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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시작이다| ABC 살인사건 독서기 #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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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시작이다| ABC 살인사건 독서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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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이상한 연쇄 범죄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그리 중요치 않은 인간 관계에 대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적, 개인적 요소란 빠뜨려선 안 되는 것이다. 에르큘 포아로가 언젠가 과장된 몸짓으로 나에게 가르쳐 준 일이 있다. 로맨스란 범죄의 부산물일 경우가 있다고.


ABC 수수께끼의 해결에 대해 말한다면, 에르큘 포아로는 이제까지 그가 다뤄 온 어느 사건과도 다른 방법으로 문제에 뛰어들어 그 진정한 천재성을 발휘했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 영국 육군 대위 아서 헤이스팅즈 머리글에서


사설 탐정 포아로는 은퇴했지만, 계속 사건을 떠날 수 없다. 포아로는 최근 편지 하나를 받았다. 편지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에류큘 포아로여, 너는 자만에 빠져 있는 게 아닐까. 가엾은 우리 멍청이 영국 경찰이 감당하지 못하는 어려운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건 너 자신이라고?


명민한 포아로여, 너의 명민함을 어디 한 번 보여다오. 하지만 너에게는 이 호두가 너무 딱딱할걸. 이 달 21일, 앤도버(Andover)를 경계하라. 이만.  ABC"


보낸 사람은 ABC로만 적혀 있었다. 앤도버의 영문 첫번째 알파벳이 A로 시작한다는 걸을 주목해야 한다. 흥미가 돋는다. 포아로는 무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거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첫번째 챕터가 끝나면 앨릭잰더 보너퍼트 캐스트란 사람의 동작을 자세히 묘사하는데 이게 왜 들어가있는지 모르겠다. 무언가를 암시하는 걸까? 그는 철도 안내서를 잡어들었고, 어떤 이름에 표시를 했다. 그것은 6월 20일 목요일이 일이었다.


포아로가 쓰고 싶은 미스터리 소설은 이런 것이다.


"아주 단순한 범죄. 복잡한 데가 조금도 없는 범죄. 조용한 가정 생활의 범죄.. 열광적이 아니고 아주 내밀스러운."


예를들면 어떤 걸까?


"네 사람이 앉아서 브리지를 하고 있네. 그리고 한 사람이 그 게임에 끼지 않고 벽난로 옆 의자에 앉아 있지. 밤이 깊어졌을 즈음 난롯불 옆에 앉아 있던 사나이가 죽은 것을 알게 되네. 네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손이 비게 되었을 때 죽였지만, 모두들 게임에 정신이 팔려 모르고 있었지. 자, 이것이 사건이네. 범인은 네 사람 가운데 누구일까?" 인용 끝.


캬.. 누가 범인일까? 짤막한 한 단락으로도 구미가 당기는 소설이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정말로 이 설정으로 소설을 쓴게 있을까?


그러다 앤도버 지역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죽은 사람은 작은 담배가게의 노파로, 이름은 애셔이다. 얘서의 알파벳은 A로 시작한다. 포아로는 소식을 듣고 이렇게 말한다.


"이것이 시작이다."


사건 현장에는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철도 안내서가 있었던 것이다. 놀랍게도 철도 안내서의 이름은 ABC였다. 즉 ABC 철도 안내서였다. 철도역을 알파벳 순서로 나열했기 때문에 ABC 철도 안내서로 불린다. 애셔 부인을 살해하고 ABC 철도 안내서를 남기고 사라진 정체 모를 인간은 대체 누구일까?


포아로는 사건 현장에서 희생자의 옛 사진을 발견한다. 인용 시작. 


「포아로가 말했다. "아마 결혼 기념 사진인 모양이군. 보게, 헤이스팅즈, 그녀는 미인이었을 거라고 내가 말했잖나."


그 말대로였다. 시대에 뒤떨어진 머리 모양과 구식 옷 때문에 좀 이상해 보이긴 했지만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반듯한 아가씨의 아름다움은 의심할 바가 없었다. 나는 옆에 있는 다른 한 인물을 자세히 보았는데, 이 군인처럼 보이는 말쑥한 젊은이가 그 초라한 남자였다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았다.


나는 그 곁눈질을 하는 주정꾼 노인과 피로에 지친 얼굴의 죽은 노파를 생각해내고 세월의 무자비함에 몸을 떨었다.」 인용 끝. 


세월은 그 누구에게나 무자비한 법이다. 


포아로가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이끌어내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포아로는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때로는 단도 직입적으로 묻고, 때로는 기자를 사칭하며 사례금을 제시한다. 능구렁이처럼. 포아로는 이렇게 말한다.


"아니, 자네가 말하는 것처럼 그냥 물어 보아서는 아무 대답도 얻을 수 없다네. 자네는 자신도 영국 사람이면서, 그냥 물어 보는 질문에 반발하는 게 영국 사람의 기질이라는 걸 모르고 있는 모양이군. 그것은 반드시 의심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켜 결과는 완강한 침묵으로 끝난다네. 이 사람들에게 뭘 물어 보게나, 그들은 조가비처럼 입을 다물어 버리지. 그렇지만 이상하고 터무니없는 어떤 말을 한 가지 꺼내 거기서 자네가 반대되는 말이라도 해보이면, 금방 이야기가 풀려 나온다네. 그런 방법으로 우리는 문제의 시각이 바쁜 때였다는 것, 그래서 누구나 자기 일 말고는 신경쓸 수 없으며 많은 사람이 길을 지나가고 있었던 때라는 것을 알게 된 거야. 우리의 살인범은 좋은 시간을 택했다는 말이 되네, 헤이스팅즈."


포아로의 이 통찰은 영국 사람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거 같다. 


포아로는 ABC라는 단서 외에는 도저히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지 못한다. 전혀 희망이 없는 거냐는 질문에 포아로는 이렇게 답한다.


"그 답은 '있다'일세. 우리는 지금 미지의 인물과 마주하고 있네. 상대는 어둠 속에 있고, 언제까지나 어둠 속에 있으려 하지. 그러나 일의 성질로 보아 그는 자기에게 빛을 비추지 않고는 견디지 못할 걸세. 어떤 뜻에서는,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네. 그러나 다른 뜻에서는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지. 나에게는 그의 모습이 흐릿하게 형태를 갖추어 오는 게 보인다네. 올바른 활자체를 달필로 쓸 수 있는 사나이, 비싼 편지지를 사는 사나이, 무엇보다도 자신감과 개성을 나타내고 싶어하는 사나이, 무시되고 남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사나이, 마음 속에 열등의식을 키워 온 사나이, 그것을 부당하게 느끼며 싸워 온 사나이가 내 눈에 보이네. 자신을 주장하고 남의 관심을 끌고 싶은 마음 속 충동이 점점 강해지고, 사건이며 사물이 그것을 부숴 버려 한층 더 비굴한 감정을 쌓아올려 간 것이 내 눈에는 보이네. 그리하여 내부의 성냥이 이 화약을 실은 열차에 불을 붙이게 된 걸세."


또 이런 말도 한다.


"그 ABC편지를 쓰는 그런 자와는 정반대의 성격일세. 자신감과 자부심이 우리가 찾고 있는 특징이지."

"누군가 자신의 중대성을 알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아마도 그럴 걸세. 그러나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신경질적이고 겸손함 속에 오히려 크나큰 허영심과 자기 만족을 숨기고 있기도 하지."


ABC가 포아로에게 도전했고, 그리고 이겼다. 그리고 ABC 사건의 제 2장이 시작된다. 새로운 편지가 도착한 것이다.


"친애하는 포아로여, 대체 어떻게 된 건가? 첫 번째 게임은 내 승리다. 앤도버 사건은 실로 잘되었잖은가?


그러나 재미는 이제 시작이다. 이번에는 벡스힐 바닷가로 주의를 돌리도록. 날짜는 오는 25일.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인가! 이만. ABC"


애거서 크리스트, ABC 살인사건, 박순녀 옮김, 동서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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