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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와 중도(中道), 그리고 여키스-돗슨 법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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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와 중도(中道), 그리고 여키스-돗슨 법칙

모험러

"There are no two words in the English language more harmful than 'good job'."

(영어에서 '잘했어'보다 더 해로운 낱말은 없다.)


- 영화 <위플래쉬>에서, Fletcher(플레처)의 대사.


2500년 전에도 있었다. 심지어 채찍질(whiplash)하는 선생이 없는데도 피가 철철 나도록 수행하던 사람이. 붓다는 그런 제자에게 거문고의 비유를 들어 저 유명한 중도(中道)의 길을 설하셨다.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 거문고의 활줄 소리에 능숙하였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문고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한데도 그대의 거문고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거문고의 활줄이 지나치게 느슨한데도 그대의 거문고는 그때 선율이 이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그러나 그대의 거문고의 활줄이 지나치게 팽팽하지도 않고 지나치게 느슨하지도 않고 적당한 음계에 맞추어졌을 때 그대의 거문고는 그때 선율이 아름답고 연주하기에 적합하게 된다"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그와 같이 지나치게 열심인 정진은 들뜸으로 인도하고 지나치게 느슨한 정진은 나태함으로 인도한다. 소나여, 그러므로 그대는 정진을 고르게 유지해야 한다. [다섯 가지] 기능들(五根)의 균등함을 꿰뚫어야 하고 거기서 표상을 취해야 한다."」*


- 잡아함경(상윳따 니까야) 중


아, 붓다의 가르침은 또 얼마나 현대적인가. 이 위대한 지혜는 현대 심리학 실험에서도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극 수준이 너무 낮으면 무기력해지고, 너무 높으면 스트레스로 마비된다. '적당한' 자극 수준에서만 인간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한다. 


「여키스와 돗슨이 1908년 실험 결과를 정리해놓은 논문 <자극 강도와 습관 형성 속도와의 관계(The Relation of Strength of Stimulus to Rapidity of Habit-Formation)>를 펴낸 이후, 이 논문은 심리학 역사에서 획기적인 논문으로 간주되었다. 일명 '여키스-돗슨 법칙'이라고 알려진 이 현상은 춤추는 쥐들과 다른 색으로 칠한 출입구의 세계를 벗어나 다양한 형태로 관찰되었다. 이 법칙은 설치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인간에게 적용될 때 이 법칙은 일반적으로 어려운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의 능력과 그가 경험하는 정신적 자극이나 흥분 수준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종형 곡선(bell curve)으로 묘사된다.


자극 수준이 매우 낮을 때, 사람은 빈사 상태에 빠질 정도로 늘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럴 때 능력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극의 강도가 높아지면, 능력은 종형 곡선의 정점에 도달할 때까지 왼쪽 측면을 따라서 꾸준히 올라가듯 강해진다. 이어 자극의 강도가 계속해서 높아지면, 능력은 종형 곡선의 오른쪽 측면을 따라서 꾸준히 내려가듯 약해진다. 자극 강도가 최대한도로 높아졌을 때 사람은 스트레스로 마비되고, 이 때도 능력은 나아질 줄 모른다. 춤추는 쥐들과 마찬가지로 인간들은 여키스-돗슨 곡선의 정점에 있을 때 가장 잘 학습하고 능력을 발휘한다. 이때 우리는 도전 욕구를 느끼지만 압도당하지는 않는다. 곡선의 정점에서 우리는 몰입의 상태에 빠진다.」**


플레처 밑에서 초일류로 성공한 제자 션 케이시가 괜히 불안과 우울증세로 자살한 것이 아니다. 욕망이라는 불길은 사람을 한계 너머로 몰아붙이는 에너지임과 동시에, 부드럽게 인도되지 않으면 남을 태우지 않으면 끝내 나를 태우게 될 수도 있는 에너지인 것이다. 


'승리 아니면 죽음을' ― 이 극단의 승자독식사회에서, 우리에게는 자기 자신조차 채 다스릴 수 없던 또 다른 덜떨어진 어른 플레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진 마음으로 제자들을 각자의 재능에 따라 부드럽게 독려하던 참된 어른 붓다와 같은 스승이,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 같은 스승이 필요하다.***


15/03/22


* 어느 인터넷 게시판, <중도란 무엇인가? (소나경)>

** 니콜라스 카. (2014). 유리감옥: 생각을 통제하는 거대한 힘. (이진원, Trans.). 한국경제신문.

*** <미디어오늘>, 15-03-22, "키팅 선생은 가고 플레처가 주목받는 사회: [김헌식의 문화비빔밥] 목적을 위해 사회적 가치를 희생… 문득 떠오른 독재의 망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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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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