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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 덤핑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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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어디에선가 부르주아지는 중간계급마저 끊임없이 몰락하게 해 프롤레타리아처럼 만들 것이라고 썼다. '소외된 노동'에 종사하는 인류가 느는 것이다. 가방끈 긴 고급인력도 마찬가지다. 박사학위자를 보자. 일단 박사도 다 같은 박사가 아니다. 유학파와 국내파, 지방대와 수도권대학, 인기학과와 비인기학과, 남자와 여자 사이에 큰 차별이 있음은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또한 비정규직 박사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은 정규직의 절반 정도의 임금 밖에 받지 못한다. 한 박사 학위자는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방대 출신의 비인기학과 박사 학위자들은 더욱 설 곳이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비정규직 박사들은 갈수록 태산이다. 요즘 비정규직 연구자는 정부 산하 연구재단에서 선정하는 연구 프로젝트를 맡아 생활을 이어나가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시간강사라도 더하게 되면 개인 연구는 거의 포기해야 한다. 연구 프로젝트는 모두 단기 계약직이다. 계약기간이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를 다시 따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의 스트레스가 무시무시하다. 이 연구 프로젝트마저도 인맥이나 학연으로 엮이는 일이 다반사다. 고작 단기 계약직 정부 수주 연구 프로젝트도 인맥과 학연이 중요한데, 전임 교수 임용은 말할 것도 없다. 인맥 중심의 임용은 관행이다. 

아직 학위가 없는 박사 '과정' 학생이면 어려움은 여기서 또 배가 된다. 프로젝트 수주의 부담이 박사 과정 학생에게 떠 넘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따지 못하면 생활비 마련 자체가 힘들어진다. 생명공학 계열은 "프로젝트를 받으려는 학생을 줄 세우면 서울을 한 바퀴 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한다. 내 경험으론 사회과학 계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다보니 차라리 과외를 하는 박사과정 학생도 많다. 프로젝트로 받는 스트레스 보다는 그쪽이 훨씬 마음 편한 것이다.

학위를 받고 보따리 장사(시간강사)를 한지 12년째인 김씨는 전임교수 임용에 원서 내는 건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이젠 나이도 제법 들었고, 대학이 요구하는 '간판'을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김씨는 "시간강사에게 연구는 사치"라며 먹고 살기도 힘든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다. "The winner takes it all" ― 김씨가 인용한 말이다. 무한경쟁, 승자독식, 양극화. 공부로 먹고 사는 이 업계도 삶에 사람냄새가 사라지고 정글화되는 이 흐름에서 홀로 고고할 수는 없는 것이다. 

12/07/27

* 아래 기사를 참조함. 인용 역시 아래 기사에서.
국민일보, 12-07-27,
[박사, 덤핑 시대] 박사도 ‘급’있다… 유학파·男이란 이유로 웃고 국내파·女란 이유로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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