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노동자 (14)
모험러의 책방
「이로써 오뒷세우스는 회사를 위해 자기 생애를 걸면서 직원들에게도 그에 상당하는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기업가의 모습을 예고한다. 목표는 생산을 끌어올리는 것, 몇 사람의 삶이 망가진다 해도 그 따위는 부차적인 일, 아니 기업의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이렇게 괴물들의 조건에 따른 대가로 보장받은 오뒷세우스의 목숨은 그의 상징적 죽음을 표명한다. 원시적 힘들과 계약을 맺는 술책은 계몽된 이성의 타락을 의미한다. 계몽된 이성이 도입한 정의는 옛 탈리온 법과 형식적으로만 다를 뿐, 결국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정의는 실질적인 변화가 전혀 없으며 지배와 폭력에 맞서는 모든 이에게 어떤 진보도 의미하지 못한다. 기업가는 언제나 무사히 길을 건너고 만다. 오직 그만이 만남의 조건들을 알고 있기 때문..
「예술 작품의 사회적 무용성은 일단 로 환원되지 않으면 생산 방식에 있어서 아무 의미도 갖지 못하는 자연의 무용성과 상응한다. 예술 작품과 자연의 위상은 옛 힘들의 실추와 자기 보존의 승리, 감각에 대한 지배를 가리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에 따르면 이러한 감각의 지배는 육체적 쾌락의 추억과 유혹을 심미적이고 지적인 경험으로 변화시킨다는 점에서 예술 작품의 탄생을 예비한다. 그런데 이 유혹은 폭력적 자기 보존의 몰락을 요청하고 그러한 몰락은 와 양립할 수 없으므로 멜랑콜리가 되어 버린다. 욕망은 오뒷세우스의 기억 속에 살아남지만 자신을 보호해 주는 이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바로 그 사실로 인해 좌절된다. 이처럼 지배를 유지하고 집행시키는 논리는 사악하다. 자연을 정복하려면 다른 인간들을..
「스피드숍이 일과 여가 사이의 갈등에 대해, 또 일과 여가가 결합된 인생으로 서서히 나아가는 방법에 대해 무엇인가 가르쳐줄 수 있을까? 직업 공동체와 겹치는 것이 바로 소비 공동체다. 두 영역은 각 구성원의 삶 속에서 겹쳐지며, 스피드숍은 이렇게 겹쳐진 부분이 사회적인 것이 되는 장소다. 가게에서 일하는 직원들 중 자동차광이 아닌 사람은 없고, 찾아오는 고객들 중 자기 차의 기본적인 사항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없다. 그들은 심지어 서로의 엔진에 관한 세세한 사항까지 알고 있다. 스피드숍에서 일하는 기계 수리공은 수년 동안 똑같은 크랭크축을 여러 번 봤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크랭크축에 달린 평형추에 유성 연필이나 펜으로 적어놓았던 것을 알아보고, 매번 다시 조립할 때마다 작업일지를 다듬고 베어링 허용..
「판단을 내릴 기회가 줄면 세심한 주의력의 도덕-인지적 덕목은 위축될 것이다. 조립라인에서 전자적 노동착취 공장에 이르기까지, 과학적 관리법의 제도화된 무심함은 우리 모두를 피어시그가 이야기한 바보 정비사와 같은 모습으로 개조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쇠퇴한 노동이 지나친 단순화뿐만 아니라 의도치 않은 도덕적 재교육까지 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한다. 조립라인이 출현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관찰자가 이렇게 기록한 것을 떠올려보자. 과학적 경영자들은 20여 년 전에는 능률적이고 자존심 있는 장인들이 지원했는데, 이제는 형편없고 멋대로 구는 사람들을 직원으로 채용해야 한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R. F. Hoxie, Scintific Management and Labor). 우리는 모두 단지 명령 ..
「로버트 잭콜은 기업 경영자들과 수백 시간에 걸친 인터뷰를 한 끝에, 현대 경영관리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자질구레한 일은 아래로 보내고 공로는 위로 끌어올리기"라는 결론을 내린다. 의사결정은 직장 경력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되도록 피하고, 명성에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사실에는 그럴싸한 이야기를 가져다 붙이라는 말이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고위 경영진은 추상적인 개념만 다루고 운영의 세부사항은 다루지 않는다. 만일 상황이 잘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한다. "통신부와 소비자 전자 기술부가 내놓은 협동 마케팅이 상승 효과를 얻어 사사분기에 돌입하는 우리의 전략적 전망을 향상시켰다." 상황이 잘못 돌아가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보니지 디스플레이 바꾸는 거? 그건 애들 생각이었지. 걔 이름이 뭐였더라, ..
「기술 수업을 없애고 무능한 노동자들 마저 모두 대학으로, 뒤이어 칸막이 사무실로 보내려는 열망을 둘러싼 '미래의 직업'과 같은 미사여구가 있다. 이런 이야기는 대부분 우리가 후기산업경제를 향해 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오직 추상적 개념만을 다루게 될 거라고 가정한다. 하지만 추상적 개념을 거래하는 일과 그것을 사고하는 일은 다르다. 사무노동직도 관례화와 쇠퇴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100년 전 수공 제조업에 닥쳤던 것과 같은 논리에 따라 진행된다. 즉, 사무직의 인지적 요소들이 전문가들로부터 전용되어 시스템이나 공정에 도입되고, 결국에는 전문가를 대체하는 새로운 사무원 계급에게 되돌아가는 것이다. 만일 전보다 훨씬 적은 지식인에게 집중되면서 진정한 지식노동이 늘어나기는커녕 실제로는 줄어들고 있다면, ..
「과학적 관리법이 잠시 주춤하면서, 포드는 조립라인의 직원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동자들의 일당을 두 배로 늘려야만 했다. 브레이버만에 따르면 이것은 "공장 안에서 노동 강도를 높일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공장 노동자들은 이제 자신의 직업을 유지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안달이 난 노동자는 훨씬 더 생산적이었다. 실제로 포드는 임금 인상이 "이제껏 취했던 중에 최고의 비용 절감 조치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단지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를 높이는 것만으로 자동차 조립 속도를 두 배, 세 배로 올릴 수 있었다. 그는 이 방법으로 경쟁자들을 물리쳤고, 대안적 작업 방식의 가능성을 말살했다(또한 더 즐거운 직업이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임금 압력도 없애버렸다). 1900년 당시 미국..
「1974년 해리 브레이버만은 경제에 대한 사유가 담긴 걸작 『노동과 독점자본』 ― 20세기에서의 노동의 쇠퇴』를 출간했다. 브레이버만은 공인된 마르크스주의자다. 냉전이 별 탈 없이 끝난 지금은 치명적인 정치적 위협을 느끼지 않고 노동의 소외에 대한 마르크스의 주장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다. 브레이버만도 인정하듯이 이 비평은 자본주의 사회에 못지않게 구소련에도 적용된다. 그는 수많은 종류의 노동의 쇠퇴에 관해 풍부하게 묘사한다. 그러면서 왜 해가 지날수록 우리가 점점 더 멍청해지는지를 설명해준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노동의 쇠퇴는 궁극적으로 사고와 행동의 분리에 뿌리를 둔 인식의 문제다. 브레이버만이 보기에 문제를 일으킨 용의자는 다름 아닌 '과학적 관리'다. 과학적 관리는 "과학을 대표하는 게 아니라,..
"The brutish dog-eat-dog existence of a slum dweller is a far cry from the quiet desperation and existential nothingness of a corporate wage-slave. Yet after your time at Telestrian Industries, it's unclear which is more bleak."* (밑바닥 사람들의 생존을 위한 야수 같은 삶은 회사에 다니는 임금노예들의 조용한 절망의 삶,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공허한 삶과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텔레스트리안 인더스트리'를 겪고 나면 어느 쪽이 더 암울한 삶인지 말하기 어려워진다.) 14/09/27 *
「애피 교수에 따르면 베트남에 간 250만명 중 약 80%는 노동자 또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었다. 노동계층의 아이들은 군대에 가고 부잣집 아이들은 대학에 갔다. 웨이터, 공장노동자, 트럭운전사, 회사의 비서, 소방관, 목수, 영세 상인, 경찰관, 영업 판매원, 광부, 그리고 농부의 가족 출신이 주로 징집의 대상이 되었다. 1961년부터 1972년 사이 매년 산업재해로 1만4000여명의 노동자들이 죽었는데, 베트남전에서 가장 많은 사상자가 생겼던 1968년 거의 같은 수의 미군이 죽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군인이나 노동자나 모두 가장 더러운(the most dirty) 직종이었다.」* 일상이 죽느냐 사느냐의 전쟁터인 노동자. 군복 대신 작업 복을 입고 있을 뿐인 자본가의 군인. 14/05/..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규제완화를 외치며 기꺼이 안전규제를 무너뜨리는 정부, 좋은 시절에는 명령하고 군림하다가 위기가 닥치면 먼저 도망치기 바쁜 리더, 부도를 내도 사기를 쳐도 교주놀이하며 신도를 착취해도 한 번 재벌이면 일가족 대대손손 항로를 독점하고 여객선 굴려가며 계속 재벌 노릇 할 수 있는 자본가, 나날이 계약직·비정규직으로 전락하여 자기 일에 대한 장기적 전망과 사명감을 가질 수 없는 노동자, 돈 없으면 단 한 번 실패와 단 한 번 운 없음으로도 곧바로 죽음의 공포가 닥쳐오는 전쟁 같은 삶을 사는 소시민, 모든 것은 개인의 책임이고 개인의 비즈니스일 뿐으로 더불어 산다는 개념은 희미한 기억 속에만 남아가고 있는 공동체, 아, 이것이 세월호 참사가 매시간 매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대한민국, ..
"생산적 노동자가 되는 것은 행운이 아니라 불운이다." - 마르크스, 에서 13/02/04 2012/12/28 - 지면 어때? 2012/05/14 - 페스트처럼 기피되는, 노동 2012/04/04 - 굴레에서 벗어난 멜로디 2012/03/10 - 소유나 존재냐
"노동자는 일을 한다.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열심히, 더 적은 임금을 받기 위해." 을 쓴 저자가 서문에서 한 말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한 마디를 덧붙이는 것을 깜빡했다. '더 위험한 환경에서.' 마르크스가 에 적어 놓은 19세기 노동자들의 끔찍한 노동환경과 치명적인 건강문제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다만 우리 시야에서 사라졌을 뿐이다. 우리는 이런 식인 것 같다. '토양과 해양의 쓰레기 오염 문제?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돼. 매일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들?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돼. 비윤리적으로 키워지고 도살되는 동물들? 내 눈에만 띄지 않으면 돼. 내 눈앞엔 깨끗하고 깔끔하게 포장된 상품만 제때 진열되어 있으면 돼. 아참, 저렴하게.' 이 책이 분석하는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이란 나라도 참..
을 그린 만화가 김성희는 이 책에 대한 제안을 받고 두 달을 고민했다고 한다. 자칫 삼성을 잘 못 건드렸다가 나만 망하고 끝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두 달 고민 끝에 자신 있게 책을 냈지만, 진보매체마저 이 책에 대한 광고를 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마지막 쪽에는 IBM의 '기업 사망자료'를 분석한 환경위생학 교수 리차드 클랩 박사가 짤막하게 나온다. 클랩 교수는 엄청난 괴롭힘과 따돌림, 고난이 기다리고 있었음에도 약자인 암환자들 편에 서 연구를 진행해 분석 자료를 법정에 제출했다. 그러나 IBM에서 일하다 암에 걸린 노동자들의 소송은 패배한다. 미국의 한 저널이 클랩 교수에게 물었다고 한다. 왜 이런 돈도 안 되는 일을 하느냐고. 클랩 교수는 답했다. 누군가는 그들 편에 서야 한다고. "골리앗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