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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이 대답하지 못하는 이상, 그럼 누가 대답하는가? 본문
「물론 내가 여기서 여러분에게 제시하는 이러한 견해는 항상 다음과 같은 하나의 기본상황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삶이 어떤 형이상학적 또는 종교적 준거 없이 그 자체로서 존재근거를 가지고 있고 또 그 자체로서 이해되는 한, 삶은 오로지 저 신들 상호간의 영원한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기본상황 말입니다. 이것을 산문적으로 표현하자면, 삶에 대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궁극적 입장들의 상호 합치 불가능성 및 이 입장들 간의 투쟁의 중재 불가능성이라는 기본상황, 따라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이 입장들 가운데 하나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는 기본상황입니다. 이러한 사정 하에서 학문이 어떤 사람의 <천직>이 될 가치가 있느냐 또 학문 자체가 객관적으로 가치 있는 <소명>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다시 하나의 가치판단의 문제이며, 따라서 강의실에서는 이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자 할 경우, 이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은 그 전제조건입니다. 나 개인적으로는 나 자신의 학문적 활동을 통해서 이미 그 질문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대답한 셈입니다.
더욱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하는 바와 같이, 아니면 ― 대부분의 경우 ―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주지주의를 가장 저질의 악마로서 증오하는 입장을 취할 경우에도, 아니 바로 이런 입장의 경우에 특히 그러합니다. [즉 학문의 가치의 긍정이 그 전제조건입니다]. 그 경우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격언이 적용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마, 그는 늙었다. 그러므로 그를 이해하려면 너도 늙어야 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라."
이 말은 출생증명서라는 의미에서 '늙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악마를 지배하려고 한다면 오늘날 매우 흔히 일어나는 바와 같이 '악마', 즉 '학문'이라는 악마 앞에서 달아나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의 길을 일단 먼저 끝까지 파악해야만 비로소 그의 힘과 한계를 알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학문은 오늘날에는 <자기성찰>과 사실관계의 인식에 기여하기 위해 전문적으로 행해지는 <직업>이지, 구원재와 계시를 희사하는 심령가나 예언자의 은총의 선물이 아니며 또한 세계의 의미에 대한 현인과 철학자의 사색의 일부분도 아닙니다. 물론 학문의 이러한 전문직업화는 우리의 역사적 상황의 불가피한 조건인데 우리가 자기기만에 빠지지 않는 한 우리는 이 조건으로부터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다시 여러분 안에 있는 톨스토이가 일어서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고 합시다.
"우리는 실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또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설계해야 하는가?"
또는 오늘 강연 여기서 사용한 언어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서로 싸우는 신들 중 어느 신을 섬겨야 하는가, 아니면 이들과는 전혀 다른 어떤 신을 섬겨야 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이 다른 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 학문이 대답하지 못하는 이상, 그럼 누가 대답하는가?"
라고 묻는다면, 이에 대해서는 예언자나 구세주가 대답할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언자가 없거나 또는 그의 예언이 더 이상 믿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수천 명의 교수들이 국록을 받거나 특권을 누리는 소예언자로서 강의실에서 예언자의 역할을 수임하려고 시도한다고 해도 결코 진정한 예언자가 지상에 다시 등장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강단의 이런 소예언자들이 초래할 결과는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즉 우리의 젊은 세대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갈망하는 그런 예언자는 이제 없다라는 결정적 사실이 가진 의미의 막중함을 그 젊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도록 한다는 결과입니다. 강단예언과 같은 그 모든 대용물들은 신으로부터 소원해진 시대, 예언자가 없는 시대에 사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는 이 근본적 사실을 종교적 감수성을 지닌 사람과 그 밖의 사람들에게 은폐합니다. 이러한 은폐는 특히 진실로 종교적으로 <음감(音感)이 있는> 사람 [즉 종교적 감수성을 소유한 사람]의 내적 목표 실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의 종교적 감관(感官)의 정직성은 이러한 은폐에 대해서 아마도 분명히 반발할 것입니다.」*
15/09/01
* 막스 베버. (2006). 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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