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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만 개념은 공空이나 무아無我 개념과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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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다를 뿐이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깨달은 성자로 불리는 라마나 마하리쉬는 힌두교 전통의 수행자였다. 그러나 그의 깨달음이 불교 전통 아래에서 수행한 스님들의 깨달음과 어디 다르던가? 마히리쉬의 『나는 누구인가?』를 읽어보라. 책을 펼치자마자 내리 꽂히는 무아無我의 벼락에 정신이 다 얼얼할 지경이다.

「붓다 사상의 중핵을 이루는 공 개념이나 유아唯我 개념이 힌두 사상의 아트만과는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불교사상에 관한 대부분의 저작들은 붓다의 연기법이 힌두 사상의 브라흐마나 아트만과 같은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며 그것에 대한 명백한 결별을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힌두 사상에서 유일자 브라흐마와 개별 영혼 아트만은 생명의 본체와 작용, 전체와 부분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말하자면 생명의 전일성 내지는 존재의 관계성을 드러내기 위해 도구적으로 사용한 개념일 뿐이다. 브라흐마가 만유의 본질로서 내재해 있는 것을 두고 아트만이라고 부른 것이니 아트만은 분리할 수 없는 상호 의존의 관계로서 결국 하나다.

브라흐마나 아트만이 붓다의 '공' 개념이나 '유아' 개념과 다르지 않음은 『우파니샤드』의 다음 글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브라흐마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아트만이 곧 브라흐마이다."

또한 유일자 브라흐마와 브라흐마의 자기현현인 만유를 불가분의 하나, 즉 불멸의 음성 '옴'으로 나타낸 것은 브라흐마나 아트만의 파동적 성격을 말하여 주는 것으로 이는 곧 '공' 개념과 상통한다.

"불멸의 음성 '옴'은 과거요 현재요 미래이며 시간을 초월한 존재 브라흐마이다. 일체 만물이 '옴'이다."

『바가바드 기타』에도 "참자아 아트만은 벨 수도 없고, 태울 수도 없으며, 젖게 하거나 마르게 할 수도 없는, 영원불변하고 두루 편재하는 유일자이다."라고 나와 있다.

흔히 브라흐마나 아트만은 절대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있으니 무아無我나 공空과는 다르다고 하는 식의 논리는 언어의 미망에 빠진 것이다. 절대유일이라는 표현은 생명의 불가분성을 나타내기 위해 쓴 것일 뿐이다. 무나 공의 개념 또한 유나 색色과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양 차원을 포괄하는 동시에 초월하는 개념이다. '진리 불립문자'인데 억지로 문자화하다 보니 이런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다음 두 게송은 불교의 무아 교리를 설파한 『청정도론』에 나오는 것과 참자아 아트만에 대해 설파한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것으로 '무아'와 아트만이 일맥상통함을 보여 준다.

    괴로움은 있다. 그러나 괴로워하는 자는 없다.
    행위는 있다. 그러나 행위하는 자는 없다.
    평화는 있다. 그러나 평화 속에 머무는 자는 없다.
    길은 있다. 그러나 그 길을 가는 자는 아무도 없다.(청정도론)
    
    모든 행위는 물질적인 성질의 변화에 따라 일어난다.
    참자아 아트만이 행위자가 아님을 아는 사람은
    진리를 보는 사람이다.(바가바드 기타)」*
    
14/09/03

* 최민자, <동서양의 사상에 나타난 인식과 존재의 변증법>에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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