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숨길 수 없고 약속할 수 없다. 12/06/26
"에고는 언제나 무엇인가를 원한다. 아니면 상대방으로부터 얻을 것이 없다고 믿어지면 철저한 무관심 상태가 된다. 그것은 당신에 대해서는 관심 갖지 않는다. 따라서 에고가 지배하는 인간관계의 세 가지 상태는 이것이다. 원하는 것, 원하는 것의 좌절(분노, 적개심, 비난, 불평), 그리고 무관심"* 12/06/25 * 톨레, 에서 봄
사랑에 빠진 여자의 목소리는 새벽 산책길에 들려오는 새의 노랫소리만큼이나 상냥하다 12/06/24
MBC스페셜에서 본 장면이다. 7살 민호가 공부하다가 눈물을 주르륵 흘린다. "왜 그래?" "(울먹울먹)내가 강아지로 태어났으면 좋았었는데.." "강아지로? 왜?" "한문 안 해도 되잖아, 한자랑" "강아지로 태어났으면 좋겠어, 그래서?" "(훌쩍)어" "(연필로 책상을 툭 치며)괜히 여기 태어났어" 12/06/23
똑똑한 머리, 굉장한 학습능력, 방대한 지식 수준이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학계에서 날고 기는 사람들을 접하며 이것을 깨닫고 능력자들에 대한 해묵은 열등감을 벗은 것이 공부하면서 얻은 성과라면 성과다. 지식의 양만큼 사랑과 지혜가 자란다면 만권의 책인들 못 읽겠는가. 그러나 지식의 양만큼 그 '안다고 하는 생각'이 오히려 족쇄가 되는 경우가 훨씬 흔하다. 나부터 돌아볼 일이다. 깨어있자. 12/06/22
같은 날 두 기사를 봤다. 하나는 실적 압박으로 SC은행 지점장이 투신 자살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의사들의 비밀, 수술 환자가 죽는 진짜 이유는..."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실적 경쟁 때문에 '공장식 대형 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들의 피로가 한계를 넘은 것이다.** 한병철 선생이 "피로사회"에 쓴 말이 떠올랐다. "자본주의가 일정한 생산수준에 이르면, 자기 착취는 타자에 의한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능률적으로 된다. 그것은 자기 착취가 자유의 감정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성과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성과주체는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를 착취한다. 여기서 자학성이 생겨나며 그것은 드물지 않게 자살로까지 치닫는다." 진실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성과주체에게 외적인 강요가 없다는 분석에는..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홀로 선다. 12/06/20
냄새 풍기지 마라. 어느 도인이 수행하는 이들에게 말씀하셨다. 채식주의자도 새겨 들을 말이다. 채식 한다고 말하는 순간 온갖 사람들이 당신의 감시자가 된다. 마치 당신이 고기 한 점 먹는 것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듯이. 그래서 '그것보라며' 승리의 희열을 맛보겠다는 듯이. 나는 그냥 먹고 싶은 대로 먹는다고 답한다. 실제로 고기를 먹기도 하고. 내 삶은 내 게임이다. 남의 게임 룰에 따를 필요는 없다. 12/06/20
주식회사의 최고 경영자를 투표로 선출하면, 생산과 노동이 균형을 이루고, 자연파괴가 줄어들어 생태계와 기술 문명이 화해를 이루며, 전 세계적 착취가 사라지고 인류가 국민국가를 넘어 하나 되는 길이 닦이는가? 김상봉 선생은 가장 공들여 분석하고 집중했다는 주식회사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지에 관한 장대한 '법적' 연구끝에 말한다. "이처럼 주식회사의 경영권을 노동자들에게 위임하기 위해 우리가 많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 부당하게 피해를 줄 필요도 없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의 법률조항이다." -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노예"에서 "주인"으로 된다. 그것은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이다. 인류의 희망은 투표로 삼성의 주인을 뽑는 것에 있지 않고, 사람들이 자신과 서로서로와 자연과 사물과 관계 맺는 방식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남이 대신 사랑해 줄 수는 없다. 12/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