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맨의 모델,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더니치 호러| 러브크래프트 전집 독서기 #3

H.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정진영 옮김. 황금가지.

(픽맨의 모델, 네크로노미콘의 역사, 더니치 호러)

단편 '픽맨의 모델'을 읽을 때면, 픽맨의 그림이 실제 눈앞에 펼쳐진다면 어떤 모습일까호기심이 듭니다. 호기심이 공포를 이기는 걸 보니, 저도 벌써 홀린걸까요? 그만큼 러브크래프트의 필치가 대단합니다. 어떤 그림일지 한 단락 읽어봅시다.

인용 시작. 

「수업이라는 그림이 있었는데, 아, 정말이지 눈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습니다. 개처럼 생긴 정체불명의 괴물들이 교회 마당에 빙 둘러앚아 어린아이들에게 어떻게 서로를 잡아먹는지 가르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사악한 요정들이 인간의 아이를 훔치고 요람 속에 못생긴 아이를 대신 놓고 온다는 전설을 기억하십니까? 그림 속의 아이들은 바로 그 훔쳐간 인간의 아이들이었지 뭡니까? 픽맨은 실종된 인간의 아이들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를 암시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하는지, 또 인간과 비인간의 형체 속에서 얼마나 끔찍한 관계를 형성해 가는지 말입니다. 픽맨은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변형된 병적인 감수성을 통해 진화의 과정을 냉소적으로 재구성한 겁니다. 개의 형상을 한 괴물이 인간에게서 진화한 것이라니!」 인용 끝.

그 다음 청교도 가정에서 성경을 읽고 있는 가운데, 유독 기품있으나 경멸적인 표정을 한 한 아이를 묘사한 그림도 섬뜩합니다. 그 아이는 교환된 아이였던 겁니다. 그리고 이 다른 세상에서 온 존재를 암시하는 부분은 이 작품의 복선이기도 하고, 뒤이은 단편의 복선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픽맨의 그림이 단순히 기괴해서가 아니라 알 수 없는 이유로 역겨운 혐오감이 이는데요, 그 이유를 알아차리는 순간이 픽맨의 모델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단편은 '네크로노미콘의 역사'입니다. 극히 짧은 글이지만 그렇기에 더욱더 호기심과 신비감을 증폭시킵니다. 서기 700년 경 미친 시인 압둘 알하즈레드가 집필한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비밀에 쌓여 있지만, 다음 단편 '더니치 호러'에서 그 일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바로 단편 '더니치 호러'로 넘어가서 네크로노미콘의 일부를 읽어봅시다.

"인간만이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지구의 마지막 영장이라거나 두 발로 걷는 생물체라는 생각은 그릇된 것이다. 올드원은 예전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우리가 아는 공간이 아니라 그 중간 어딘가에서 그들은 고요하고 장구한 걸음으로 차원을 초월해 걷고 있으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종종 그 냄새로 올드원이 가까이 있음을 알지만, 그 생김새를 알지 못하며, 올드원이 인간의 몸으로 낳게한 종족만을 겨우 알아볼 뿐이다. 올드원은 보이지 않으며 실체가 없으나, 인간의 몸으로 그들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구현한 후손들은 그 수가 많으며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들은 숲을 정복하고 도시를 파괴하나, 누구도 그 파멸의 손을 보지 못한다.

인간이 지금 통치하는 곳, 과거 올드원이 통치했던 곳이다. 인간이 지금 통치하는 곳, 머잖아 올드원이 통치할 것이다. 여름 다음에 겨울이 오고, 겨울 다음에 여름이 오듯이 그들은 지금도 묵묵히 그리고 힘차게 다시 통치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무시무시하죠? 뭔가 공포 영화 오멘도 떠오릅니다. 더니치 호러에서 멋진 부분은 학자 아미티지가 끝내 형언할 수 없는 존재의 비밀을 파헤치는데 성공하고, 다른 학자 두 명과 함께 이 땅에 소환된 그 미지의 존재를 물리치는 장면입니다. 뱀파이어 헌터같은 초인적 인간이 아닌, 연약한 학자가 압도적 존재를 물리친다는 게 신선합니다. 러브크래트트 소설에서 지적인 사람들은 그 지식욕 때문에 파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는 지식의 힘으로 승리한 거라 더 각별합니다. 지식을 탐구하는 자 모두에게 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