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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지성과 도덕의 발달은 물질적 개량처럼 꼭 필요한 것이다. 지식은 하나의 양식이고 철학은 하나의 필요물이며 진실은 곡식과 같은 영양분이다. 학문과 지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성은 말라 버린다. 굶주린 위처럼 굶주린 정신도 가련히 여겨야 한다. 빵을 먹지 못해서 죽어 가는 육체보다 더 가여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희망에 굶주려 죽어 가는 영혼이다.」 - 빅토르 위고, 레미제라블, 더클래식
"아무리 거기에 올바른 슬로건이 있고 아름다운 메시지가 있어도 그 올바름이나 아름다움을 뒷받침해줄 만한 영혼의 힘, 모럴의 힘이 없다면 모든 것은 공허한 말의 나열에 지나지 않습니다."* 16/12/30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중 2016/12/30 - [서평]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2016/12/30 - 모험이 없으면 새로운 것은 탄생하지 않는다2014/07/30 - 도덕과 윤리 없이는 진보도 없다2014/12/11 - 아름다움과 도덕무라카미 하루키
「열정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 이러한 형태는 단지 하나의 주체가 자신의 정신, 자신의 재능, 자신의 성격, 자신의 향유에 대한 생생한 관심을 어떤 하나의 내용에 집중시키고 있음을 뜻할 뿐이다. 열정 없이는 어떤 위대한 업적도 이루어진 적이 없고, 이루어질 수도 없다. 열정 자체에 반대하여 거기서 벗어나는 것은 생기가 없는 도덕, 심지어는 너무나 자주 위선적인 도덕일 뿐이다.」* - 헤겔, 『철학강요 요약본』 15/11/08 * 올리비아 비앙키, & 에두아르 바리보. (2014). 헤겔의 눈물. (김동훈, Trans.). 파주: 열린책들. 헤겔
「레비나스는 잘 알려진 대로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즉 '도덕 안에 내게 도움이 되는 뭐가 있나?', '내가 보살펴 주는 대가로 그 사람은 나를 위해 무엇을 했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하지 않는데 굳이 왜 내가 신경 써야 하는가?' 또는 '나대신 누구 다른 사람이 할 수는 없을까?' 식의 질문들)은 도덕적 행위의 출발점이 아니라 도덕의 사망 신호라고 주장한다. 마치 모든 비도덕(성)이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는 카인의 물음과 함께 시작되는 것처럼 말이다.」* 15/10/16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리퀴드 러브. (권태우 & 조형준, Trans.). 새물결. 지그문트 바우만 맹자
「따라서 현자는 부분적이고 단편적인 덕 너머에 자리한다. 자강불식의 정신으로 자신을 하늘처럼 쉼없이 새롭힘으로써 현자는 모든 순간과 상황을 거쳐 보편에 이르게 된다. 욕망과 의도가 부정적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그 방향 자체가 사물의 본성과 상반되기 때문이 아니라 고정된 경향을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된 경향이 의식의 확장을 막고 만물을 통해 나아가는 소통력을 저하시켜 의식 자체를 끊임없는 상관관계로부터 고립시키면서 마침내 의식을 매몰시키고 만다. 그리고 우리가 감각에 종속됨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감각 자체가 본래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감각이 의식을 개별성에 파묻어 변화능력을 상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외부세계와의 금욕적인 단절을 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럴수록 외부세계는 결코 ..
「왕부지는 을 보는 두 극단적 관점의 오류를 밝힌다. 그 오류의 하나는 을 도덕론으로서만 고찰하여 에 내포된 투시력을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을 운명서로서만 고찰하여 예견능력의 토대인 도덕적 요소를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다. 사실 은 다음 두 가지 측면을 갖추고 있다. 하나는, 사람은 운행으로서의 모든 생성에 내재하는 일관성의 개념 ― 연속과 변이, 시초와 성향 ― 에 의거할 때 비가시에 이를 수 있으며 그 효능성과 맺어져 경향을 탐지하고 변화를 예견할 수 있음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생성에 관련된 모든 징후는 때로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운행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반면, 정도로부터 탈선할 수도 있는 까닭에 항상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은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도덕성이 ..
「선견과 수정의 능력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은 의식의 흐름과 도덕적 삶 속에서이다. 왜냐하면 의식을 운행과 완전히 별개로 여기는 도덕론자들은 도덕적이지 않은 모든 것은 항상 흐르고 있는 올바름과 규범성으로부터의 이탈로서 간주해 버린다. 그들에게 있어 올바른 기능으로부터 벗어나는 모든 이탈은 하나같이 심각하고 위험스러운 것으로 사람의 신세를 망치게 하며 한 시대를 패망으로 치닫게 하는 되돌릴 수 없는 과오인 것이다. 그러나 선견과 수정의 능력을 갖춘 자에게 이러한 이탈은 아무리 끝이 나쁘다할지라도, 이는 시초의 잘못에서 야기되는 당연한 후과로서 파악된다. 이탈도 처음에는 언제나 미미하여 자칫 지나쳐 버리기 쉽다. 그러나 일단 시작된 경향은 점진적으로 자리를 잡기 마련이니, 성향이란 한번 정해지..
「한편으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사실상 구체적 정황으로서 나타나는 것은 일종의 힘으로서 작용하기 때문에 효율성을 지닌다. 그러나 역사에서 힘은 항상 특정의 배열에 의존하며, 그것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자기 나라에서 가장 강한 사람을 예로 들어보자. 사실 이 사람은 아무리 강하더라도 혼자 힘으로는 반란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물론 그에게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황'[勢]이 그로 하여금 반란을 일으킬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객관적 조건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이 객관적 조건이 과정 속에서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전장'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줄 아는 병법가처럼 이러한 객관적 조건에 의지해야만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윤리적 위반의 한 가지 속성은 그 충격이 거리와 분리도에 반비례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산자에게 직접 옷을 구입한다면, 그들의 열악한 작업 환경은 우리의 양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하지만 세계적 공급망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물건이 어디에서 오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덕분에 가격을 판단할 때 윤리적 결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단일하면서도 민주적인 방식으로 윤리적 규범을 집행할 강력한 제도와 법이 필요하다. 이것은 석유모래나 기후변화 등 개발에 관련된 문제들이 순전히 시장에서의 맥락이 아니라 윤리적인 틀 속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윤리적 판단은 (법이나 사회적 금기와 같은 형태로) 일단 형성되면 오래 지속되는 성질을 가지며 결국은 이윤동기를..
「(프라이스) "그리스인의 업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화이트헤드) "삶에 대한 미적 관점이지요." "조금 전에 헬라스와 이스라엘의 관계에서 '미학'과 도덕'이라는 말을 사용하셨을 때, '미학'을 먼저 말씀하시더군요." "당연하지요." "미(美)가 진리보다 더 넓고 근본적인 개념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움이 없으면, 진리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바로 그 점이 퓨리탄(청교도)들이 추락한 이유에요," 화이트헤드 여사가 말했다. 그녀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동안 어느새 되돌아와 있었다. "그들은 미를 내쫓았어요. 시작은 좋았어요. 자신들이 신의 형상으로 지어졌다고 믿는 것 말이에요. 그러나 결국 그들은 신을 그들 자신의 이미지대로 만들고 말았지요." (중략) 화이트헤드가 말했다. "청교도 관념은 생..
"부도덕하다는 비난은 예술의 완전성을 지적함으로써 반박되지는 않는다. 물론 도덕의 옹호는 변화에 반대하는 우매한 집회의 함성이라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헤아릴 수 없는 그 옛날 옛적에 상당수의 아메바는 대양으로부터 건조한 육지로 이주하기를 거부하였을 것이다 ― 도덕을 옹호하면서 말이다. 사회에 대한 예술의 부수적인 봉사는 그 모험성에 있는 것이다."* 14/11/18 * 화이트헤드, 2014/11/02 - 위로 올라가고 싶은 열망 2014/10/17 - 도는 선하지만 도덕은 아니다 화이트헤드 예술 도덕
「사회 집단 형성, 사회 유기체 흡수, 밈의 등장, 협동의 증가 등은 모두 우주적 질서의 단계를 올라서는 것이다. 더욱 새롭고 복잡한 구조를 향해 전진하는 자연의 본능에는 도덕감이란 없다. 상처로부터 자식을 보호하는 어머니 같은 자연은 없다. 그러한 상처는 자연의 창조물을 갈고 다듬는 자연의 기본 계획이다. 우리는 독불장군이 아니며 그렇게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우리는 더욱 큰 사회의 작은 부속물, 초유기체의 세포이다. 태양에 그슬린 팔에서 벗겨지는 피부 세포처럼, 우리는 전체의 한 부분이며 전체를 위해 헌신하며, 때로는 목숨을 바치기도 한다. 인간 악의 세 가지 요인인 초유기체, 사상, 서열은 서양 사회, 소비주의, 자본주의, 텔레비전 폭력, 폭력 영화, 로큰롤 등에 의해 "짜여진" 최신 작품이 아니다...
「인간은 사상 주변으로 모여든다. 사상이 문제의 해결과 통제의 환상이라는 생물학적 축복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사상이 초유기체의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인간을 묶어 놓고, 흩어진 개인들을 융합시켜 무서운 힘을 지닌 협력적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우호와 공조라는 위안감을 통해 인간을 밈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하나의 유인책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다른 사회 집단으로부터 힘과 자원을 빼앗으려는 고매한 가면이기도 하다. 그것은 밈, 다시 말해 다른 이의 몸체를 먹고 살찌는 사상의 집합이다. 이데올로기는 패배자를 새로운 서열의 위치로 몰아넣는 횃불로 작용한다. 밈의 거미줄은 밑바닥 사람들의 굴종을 정당화하여 정상의 권세를 지지하고, 때로는 특화된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변화 없는 사회를 만든다. 정치..
「 당신이 평범한 진리를 얻고 싶다면, 옳음과 그름에 대해 잊어버려라. 옳음과 그름 사이의 갈등은 마음의 병이다. 사람들이 위의 말에 각기 다르게 대응을 한다는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어떤 사람들은 위의 구절이 아름답고, 멋지며, 매우 현명하며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그 구절을 끔찍하고, 사악하며,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으며, 가장 파괴적이라고 한다. 내가 한 친구에게 그 구절을 읽어주었더니 그는 "그것은 사디즘으로 유명한 사드가 쓴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 친구의 말은 옳다! 그 구절은 사드가 쓴 것일 수도 있다. 한편 그것은 노자가 쓴 것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의도에는 큰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도덕의 초월'이라는 말이 어떤 사람의 마음에는 공포를 ..
「도덕론자: ... 인간의 이드(id)는 자신과 사회에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이드는 자아(ego)와 초자아(superego)에 의해 진정으로 사회화된 존재로 창조되도록 훈련되어야 합니다. (중략) 도가: 당신은 이드를 거칠고 사나우며 위험한 동물로, 초자아는 이드를 억제하는 보복적인 영웅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 내가 그리는 인간의 모습은 당신과 정반대가 될 것입니다. 오히려 나는 가엾게도 사악한 이드를 정말로 달콤하며 사랑스러운 본성으로 그리고, 초자아는 이드를 쇠사슬로 묶어 고문함으로써 이드로 하여금 마찬가지의 적대감을 갖게끔 해서 실제로 이따금씩 격한 행동을 하도록 그릴 것입니다. 그러면 초자아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입니다. "보라, 이드는 정말로 얼마나 사악한 존재이던가!..
「도가: 인간적인 사람은 단순하게 친절하고, 공감적이며 사랑스럽습니다. 그는 그래야 한다거나,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럴 뿐입니다. 그는 이웃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공감이나 감정이입의 상태(단순한 인간적 감정)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할 때 그 사람에게 어째서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덕론자: 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습니다. 당신은 성인에 대해 말하고 있군요. 물론, 건강한 사람만 있는 곳에서는 의사가 아무 필요가 없는 것처..
초특급 논리학자 스멀리언이 논리의 세계를 희롱하는 도가(道家)라는 점이 흥미롭다. 스멀리언에 의하면 논리학이 차갑고 딱딱한 학문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다. 스멀리언은 철학을 '미치광이'(crazy) 철학과 '합리적인'(sensible) 철학으로 나눈다. 미치광이 철학의 특징은 "광기, 자발성, 유머, 관습적 생각에서 벗어난 완전한 자유, 초도덕성, 아름다움, 신성, 자연스러움, 시적인 감각, 절대적인 솔직함, 금기로부터의 자유, 모순, 역설, 무규율, 맛깔남(yum-yumnyness)"*이다. 그는 절대적으로 이 정신나간 철학을 선호하며, 논리학은 바로 이 철학의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멋지다. 시종일관 재치있고 웃긴, 그러면서도 심오한 그의 책 (Tao is Silent)는 최고의 도가 입문서로 손색이..
「(주자의 경전 해석에 일자일구도 손을 못 대게 하고, 소소한 상례의 기간과 절차를 두고 죽고 죽이는 혈전을 벌이고, 이 입법을 무시한 다른 인종과 문화는 이해하려고도 인정하려고도 하지 않으며, 과부에게 재가를 하기 보다는 절개와 의리를 강요하는 임진왜란 이후 노론이 주도하는 주자학 문화에 대한 각주에서) 왜 조선 후기 그 예가 문제였을까. 나는 어느 날 니체를 읽다가 무릎을 쳤다. "거세나 근절 같은 것은 의지가 박약하고 퇴락하여, 도저히 절도를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이 욕망에 대항하여 싸우느라고 본능적으로 선택하는 수단이다. ... 그러한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퇴락한 사람들이다. ... 성직자와 철학자들의 역사, 그리고 예술가들의 역사를 조사해보라. 관능에 대한 가장 극심한 독설..
「자기 안에 평화와 안정을 찾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생각, 사회를 보는 시각은 대체로 그 자신이 스스로를 생각하는 이미지의 투영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자연이듯이 다른 사람에게도 '자연'을 권한다. 그리하여 개인적 결핍과 사회적 갈등을 "외적 도덕과 규범, 강제"를 통해 제어·안배하겠다는 생각이 최소화되어 있다. 다시, 유기(唯氣: 기 일원론)는 신체의 자발성을 낙관한다. 자극과 반응의 표출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인정하고 권유한다. ... 유기는 형식보다 자연스러움을 좋아한다. 그야말로 마음 놓고 칭찬하고, 마음 놓고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다. 가령, 칭찬에 대해 적절한 회신은 쑥스러움이나 겸사보다 "고맙습니다, 칭찬해주시니······"란 적절한 수용적..
「이상을 외치고 도덕을 선점한 사람들이 정치에 개입하게 될 때, 그 폐단은 상상외로 심각하다. 장사꾼들이 사람들을 등치고, 도둑이 물건을 훔치는 정도에 비할 수 없다. 지금도 큰 도둑들은 정치와 이념 주변에서 설치지 않던가. 무능한 '군자'가 권력을 쥘 때의 위협과 혼란을 직접 겪은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 "소인은 물정에 익숙하지만, 군자는 사리에 어둡기 쉽다. 사람들은 소인이 나라를 그르친다고 알지만, 군자가 더 큰 병폐를 끼친다는 것을 모른다. 소인이 나라를 그르치는 것은 바로잡을 수 있지만, 군자가 재주도 덕도 없이, 당면한 현실에 어둡다면 나라에 독을 끼치는 것이, 누구나 알 수 있는 소인의 폐단보다 더 심하다."」* 14/08/31 * 한형조, 한형조
「물론 많은 이들이 '가치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주장을 포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덕 자체에 대한 불신'이라고 할만한 태도는 일체의 윤리적 관심과 정치적 보수를 바로 등치 시킨 좌파 지식인들에게서 특히 두드러졌다. 여기에는 모든 윤리는 지배계급의 윤리, 따라서 모든 윤리론은 지배 체제의 변호론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진실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일면적이다. 모든 윤리적 계기를 변별성 없이 그러한 한 가지 기준으로 재단하였을 때 그것은 또 다른 독단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사고방식 때문에 결국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것은 바로 좌파 운동이었다. 대중의 불신을 자초했기 때문이다. 동구권의 붕괴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윤리를 단순히 수단으로 보는 관점은 기존 좌파..
「서양에서는 개인을 중시하지만 꼭 공동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고, 물질을 중시하지만 꼭 정신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며, 기술을 중시하지만 꼭 인문학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추론은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다. "우리의 천인합일과는 달리 그들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너무 긴장되어 있다"는 말은 완전히 반대로 말한 것이다. "그들은 부모를 돌보지 않고 효심이 없다"는 말은 특히나 더 그쪽 나라들 사정을 모르는 소리다. ... 중국 근대의 체용體用 논쟁에서는 항상 "서양은 과학기술이 좋고, 중국은 도덕이 높다"라고 말하기 좋아했다. 이 말은 생각하기만 해도 참을 수 없다. 중국의 도덕 가운데 어떤 점이 다른 나라의 것보다 높은가? 말을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것,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
도올 선생은 인(仁)을 느낄 줄 아는 상태로, 불인(不仁)을 마비되어 무감각한 상태로 해석한다. 탁월한 해석이다. 느낄 줄 아는 자만이 인(仁)하다. 「인(仁)을 부정하면 "불인(不仁)"이라는 단어가 된다. 그런데 "불인"이라는 말은, 의가에서 잘 쓰는 말인데 결코 "인자하지 않다"는 식의 뜻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마비"나 "무감각"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마비란 느낄 수 없는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불인이란 느낄 수 없는 상태를 지칭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불인의 뜻에서 인의 의미를 역산해낼 수 있다. 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느낄 줄 아는 상태"이다. ... 인(仁)은, "Benevolence"로 번역되는 따위의, 인자함의 규범적 윤리덕성이 아니다. 그것은 윤리 이전의 느낌이다. 그것..
고귀한 도덕은 자신을 긍정하고 시선이 자기 자신을 향하는데 반해, 노예도덕은 자신을 부정하고 시선이 반드시 밖으로 향한다. 니체의 말. 「모든 고귀한 도덕은 자기 자신을 성공적으로 긍정하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전개해 나가지만, 노예도덕은 그 출발부터 항상 "밖에 있는 것", "자기와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하요 "아니요"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정이 곧 노예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이다. 가치를 설정하는 시선을 이렇게 전도시키는 것, 즉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리는 대신 반드시 밖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 이런 것은 실로 르쌍띠망(원망)의 본질에 속한다. 노예도덕은 존재하기 위하여 항상 먼저 대적적인 외부세계를 필요로 한다. 생리적으로 말해도, 그것은 반응하기 위하여서 외적인 자극을 필요로 하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