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사회과학자들의 고도로 훈련된 무능 본문
「만약 여러분이 '실제 세계'의 진실을 찾고자 한다면, 카프카, 무질, 보르헤스, 페렉, 쿤데라, 우엘벡 등에게서 힌트를 얻는 것이 최선의 선택일 겁니다. 실험관 속에서 배양되고 길러진 소인들(homunculi)의 불확실한 가정들로 가득 찬 '지식'은 별 도움이 안 될 겁니다. 그리고 만일 여러분이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한다면, 자신만의 메시지를 갖고 말을 건네야 합니다. 독자들이란 '세계-내-존재'로서 자신만의 삶의 진리를 찾고자 애쓰며,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혹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거나 간과했거나 무시하고 지나쳤던 통찰들을 배우고자 하는 이들이지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적확한 언어를 찾는 것이며, 그 경험과 관련이 있거나 유사한 주제들에 천착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명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면, 물론 이것도 좋은 경험이겠지만, 이들을 비인간화함으로써 통제된 유순함 속에 가두어두는 것과도 같습니다. 스스로를 기만하라는 요구와도 같은 것이죠. 이건 분명 밥맛 떨어지게 만드는 일입니다.
예전의 한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지고 갈 것인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무질(Robert Musil)의 『특성 없는 남자』, 페렉(Georges Perec)의 『인생사용법』,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의 『미로』, 칼비노(Italo Calvino)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 중에서 선택할 테지만, 너무 어려운 질문이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물론 이 중 꼭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보르헤스의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선택하겠지만요. 아무튼 이러한 책들은 제가 늘 갈망하고 얻고자 하는 모든 것을 정확히 보여줍니다. 폭넓은 전망과 인간 사유의 보고이자,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인간 가능성에 대한 섬세하고도 다각적인 접근 등 제가 늘 갖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한 사유와 글쓰기가 담겨 있지요.
제가 폴 F. 라자스펠드(Paul F. Lazarsfeld), 탤컷 파슨스(Talcott Parsons), 바니 글레이저(Barney Glaser), 안셀름 스트라우스(Anselm Strauss) 등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작가들에게서 삶의 조언을 구하라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현대 사회학적 연구가 만들어낸 인간 존재란 유해하고 달갑지 않은 통계적 조작으로 양산된 소인들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간이란 그런 존재가 아니지요. 현대 사회학의 부작용은 믿기 어려울 만큼 놀랄 만한 복잡성을 가진 인간 세계를 수많은 부분들과 특성들의 총합 이상의 것으로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사회적 관계들을 당대의 권력과 억압에 의해 일시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온 문제들로 포착하지 않고, 고루한 변증법과 역학 관계에 의해서만 추론하려고 들지요. 이건 한 마디로 말해 '고도로 훈련된 무능'일 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문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한 것이지요.」*
15/08/07
* 인디고 연구소(InK) 기획. (2014).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서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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