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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욕이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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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밤, 이탁오 선생은 불당에서 스님 회림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회림이 의자 밑에서 잠자고 있는 고양이를 보며 말했다.*

회림: "저 고양이는 낮에 사람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가지 않고 의자 밑에 있으니 참 의리 있지 않습니까?"

탁오: "고양이를 사람들은 가장 의리 없다고 하지만, 정이 들면 떠나지 않는 것을 보면 의리 있는 짐승이 맞지요."

회림: "사람의 욕을 먹는 개야말로 성품이 의로워 집주인을 지켜주고, 쫓아도 가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아도 짖지 않으며, 스스로 더러운 똥이나 오줌을 먹고 삽니다. 그리고 개는 집안이 가난해도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러하니 '개'란 말로 사람을 욕하는 것은 옳지 않으므로, 반대로 '사람'으로 개를 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탁오: "그 말이 참으로 옳습니다. 금수, 가축, 개, 노예 등의 용어는 사람을 욕하는 말로는 모자라므로 그럼 우리 어떠한 용어들이 있는지 함께 찾아봅시다!"

(두 사람은 밤이 새도록 뱀, 호랑이 같은 수십 종의 이름들을 들어보지만, 적당한 말들을 충분히 찾지 못한다. 찾다 지친 회림이 말한다.)

회림: "과연 사람의 못됨은 형용하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의 가죽을 쓰고도 오히려 개의 머리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오히려 개의 가죽을 뒤집어쓰고서도 사람의 머리와 뼈를 갖고 있다고 해야 옳은 것 같습니다. 아, 아직도 사람을 어떻게 욕해야 할지를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탁오: "과연 사람을 욕하기에 적당하며 충분한 말은 너무도 부족하구려!"

두 사람은 탄식했다.

13/04/20

* 신용철, <공자의 천하, 중국을 뒤흔든 자유인 이탁오>에서 발췌, 각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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