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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윤리와 기독교 윤리의 만남 본문

명문장, 명구절

도가 윤리와 기독교 윤리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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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 인간적인 사람은 단순하게 친절하고, 공감적이며 사랑스럽습니다. 그는 그래야 한다거나, 혹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는 단순히 그럴 뿐입니다. 그는 이웃사람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일을 공감이나 감정이입의 상태(단순한 인간적 감정)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도덕성을 요구한다는 말입니까? 어떤 사람이 무슨 일을 하고 싶어할 때 그 사람에게 어째서 그 일을 해야만 한다고 말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도덕론자: 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습니다. 당신은 성인에 대해 말하고 있군요. 물론, 건강한 사람만 있는 곳에서는 의사가 아무 필요가 없는 것처럼, 세상이 성인들로 가득 차 있다면 도덕은 더 이상 필요가 없겠죠. 하지만 현실은 불행하게도 성인들만 있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신이 말하는 것처럼 '인간적'이라면, 세상사는 참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렇게 훌륭하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고,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서라면 기회를 가리지 않고 이웃을 이용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 같은 도덕론자들이 사람들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중략)

도가: 우리는 전에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관점은 전체적으로 사람들에게 인간성을 가져야 한다고 설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설득하는 것은 바로 그 무엇을 파괴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당신은 아직도 내 말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위해 기독교 저술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비치와 니버가 함께 저술한 『기독교 윤리』를 보면 사도 바울에 관해 다음과 같은 멋진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율법에 대한 바울의 생각은 전체적으로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으며 어떠한 외적 행동도 인간을 진정으로 선하게 할 수 없다는 예수의 생각을 발전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덕적 명령의 율법이 인간에게 '해야만 한다', '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외적인 것으로 남아 있는 한, 그것은 인간을 진정으로 선하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인간의 동기를 변형시킬 수 없다. 율법을 명령하는 형식은 율법의 의도에 반하는 인간의 바람이 현존하는 것을 전제하는 상대적인 것이다. 더군다나 인간에게 명령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자기 의지를 일으켜 율법을 위배하도록 유혹받기가 쉽다. 명령이 있는 곳에서는 어른이나 아이들 할 것 없이 누구나 금지된 구역에 얼마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알도록 유혹받기가 쉽다. 다시 말해서, 명령적인 율법은 내적이고, 강요받지 않은 예수와 같은 관대한 행동을 낳을 수가 없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관대한 행동은 자기 의식적인 선함보다는 훨씬 더 매력적이며 많은 결실을 맺는다.(Waldo Beach and H. Richard Niebuhr, 1957, Christian Ethics, The Roland Press Company, p. 41.)

위의 구절은 얼마나 주목할 만합니까! 그것은 내가 말한 어떤 것보다도 윤리에 대한 나의 철학적 관점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놀랍게도 많은 실제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기독교의 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1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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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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