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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해야 할지, 뭘 선택할지 모르겠으면 고민하지 말고 차라리 찍어라

모험러

하버드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허블 이전에 천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었던 할로 섀플리(Harlow Shapley)가 천문학을 전공하게 된 것은 강좌목록에서 알파벳순으로 제일 위에 올라와 있는 것을('a'stronomy) 그냥 찍은 결과라고 한다.* 요 며칠 읽은 책 <The Intuitive Mind>**에 의하면, 실험결과 사람들은 오래 분석하고 저울질하여 선택한 물건보다 직감적으로 순식간에 선택한 물건에 차후 후회하는 일도 적고 대체로 더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한다. 흔히 우리는 직업선택에 신중하라, 너만의 꿈을 찾아라,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충고를 듣는다. 그에 따라 많은 청년이 내 적성은 무얼까, 왜 난 하고 싶은 것이 없을까, 무얼 해야 하나를 고민하거나 열등감에 빠진다. 그러나 혹 바로 그 '고민'이 그냥 자기 삶을 덤덤히 살아가는 것을 잡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야 할 일은 그냥 자신의 직감을 믿고 어느 쪽 방향이 되었건 한 발짝씩 발걸음을 내딛는 것이 전부일지 모른다. 꿈이니 목표니 하는 것들은 그렇게 길을 걷다가 아이템 줍듯이 주워 올릴 수도 있겠고. 더 좋은 아이템 나오면 버리기도 하면서. 그냥 길을 걸으며 경치만 구경해도 좋고. 


15/02/06


* 로렌스 크라우스, <무로부터의 우주: 우주는 왜 텅 비어 있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 Eugene Sadler-Smith, <The Intuitive Mind: Profiting from the Power of Your Sixth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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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리뷰, 책 발췌, 낭독, 잡문 등을 남기는 온라인 책방. 유튜브 채널 '모험러의 책방'과 ′모험러의 어드벤처′(게임) 운영 중.

3 Comments
  • 프로필사진 섬옥수수 2017.12.29 09:11 참 본능을 적ㄱㅔ 쓰는 시대죠.
    이렇게 말하기엔 살아온 시간이 비교적 적기는 합니다만.
    저는 충분히 반박당할 수 있는, 위험이 큰 저 ‘본능을 따라라’는 말에 그걸 따랐을 때 어떻게 되었는지에 ㄷㅐ한 썰을 풀어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왜 본능을 따르기가 힘든지도. 조금 긴 글이 될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학을 졸업한 후로도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친구들은 대학원으로 혹은 직장으로, 해외로 여기저기 제 발디딜 곳을 찾아갔는데 그것들은 전부 제 해당사항에 없었어요. 그렇다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고 달리 하고싶은 게 있던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저 위의 선택지는 더더욱 아니어서 일단 졸업을 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할 일은 있엇어요. 연애. 사귀던 애인이 있었는데 제가 어마어마하게 좋아했거든요. 첫눈에 반해서. 그것도 본능적으로 굴었죠.
    그 사람 보고 나오자마자 친구한테 ‘저기에 대단한게 있어’하고는 다다음 번에 찾아가서 좋아한다고 했더라는...^^
    무튼 각설하고, 졸업후로도 그 연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딱히 불안할 게 없었어요. 현재에 충실한 감정행위에 빠져있느라고.
    문제는 제가 ‘왜 연애를 하는데 나는 자꾸 바라게 되고 행복하지 않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상대를 행복하게 해주려는 게 아니라 내가 행복하고 싶어서 그렇구나, 그러니 내게 못해주는 것만 보여서 그렇구나’를 얻었어요.
    그러고 나서부터 왕창 잘해주고, 애인에게 권태기가 오고, 헤어졌습니다. 권태기라는 말을 들은 순간 깨달은 거예요.
    제 감정이 다 연소됐다는 걸. 남김없이. 한동안 좀 힘들다 금세 행복해지더라구요. 흉터도 안남은 상처자리를 만진 것처럼. 기억도 잘 안나요. 그냥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는 문장만 덩그러니 남고ㅎㅎ
    그렇게 헤어지고 나니까 그제야 불안하더라구요. 나 할 일이 아무것도 없잖아? 하는 불안이...
    그때부터 한동안 우울 최고조였어요 ㅇㅅㅇ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것만 같은...세상에 쓸모 없는 머리카락 한올이 된 것만 같은 기분...
    그런 채로 이불 속에서 내내 불안해하다가,
    아마도 이건 한 가지 감정을 느끼면 그거에 끝까지 파고드는 제 습관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아예 제대로 직면한거죠. .
  • 프로필사진 섬옥수수 2017.12.29 09:21 너 할줄아는 거 글쓰는 거밖에 없잖아. 근데 제대로 된 재능도 있는 ㄱㅔ 아니잖아. 학부생활 동안 들은 가벼운 칭찬이 다잖아. 그렇다고 네가 어디가서 용돈 제대로 벌어오고 그런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이대로 하루 이틀 지나고 한달 내내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는 거야? 그게 일년이 되면? 진짜 그러면?
    그렇게 합리화도 변명도 없이 제 아픈 구석을 엄청나게 찔러댔습죠...거의 정신적인 자해라고 할정도로 격하게....
    그걸 다 하고 나니까 이런 질문이 들더라구여.
    근데 너 고작 스물네살 아니야?
    그렇게 질문해본 게, 소설을 써봐도 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은 첫 계기였습니다.
    그게 2016년 8월 즈음이었구요, 저는 그 후로 지금까지, 일 년이 좀 넘는 시간동안 집에서 글만 썼네요.
    뭐 그동안 제 성장에 깊이 관련있는 크고작은 사건들이 있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글에만 몰두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도 눈에 띌 만한 성과는 ㅇ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만
    저렇게 한 번 불안의 끝을 쳐본 뒤에는 신기하게도 한 번도 불안해본 적이 없어요
    글쓰면서 받는 스트레스도 어디까지나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범위 안에 있었던 지라, 그 스트레스가 너무 좋더라구요.

    제가 이걸 통해 느낀 건
    현대인들이 본능을 따르지 못하게 하는 건 불안인 것 같아요. 미래에 대한 불안.
    여기까지는 와도 괜찮다는 말을 들어본 적도 전례도 없으니
    저처럼 수준 높은 통찰을 타고난 사람정도가 아니면(웃음)
    그걸 해내기가 어려운 거죠...
    저는 본능을 따르라는 말도 너무 무책임 하다고 생각하는게
    깜깜해서 아무 것도 안보이는 저기를 무서워하지 말고 뛰어봐! 한다고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말해준 사람에 대한 신뢰도도 적고, 주변에는 그렇게 건너갔다가 패배한 사람들의 잔해만 보이는 걸.
    저는 본능을 따르라고 말하기보다,
    따랐을 때 이런 상황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더 효과적이고 인간적이고 정상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청년들은 생존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 잘 살아남아있는건지도 몰라요. 비난할 수 없어요. (모험러님이 비난햇다는 거x)
    그리고,
    저희 교수님이 그러는데, 옛날사럼들은 잠수함에 토끼를 태운다면서요? 토끼는 예민한 동물이라 산소가 적어지는 걸 먼저 알아차린다규요. 예술가는 그런 존재여야 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글을 쓰겠다는 사람으로서
    먼저 가보고 여기까지는 와도 괜찮다 말해주려고 합니다.
    잘은 모르지만 모험러님도 그 지점에 이미 동참하고 계신 것 같아요. 잘 해봅시다. 앞에 뭐가 있을ㅈㅣ는 모르지만
    ☺️
  • 프로필사진 모험러 2017.12.30 16:06 신고 본능을 따르는 게 매우 힘든 일이며, 때론 그런 조언이 무책임할 수 있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불안을 느끼지 않고 계시다니 다행입니다. 그렇게 계속 나아가시면 될 거 같습니다. 시대의 공기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좋은 글을 꾸준히 저희에게 선물해주십시오.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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