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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관한 논문’을 쓰려면 지금까지 축적된 엄청난 양의 쓰레기 더미 같은 연구들을 파헤쳐야 한다. 이류, 삼류 논문을 계속 읽어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고 나서야 마침내 ‘칸트의 ○○○에 관해’라는 논문을 자비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들어가는 피땀 어린 노력은 대부분 단순한 ‘정리’에 불과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자. 설령 논문이 미미하나마 새바람을 일으킨다고 해도 이미 어마어마한 시간을 칸트 연구에 쏟아부었고, 두뇌는 ‘칸트화’되었으며, 현실적인 문제 때문에 칸트 업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 없으므로 점점 더 좁은 포장마차에서 칸트 부침개나 칸트 만두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칸트 학자는 대부분 - 쓸모없는 논문이나 메모까지 포함해서 - 칸트가 쓴 책 전부와 칸트와 관련된 엄청난 양의 시시한 논문을 계속 읽으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이것이 칸트 학자의 생애이고, 이런 삶이 현대의 철학 연구자를 대표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근 들어 나는 이런 ‘철학 연구’가 진심으로 허무하게 느껴졌다. 아니, 두려워졌다. 이런 생활이 내 안에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생기발랄하고 자유롭게 사물을 보고 느끼는 마음을 고갈시키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느새 칸트의 눈과 칸트의 틀을 통하지 않고는 삼라만상을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 나카지마 요시미치, <인생 반 내려놓기> 중

나는 피땀 어리게 공부해본 적도 없는 주제에 공부가 가끔, 아니 자주, 허무했다(나 자신이 삼류여서 더욱 그랬으리라). 그러나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한다. 일하는데 무슨 이유가 있나? 그냥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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