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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철학으로서의 유학' 독서기 #3(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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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성, 보편 철학으로서의 유학, 이학사.


송나라 유학자 정이와 정호 형제는 형제이면서도 그토록 성향이 반대였다는 게 늘 흥미롭다. 정이가 머리라면 정호는 가슴이다. 정이는 지적이고, 정호는 체험적이다. 이런 이론적 차이가 둘의 일상생활에서도 차이를 가져왔고, 정이는 매우 엄격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던 거 같은데, 어디서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호는 이렇게 말한다. "심지어 물 뿌리고 마당 쓸고 손님 접대하는 일조차도 형이상학적[본체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원리는 일의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인용끝.


정이와 정호, 양자를 통합한 천재는 주희다. 나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 또 모순된 것을 하나의 틀 안에 설명하려는 그의 노력에서 헤겔을 떠올린다. 헤겔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와 마음을 지배하는 원리가 같다고 본 것처럼, 주희도 이미 한참전에 그 점을 파악했다. 마음의 원리와 사물의 원리가 다르지 않다면, 내면의 수양을 강조하는 내성파나, 철학적 탐구를 강조하는 외성파나 한쪽으로 편향된 것이다. 


제자가 주희에게 물었다.


"주체적 도덕 수련은 반드시 경에 근거해야 하고, 객관적 학문 수행은 지식의 철저한 추구에 기초해야 한다는 말의 뜻을 셜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주희가 답했다.


"양자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거나 포기할 수 없다. 지식의 철저한 추구는 반드시 도덕 수련에 기초해야 하고, 도덕 수련은 모름지기 지식의 철저한 추구에 입각해야 한다."


결국, 주희가 정이의 후계라는 것도 잘못되었고, 왕양명으로 대표되는 심학파와 대척점에 있다는 것도 잘못되었다. 주희는 종합파인 것이고, 종합파이기에 양쪽에서 오해받는다.


주희의 철학은 그의 생전에는 철저한 비주류였으나, 그가 죽고나서 관학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주자학이다. 그의 학문이 국가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지 않았더라면 그와 그의 학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좀 더 공정했을 것이다. 


책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언급은, 역사와 가치를 구분하자는 주장이다. 무엇이 주희의 진짜 의도인가? 무엇이 진짜 주자학인가? 이 논쟁은 끝날 수가 없다. 유학뿐 아니라 역사 깊은 모든 학문 분과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우린 과거의 사상을 완벽하게 객관적으로 이해할 방법이 없다. 결국 저자가 말한대로 우린 역사적 사실과 지향해야 할 가치를 구분해야 한다.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지 솔직히 터넣고, 그 안에서의 객관성을 탐구할 필요가 있다. 결국 나의 의도가 무엇인가, 무엇이 진짜 나인가가 학문 탐구의 객관성도 규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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