 같다. 「브라이언: 틀렸다! 나를 비롯해서 그 누구도 따를 필요는 없다! 스스로 판단하란 말이다! 너희는 모두 홀로서야 한다! 군중: 그렇습니다! 홀로서야 합니다! 브라이언: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군중: 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군중 속 남자: 아니던데······. 군중: 쉿! 조용히 해.」 - 몬티 파이선(Monty Python)의 중에서* 한편, 조제 보베의 집에는 노동자계급의 슬로건인 "하나님도 주인도 없다(Neither God nor Master)."가 걸려 있는데, 보베는 이 문장을 약간 바꾸어 걸어 놓았다고 한다. "하나님도 주인도 조제 보베도 없다(Ni Dieu, ni Maitre, ni Jose B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