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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은 답을 주는가? 본문

명문장, 명구절

학문은 답을 주는가?

모험러

「이제 우리의 주제로 되돌아갑시다. <진정한 존재로의 길>, <진정한 예술로의 길>, <진정한 자연으로의 길>, <진정한 신으로의 길>, <진정한 행복으로의 길> 등 이전의 그 모든 환상이 무너져버린 이상, 직업으로서의 학문의 의미는, 상기한 내적 전제를 고려할 때, 무엇입니까? 이에 대한 가장 간단한 답은 톨스토이가 제시했는데, 그의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학문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학문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우리는 윤리적-당위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윤리적-당위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 어떤 답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학문이 답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에는 전혀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문제는 학문이 어떤 의미에서 답을 주지 <못하는가>는 것이며, 또한 학문은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주지 못하지만, 문제를 올바르게 제기하는 자에게는 혹시 무엇인가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흔히 <전제 없는> 학문에 대해 논하곤 합니다. 그런 학문이 존재합니까? 이것은 우리가 <전제 없는 학문>이라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모든 학문연구에는 논리적 그리고 방법론적 규칙들의 타당성이 전제되어 있는데, 이 규칙들은 현실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는 우리 능력의 일반적 기초입니다. 그런데 논리적 방법론적 규칙에 대한 이러한 전제들은, 적어도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특수한 문제에 비추어볼 때는, 가장 논란의 여지가 적은 부분입니다. 그러나 학문연구에는 또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곧 학문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는 <알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전제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바로 여기에 우리의 모든 문제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학문연구의 결과가 알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이 전제 자체는 학문의 수단으로는 증명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전제는 그것에 깔린 궁극적 의미를 기준으로만 해석될 수 있을 뿐이며, 또한 이 궁극적 의미를 우리는 다시금 삶에 대한 우리의 궁극적 입장이 어떠한가에 따라 거부할 수도 수용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전제, 즉 학문연구의 결과가 '알 가치가 있다'는 전제는 개개 학문의 구조에 따라 매우 달리 취급됩니다. ...」*


15/08/31


* 막스 베버. (2006). 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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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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