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권력 (19)
모험러의 책방
「지위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공백 상태를 싫어한다. 따라서 쿨의 종말이 곧 지위 사냥의 종말이라는 생각은 희망사항이다. 지위 추구의 욕망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불을 켜면 허둥지둥 흩어져 몸을 숨기고, 조금 더 은근하고 조금 덜 노골적인 형태로 변신한다. 베블런의 고전적 양상에 따라, 알 만한 사람들은 쿨을 뒤로하고 다음 레벨로 넘어간다. 이제부터 연마할 기교는 번듯한 직장에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집에 온갖 것을 다 갖춰놓고도 정신적으로 그런 것에 전혀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교묘히 전시하는 것이다. 그저 뭔가를 구매하는 행위가 아니라, 고유한 욕구에 초점을 맞춘 삶, 특별한 취향과 감각을 반영하는 삶을 창조하기 위해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일이 중요해진 것이다. 유기농 채소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가? 테..
「로토파고이족이 건넨 꽃의 유혹이 오뒷세우스의 동료들에게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그들은 꽃을 먹고도 죽지 않았지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자신들이 노동과 생산으로 무의미하게 전진해야만 한다는 것을 잊었다. 그들을 심판하고 사슬로 묶어 끌고 온 오뒷세우스는 모든 희열을 단죄하는 현실 원칙에 입각해 있다. 본능의 억압, 땅에서 재화를 끌어내기 위한 육체의 수고를 거치지 않는 희열, 감성적 속성을 체제 권력에 유리한 추상적 가치로 변화시키지 않는 희열은 단죄당한다. 불충한 부하들과 로토파고이족의 명백하고 우호적인 관계는 아무 콤플렉스 없이 자연스럽게 땅의 소산들을 바라는 마음이 드러남으로써 재건되었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어머니 대지의 조직적 개발과 계몽되지 않은 야생의 희열에 대한 단죄가 하나로 수렴하는..
「오늘날 우리 모두의 행동을 규정하는 조건을 형성하는 진짜 권력들은 글로벌한 공간을 흘러 다니는 반면 정치 행위의 제도들은 대체로 땅에 묶여 있다. 즉 예전처럼 지역에 머물러 있다. ... 긴말 필요없이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시는 글로벌하게 배태된 문제들을 쏟아 붓는 쓰레기 매립장이 되었다. 도시의 거주민들이나 그들의 선출된 대표들은 점점 더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해도 도저히 풀 수 없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글로벌한 모순들에 대한 해결책을 지역에서 찾는 일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카스텔스가 지적한 역설이, 즉 "점점 더 글로벌한 과정들에 의해 구조화되는 세계 속에서 정치는 점점 더 지역적인 것"이 되는 역설이 나타난다. "과거에는 의미와 정체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즉 내 이웃, 내 공동체, 내 도시, ..
「'긴장-이완', '펼침-접힘' 또는 '질서-무질서', '도약-쇠퇴': 모든 역사는 냉혹하게 '고저의 기복을 따라' 진행된다. 이는 시간의 흐름에 투사된 어떤 형이상학적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과정에 내재해 있는 필연성에 따른 것이다. 즉, 작용 중인 요인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필연적으로 고갈되고, 그것을 보충하는 요인에 의해 대체된다. 그러므로 규제적인 역학이 생성의 각 단계마다 본래부터 내재해 ― 가장 신중한 방식으로 ― 있게 된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규제적 역학이 모든 역사적 상황을 조작 가능한 장치로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전략은 더할 나위 없이 단순하지만, 인류가 나아갈 도덕적 방향의 역할을 할 정도로 그렇게 지속적으로 실생활에 적용된다. 따라서 사물의 흐름 속에서 작동 중인 경..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경우에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태로운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정적 부작용의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어떠한 경우에 그리고 어느 선까지,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이 윤리적으로 위태로운 수단과 부작용을 할 수 있는지는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말해줄 수 없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폭력적) 강제력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볼 때 수단과 목적간의 긴장이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여러분은 아래와 같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두들 알고 있듯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짐머발트 계열)은 이미 전쟁 중에 하나의 원칙을..
「... 우리는 권력정치 이념을 구현하던 대표적 인물들의 갑작스러운 내적 붕괴과정을 통해 이들의 허풍에 찬 완전히 속 빈 제스처의 이면에 어떠한 내적 나약함과 무력감이 숨겨져 있었는지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권력정치론은 인간행위의 의미에 대한 극도로 빈약하고 얄팍한 오만의 산물로서, 이 오만은 모든 행위, 그러나 특히 정치적 행위가 실제로 내포하고 있는 비극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됩니다. 정치적 행위의 최종 결과가 그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동떨어지거나, 때로는 심지어 정반대되는 경우도 흔히 있는 일, 아니 오히려 일반적 일이며 이것은 모든 역사가 증명해 주는 기본적 사실 ― 여기서는 이 점을 더 상세히 논증할 수는 없습니다만 ―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 원래의 의도, 즉 ..
「오늘날 유권자의 상상력에 호소할 수 있으며, '좋은 경제 정책'은 '좌파적 경제 정책'일 수 있다고 설득시킬 수 있는 뚜렷하게 '좌파적' 비전이나 신뢰할 만한 강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3의 길'이라는 사유 노선을 따를 때 '좌파적'이라는 것은 우파가 완수하길 원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일을 보다 철저하게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대처 하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던 생각, 즉 '사회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개인과 가족들만 존재한다'는 생각에, 그녀의 무자비한 개인화, 사사화[민영화], 규제 완화라는 생각에 제도적 토대를 놓아준 것은 블레어의 '신노동당'이었죠. 프랑스의 사회적 국가를 해체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것은 프랑스 사회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동부와 중부 유럽의 '탈-공산당' 정당들 ―..
「후기 공산주의의 러시아 정권을 낱낱이 파헤친 잔 토쉬첸코(Zhan Toshchenko)의 『켄타우르스 문제(Kentavr-Problema)』를 보면 소비에트 몰락과 함께 탄생한 과두지배계급 22명이 국가 전체 부의 40퍼센트를 장악하는 "거대한 국가 자산의 착취"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가 정책과 현실을 비롯한 여론이 제각기 상충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예 다른 방향으로 향하고 있었다는 지적입니다. 이 또한 "누가 러시아에서 실질적인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여론조사에서 40퍼센트가 "거대자본", 오직 3퍼센트가 "국회", 그리고 1퍼센트가 채 안 되는 사람들이 "국민"이라고 답했다는 것이 하등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앞서 인용한 두 명의 저자 모두 후기 공산주..
「공동선에 대한 물음은 우리 시대의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보다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전망과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비전 없이는 현대 사회의 발전은 멈추어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정치적 토론의 장에서 ‘좋은 사회’의 모델에 대한 사유와 논쟁이 더 이상 중요한 공적 의제로 설정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또한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안적인 세계가 불가능하다는 회의주의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는 것이지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없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에 동의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막상 ‘좋은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려고 하면, 무엇이 문제 지점인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일에 대한 생각이 일하는 현장에서 제거될 때 우리는 서로, 또 자기 자신과 분열된다. 사고는 본질적으로 행동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우리가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성적 활동을 통해서다. 인본적 경제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런 만족감을 성취할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지 않는 경제다. 이는 규모에 대한 감각을 필요로 한다. 서양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집중을 막기 위해 입법·행정·사법 기능의 분리 같은 조치를 취해왔다. 하지만 경제적 권력의 집중은 막지 못했고, 이런 집중이 완전한 인간 번영을 이룩하는 조건(결코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을 어떻게 훼손시키는지를 살피는 데도 무참히 실패했다. 우리가 쇼핑에서 얻는 위안은 그저 우리를 마비시켜서 이러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 뿐..
「주류 경제학 이론에 의하면 성차별, 인종주의 등의 차별 정책은 비효율적이므로 순수한 (혹은 대칭적인) 시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제적 거래는 누가 참여하건 혹은 언제 어디에서 이루어지건 그 양상이 비슷할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경제학자도 실제의 경제가 완벽하게 공정하거나 안정적이라고, 그리고 각 참여자들이 완전히 동일한 정보에 접근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조지 애거로프(George Akelof), 마이클 스펜스(Michael Spence), 그리고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2001년 「비대칭적 정보를 가진 시장에 대한 분석」으로 경제과학의 스웨덴은행상(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그 논문은 예를 들자면 중고차 판매상이 구매자보다 상품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는 상황..
「경제와 금융 분야에서 동문들의 인맥, 제도화된 성차별, 여성의 과소대표가 문제이긴 하지만, 이것들은 그 자체로는 경제체계의 재균형을 방해하는 주된 장애물이 아니다. 진짜 장애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주류 경제이론이다. 이것은 복잡성을 단순한 법칙으로, 인간의 동기를 차가운 계산으로 환원시키는 세계관이자 사고방식이다. 줄리 넬슨에 따르면 경제학은 '초연함, 수학적 추론, 형식성, 추상'이라는 남성적 방법론을 '연결성, 언어적 추론, 비형식성, 구체적인 세부사항'이라는 여성적 방법론보다 높이 평가한다. 경제학은 물리학처럼 불편부당하고 초연하며, 단단한 과학이 되려고 노력해왔지만 (부분적으로는 바로 그 때문에) 결국은 특정한 양성의 행동을 승인하고 축복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비선형성, 유동성, 복잡한 상호의..
「인간은 사상 주변으로 모여든다. 사상이 문제의 해결과 통제의 환상이라는 생물학적 축복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사상이 초유기체의 거대한 네트워크에서 인간을 묶어 놓고, 흩어진 개인들을 융합시켜 무서운 힘을 지닌 협력적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는 우호와 공조라는 위안감을 통해 인간을 밈의 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하나의 유인책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는 다른 사회 집단으로부터 힘과 자원을 빼앗으려는 고매한 가면이기도 하다. 그것은 밈, 다시 말해 다른 이의 몸체를 먹고 살찌는 사상의 집합이다. 이데올로기는 패배자를 새로운 서열의 위치로 몰아넣는 횃불로 작용한다. 밈의 거미줄은 밑바닥 사람들의 굴종을 정당화하여 정상의 권세를 지지하고, 때로는 특화된 역할을 강조함으로써 변화 없는 사회를 만든다. 정치..
「러너: 그럼 이 모든 사건의 교훈이 뭐야? 난 아무 의미없는 일을 한건가? 할리퀸: 그 반대야, 멍청아. 교훈은 이거야. 게임은 조작되고, 상황은 나쁘게 돌아가고, 운은 나를 비껴가지. 늘 그래. 매번. 힘있는 자들이 힘을 행사할때, 힘없는 자들은 집에 웅크려 주입된 생각을 자기 생각이라 믿으며 내일을 위해 오늘의 끔찍한 삶을 잊도록 도와주는 상품이나 소비하며 하루를 살아가지. 바로 그게 우리가 그들의 개같은 '게임'을 거부하는 이유야. 우리는 그들이 던져주는 빌어먹을 빵이나 삼키고는 얌전히 다른 빵을 던져주길 기다릴 수 없어. 그래서 우리는 그림자에 숨어 활동하지. 그 곳에 진짜 삶이 있거든. 누구도 보길 원하지 않는 곳에서 펼쳐지는 진짜 삶.」* (Runner: So what's the lesson..
"이 세계는 권력을 다투지 않고 현명한 사람에게 선양되며 (요순 임금처럼), 자기 부모만이 아니라 모든 부모를, 자기 자식만이 아니라 모든 자식을, 건강하고 부한 사람만이 아니라 병들고 외로운 사람을 공평하게 부양하고 돌보는 사회다. 남녀노소에 다 돌아갈 적정한 일이 있어 재물은 넉넉하되 사리에 쓰이지 않고 힘도 넉넉하되 사욕에 쓰이지 않는다. 그러니 간교한 마음이 사라져 도둑도 사라지고 담장도 사라진다."* - 『예기』, 「예운」 편 14/07/22 * 김상준, 에서 봄. 김상준
「간단히 말해, 북유럽 사람들의 승리는 우월한 사업 개념이라든가 자연스러운 산업 경쟁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물론 그들의 임금이 낮아서 유리했던 점은 있었습니다). 북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는 것과는 더욱 관련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정책은 단지 이전의 승자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빼앗는 것이었습니다. 폭력이 개입되었던 것도 물론입니다. 이러한 게임의 규칙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굳이 지적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1차 세계대전이 벌어지는 동안 레닌은 이 폭력적인 세계 분할을 규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폭력이나 세계 분할은 그가 생각했던 것만큼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의 세계가 처한 현실도 여전히 그렇지 않습니까?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나 중심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게..
무대 위의 권력은 일인 일표로 뽑히지만 무대 뒤의 권력은 일원 일표로 뽑힌다 무대 위에서 상생과 화합이 말하여질 때 무대 뒤에선 추방과 배제가 이루어진다 무대 위 정권은 교대되지만 무대 뒤 주인은 교대되지 않는다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우리는 최면에 빠지고 상생과 화합의 고상한 무대 뒤에서 적대와 굴종의 너절한 무대는 오늘도 안전하다 12/12/17 * 3차 대선 토론회(제18대 대통령선거)를 보고 2012/12/11 - 대선 후보 토론회를 보고, 실현 가능성 2012/11/28 - 선거와 민주주의 2012/03/10 - 출애굽기 2012/07/06 - 진자 운동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일까. "인류 역사의 한 가지 교훈은 사회는 권력의 공백 상태를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대신 그 삶을 통제하게 된다. 계획경제를 시도하려던 과거 사례는 노동자와 소비자 평의회가 그들 스스로 계획을 짜지 못하고 대신 누군가 그들을 위해 계획을 짜도록 놔둔다면 그 사회는 쇠퇴하고 엘리트 지배가 다시 등장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을 '위한' 계획은 사람들 스스로에 '의한' 계획과 같지 않다.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과 같지 않다. 노동자와 소비자 조직들이 서로 연결되도록 누군가 '그들을 위해' 편성하는 것은 노동자와 소비자가 '스스로' 서로 상호 관계를 맺고 활동을 계획하는 것과 같지 않다."* ..
칵샷과 코르텔은 "투표에 의한 선거가 오늘날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것은 역사의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말한다. 민주주의는 그 정의상 평민(demos)의 지배다. 그러나 의회선거는 일정 주기마다 소수 지배자를 선택하는 기제일 뿐 기본적으로 귀족적 혹은 엘리트주의적이다. 현대 국가는 로마제국 이후 가장 완벽한 계급 지배 형태를 갖추고 있다. 이 현대 국가의 진짜 권력은 투표권에 영향받지 않는 소수의 수중에 있다. 특히 타인을 고용할 권한을 갖고 있는 부유한 자들과 일부 국가기구가 권력의 핵심을 쥐고 있다. 그러니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이란 생각은 착각이다. 지배와 예속의 관계는 위협받지 않는다. 결국, 의회 선거는 돈 많은 자의 귀족체제를 지탱하는 기둥이며, 정치는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