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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짐을 내려놓고 흐름에 몸을 맡기면 된다 본문
「다른 한편, 나를 부추기고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전체로서의 세계에 끊임없이 생기를 불어넣고 나를 그 세계의 에너지에 접속시키면, 나를 움직이게 만드는 이러한 반응성은 나의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나를 지탱시키면서 활력 있게 만들어준다.
반면에 “욕망은 깊고, 하늘로부터 오는 원동력은 피상적이 되면”, ― 장자는 간결하지만 핵심을 찔러 언급하길 ― 달리 말해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외적 자극이 강하면, 나를 생명력의 원천 그 자체에 연결시키는 내적 자극은 약화되어 나타나고 희석되며 시들어진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내적 자극은 전적으로 외적 자극의 지배를 받아 약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장자가 욕망에 대해 도덕적으로 비난하지도 금욕주의의 미덕으로 회귀할 것을 주장하지도 않고 있고, 단지 만약에 내가 욕망을 파생시키는 외적 자극의 피상적 수준에만 머물면서 의지를 억지로 끌고 간다면, 어떤 행위를 하고 싶은 동기를 갖게 되는 것은 나의 에너지를 소모해야만 비로소 가능함을 말하고 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사실 나의 욕망에 영양분을 주는 것의 여부는 전적으로 나(나의 생명력)에게 달려 있다. 반면에 원동력이 내 안에 있는 하늘의 원동력일 때, 다시 말해 나의 개인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 내가 자연적 운행성의 기반 위에 서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이상 어떠한 것도 바랄 필요가 없어진다(나는 더 이상 어떠한 것도 지향하지 않게 된다). 그러한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세계 전체가 나를 움직이게 만듦으로써 나를 통해 반응하고, 세계 그 자체가 나의 길을 제시해주며 진행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로 이러한 것이 우리가 행위를 함에 있어 취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 ― 그 선택은 종교적이지도 도덕적이지도 않다 ― 일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엄밀한 의미에서의 개종을 요구하지는 않지만(왜냐하면 거기에서는 다른 차원의 가치나 실재로 “전향”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쓸데없는 짐을 단호하게 내려놓을 것을 요구하게 된다. 『장자』는 이를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 프랑수아 줄리앙. (2014). 장자, 삶의 도를 묻다. (박희영, Trans.). 파주: 한울. 에서 발췌, 문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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