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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머스의 그림자, 현관 앞에 있는 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독서기 #4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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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머스의 그림자, 현관 앞에 있는 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독서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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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 러브크래프트 전집, 정진영 옮김. 황금가지.

(인스머스의 그림자, 현관 앞에 있는 것)



인스머스의 그림자에서 가장 숨막히는 순간은 후반부 인스머스 대탈출일 겁니다. 미리 뭔가 수상한 낌새를 알아차리고 대비를 해두었던 주인공의 기지가 아니었다면, 주인공은 탈출할 수 없었을 겁니다. 탈출 과정은 마치 영화를 보는듯 생생하고 긴박합니다. 근데 끝까지 다 읽고나면, 과연 그게 대탈출이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주인공의 무사 탈출에 같이 안도하며, 에필로그를 즐기려 하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 전부터 뭔가 더 있을 것이라는 복선이 있었으나 대수롭지 않은 구절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우리의 주인공에겐 밝고 희망찬 미래는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문단을 읽어볼까요?


「나는 아직까지는 더글러스 외숙부처럼 내 머리에 총을 겨누지 않고 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그리 될 것이지만 꿈들이 나의 죽음을 방해하고 있다. 공포의 강도도 조금씩 누그러지고, 나는 이상할 정도로 두려움을 잊고 그 미지의 해저 속으로 빨려들곤 한다. 꿈속에서 기이한 일들을 저지르고, 언제부터인가는 공포보다는 환희로 깨어나 아침을 맞는다. … 저 아내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전대미문의 거대한 광희, 나는 속히 그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이야-리에 크툴루 파탄! … 아, '디프원'이 잠들어 있는 곳, 그곳에서 경이와 영원불멸의 영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그 다음 단편 「현관 앞에 있는 것」이 무서운 이유 중의 하나는 인스머스의 그림자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있습니다. 러브크래프트가 하나의 통일되고 유기적인 세계를 창조하고, 한 작품의 요소를 다음 작품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솜씨가 절묘합니다. 


이 작품엔 긴장감 넘치는 순간이 많은데요, 예를 들어 다음 대목을 읽어봅시다.


인용 시작. 「"잘 들어요, 형. 집사람이 왜 왼손잡이처럼 글을 쓰려고 기를 쓰는지 알아요? 형은 에프라임이 남긴 원고를 본적이 없죠? 아세나스가 흘겨 쓴 노트를 보고 내가 얼마나 소름이 끼쳤는지 모르죠?


아세나스.. 과연 그녀라는 사람이 진짜로 존재하기는 할까요? 


형은 모르죠? 형, 말해 봐요. 그 무시무시한 괴물이 인간의 피가 반만 섞인 심약한 아이를 그 집에다 숨겨 놓고 대체 무엇을 뒤바꾸려고 했는지 말이에요. 아세나스가 내 육신을 담보로 얻으려고 안달하는 그 영원한 삶, 에프라임은 이미 그 영생을 얻은 게 아닐까요? 아세나스가 방심한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써 놓은 그 글, 아마 형은 감히 그 각본이 어떤 건지 상상도 하지..."

 

그 순간, 그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인용 끝.


러브크래프트는 이 작품에서 의식의 전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척 선구적이지 않아뇨? 인간의 의식이 육체에 한정되지 않은 것일 수 있으며, 그것이 전이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여러 sf 문학이나 영화에서 다루어진 바 있습니다. 근데 그 아이디어를 러브크래프트 소설에어 이미 발견할 수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마지막에 한 곱사등이 형체가 주인공에게 편지를 전해주는 장면은 압권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 곱사등이가 실제로는 누군지 쉽게 알아차릴 수 있지만, 알면서도 당한다 할까요? 알면서도 소름이 끼칩니다. 더 무서운건 주인공이 편지를 다 읽고 나서입니다. 러브크래프트는 시치미를 뚝 떼고 주인공이 편지를 다 읽고 나자 한 세 문단 더 쓰고는 이야기를 끝내버립니다. 하지만 책을 덮고 가만히 편지 내용을 생각하다보면 실로 무서운 깨달음이 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스머스의 그림자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요. 그리고 주인공의 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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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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