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흐름을 타면 싸우지 않고 이긴다 본문
「『손자병법』의 영향으로 동아시아권에서 널리 회자되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의 의미도 효율성의 차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싸우지 않고 승리한다는 것은 도덕적 관심도 아니고 막연한 추상적 담론도 아니다.
"이런 '싸우지 않음'의 이상은 도덕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단지 승리가 예정되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이 되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싸우지 않음'의 이상은 추상적 개념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사소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단계에서 향후 방향이 가장 정확히 진행되는 방식에 주의가 집중되기 때문이다. 모든 이상향과 가장 동떨어진 방식으로, 모든 주어진 상황을 특징짓는 효력 있고 장악력이 있는 결과를 '단순히' 이 결과의 방향에서 유리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사물의 성향』, 49-50쪽)
중국적 전략은 꿈에 부풀게 하고 희망을 일으키고 모험과 영웅주의를 요청하는 모델화와는 달리 철저히 현실적이다. 세에 의거한 전략은 미래의 일을 목적으로 구상하고 수단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의 흐름을 파악하고 이 흐름이 우리를 싣고 가도록 놔두는 데 있다. 따라서 전략을 실현하는 것은 행동하는 '주체'라기보다는 객관적인 상황이다. 승리는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익은 과일을 따듯이 거두는 것이다. 승리나 패배는 실제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이미 상황의 전개과정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안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같은 유명한 문구의 의미도 상황에 의해 승리가 결정됨을 말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부는 상황으로부터 이탈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적 전략은 고난을 예찬하는 서구적 영웅주의 같은 것이 없다. 사실 영웅주의는 모델화대로 상황이 진행되지 않았을 때 요구되는 천재적 능력이다.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물 위를 걷는 것처럼 순조롭다면, 실제 전투는 물속을 걸을 때처럼 사방의 마찰에 부딪히는 과정이다. 영웅주의는 모델화를 폐기하고 즉각적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천재적 능력일 뿐이다. 줄리앙이 강조하듯이 모델화와 영웅주의의 관계는 전략의 파열을 드러낸다. 이런 점은 가장 확실한 지식을 추구하는 서양사상이 내포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이면이다. 서양의 영웅주의는 모델화가 우리를 꿈에 부풀게 하듯이 모험과 고난을 예찬하는 행동주의다.
서양인들이 모델화와 분리 불가능한 영웅주의, 그리고 주도적인 주체의 행동에 따라 효율성을 생각한다면, 중국인들은 이런 인위적 행동은 세계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본다. 중국적 관점에서 인간의 행위나 사회제도는 세계의 운행을 따라야 한다. 자연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효율적일 수 없다. 운행은 이탈하지 않는 지속적인 변화이며 변화과정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실려 가는 것이 "때에 맞게"[時] 나아가고 물러설 줄 아는 중국적 지혜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전략가도 공자 같은 성인도 모두 현명한 기회주의자다.」*
16/02/18
* 역자 해설(이근세). in 프랑수아 줄리앙. (2015). 전략: 고대 그리스에서 현대 중국까지. (이근세, Trans.). 파주: 문학동네.
'명문장, 명구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은둔과 활동, 어느 한 쪽만 취하지 마라 (0) | 2016.02.22 |
---|---|
삶은 의미를 넘어서 있다 (0) | 2016.02.21 |
동양 사상과 유교의 한계와 맹점 (0) | 2016.02.19 |
모델화의 전통은 이념의 전통 (0) | 2016.02.17 |
모델화와 민주주의 (0) | 2016.02.15 |
전략가는 기다릴 줄 안다 (0) | 2016.02.14 |
무취미의 권유 (0) | 2016.02.14 |
모험러의 책방
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