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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러의 책방
논어 첫머리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에 대한 이토 진사이의 해설: 「학(學)은 '본받다'와 '깨닫다'는 뜻이다. 옛날의 주석을 살펴보고 자신의 견문에 비춰서 본받고서 깨닫는 것이다. 습(習)은 거듭 익히는 것이다. 열(說)은 열(悅)과 같은 뜻이니 기뻐하는 것이다. 이미 배운 것을 때맞춰 반복 연습하면 지식이 넓어지고 도리가 분명해지니 그것은 마치 깊이 자다가 갑자기 잠을 깨거나 절름발이가 불쑥 일어서는 것과 같아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다. 원래 도(道)는 광대한 것이어서 오직 배움을 통해서만 다 익힐 수 있고, 반복해서 연습하지 않으면 그 극한까지 도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성인은 배움을 중시하는 동시에 반복 연습하는 것을 필수적인 것으로 여겼다.」* 14/12/24 * 이토 진..
「그러고 보니 율곡이 제시한 유교의 핵심 키워드는 다름 아닌 '지식'이다. 이 키워드가 유교와 불교를 가르는 분수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학문'이 필요하다. 그것은 나 자신과 외계의 지식을 획득하고 판단력을 키우는 적극적 활동이다. 『격몽요결』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사람 노릇을 하자면 공부를 해야한다. 공부란 무슨 남다른,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니다. 일상적 삶에서, 관계와 거래에서, 일을 적절히 처리하는 법을 배우는 것일 뿐이다. 산에서 한 소식을 하거나, 세상을 지배하는 힘을 얻자고 하는 일이 아니다. 공부를 안 하면, 마음은 잡초로 뒤덮이고, 세상은 캄캄해진다. 그래서 책을 읽고, 지식을 찾는다. 지식이 길을 밝혀줄 것이니, 오..
어마무시하게 복잡해 보이는 이론도 살피고 또 살피다보면, 무한히 단순한 어떤 직관 하나를 계속 이렇게도 말하고 저렇게도 말하고 있는 것. 「철학자가 제시한 문제를 보면 우리는 그의 주변에서 토론된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아차린다. 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 내놓는 해답에서 우리는, 과거 혹은 현대에 나온 철학의 여러 요소들이 가지런하게 또는 헝클어져, 그리고 약간 모습이 바뀌어 있는 것을 본다. 어떤 견해는 그가 현대에서 얻었고 또다른 것은 과거의 것에서 암시를 받았을 것이다. 우리는 물론 그가 읽고 배운 것을 가지고 그가 빚어낸 철학을 대부분 다시 구성할 수 있다. 작업을 시작하여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가고 여러 가지 영향을 저울질해보며 흡사한 점을 가려낸 나머지, 마침내는 그의 학설에서 우리가 찾던 것을 직..
「배우기를 좋아하는 것(호학好學)이 으뜸이고 영민함이 그 다음이며 재능 있는 것이 또 그 다음이지. 대체로 호학의 이점은 깊어지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높아지면 누구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천하의 재능과 영민을 다한다 해도 모두 미칠 수 없지. 그러므로 호학이 천하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야. 사람들은 모두 총명이 귀한 줄은 알면서도 실상 호학의 효험이 총명보다 수만 배가 되는 줄은 모르지. 총명이 남 같지 않다고 걱정하기보다는 호학의 뜻을 스스로 돈독히 하는 게 낫단다.」* 14/11/10 * 이토 진사이, 에서 발췌, 재구성. 성(誠) 배움 이토 진사이
하나로 꿸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 「동자가 물었다. "보통은 말하기를 박학과 다학은 같다고들 합니다만 지금 상반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째서입니까?" 대답하였다. "한 가지에서 만 가지로 나아가는 것을 박학이라 하고 만 가지에다 만 가지를 더하는 것을 다학이라 하는 것이다. 박학은 뿌리 있는 나무와 같아서 뿌리에서 줄기로, 가지로, 잎으로, 꽃과 열매로 뻗어가지. 번성하고 빽빽하게 자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무성하지만 한 기운(一氣)이 흘러 닿지 않는 곳이 없으니 자랄수록 멈출 수 없지. 다학은 오색 비단으로 만든 꽃과 같은 것이지. 나뭇가지와 이파리, 꽃과 열매가 하나하나 잘 배치되어 찬란하고 화려해서 볼만하고 사랑스럽지만 건조하고 메말라 키워 기를 수 없고 유한해 늘릴 수 없다. 이 둘은 삶과 ..
「"학문의 요체를 여쭙니다." 대답하였다. "학문의 요체는 오직 자신에게 돌이켜 찾는 데 있을 뿐이다. 『중용』에, '활쏘기는 군자와 비슷한 면이 있다. 활을 쏘아 과녁 정곡에 맞지 않으면 잘못을 자기에게 돌이켜 찾는다'라 하였고, 맹자께서 말씀하시길, '어진 사람은 행동이 활쏘기와 같다. 활 쏘는 사람은 자기 몸을 바르게 한 이후에 활을 쏘아, 쏜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자신에게 돌이켜 구할 뿐이다'라고 하셨으니 평생토록 사용해도 다 쓸 수 없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게 이것이지. 또 말씀하시길, '남을 사랑했는데도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인을 돌이켜 보고, 잘 다스리려는데 잘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를 돌이켜 보고, 예로 잘 대해 주는데 답례가 없으면 자신의 ..
"자신 안에 있는 더러움은 공격하고 남의 더러움은 공격하지 않는 것이 사특함을 없애는 것 아니겠는가?" - 공자 "자신을 책망하는 자는 마땅히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잘못할 리는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남을 탓하지 않는 데 이른 학문이 지극한 학문이다."* - 장재 14/11/03 * 이토 진사이, 논어 장재
"이 마음이 달아났음을 깨닫자마자 곧 마음은 여기에 돌아와 있다."* - 주희 14/10/31 * 박성규, 2014/01/06 - 학문이란 자기를 깨우치는 것 주희 맹자
「학문은 마치 수레를 미는 것과 같다. 힘을 써서 수레를 밀어 움직여 놓으면 저절로 굴러가서 힘쓸 필요가 없는 것과 같다. 『논어』 첫머리에 ‘배우고 늘 익히면 기쁘지 않은가’라고 한 말이 바로 그 효험이다. 배움은 기뻐하는 경지에 이르러야 저절로 그만둘 수 없게 된다. 기쁠 수 있으면 자연히 그만둘 수 없다. 마치 나무를 심는 것과 같아서, 처음에 심고 물을 주면 이내 크게 자라서 저절로 가지가 나고 잎이 자라니, 이에 더 무슨 사람의 힘이 필요하겠는가? 배우고 늘 익혀 기뻐하는 경지에 이른 뒤에는 자연히 그만두려고 원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은 다만 기쁨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라고 하겠다.」* - 주희 14/10/29 * 박성규 역주, 2013/03/04 - 저절로 주희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의 절실한 문제를 궁구해야만 비로소 의미가 있다. 독서는 이미 부차적인 것밖에 되지 않는다. 자기 자신 속에 '도리'가 완비되어 있으므로 밖에서 더 채워야 할 것은 없다. 그럼에도 성인이 반드시 책을 읽으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던 것은 자기 자신 속에 이 도리가 갖추어져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 그것을 경험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이다. 성인이 말씀하신 것은 바로 성인 자신이 일찍이 경험하였던 것이다.」* - 주희 14/10/20 * 미우라 구니오, 주희 학문
수신(修身) 혹은 수양(修養)을 철학의 중심 과제로 늘 꽉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동양의 종교나 철학 전통의 위대함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형이상학은 단지 지식으로 알아할 과제가 아니라 몸으로 증득하고 체험하고 검증해야 할 과제였다. 공자가 말했듯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로다. 「'철학'의 외양을 한 필로소피가 등장함으로써 전통유학이나 불교는 때 아니게 정체성을 의심 받고, 정당성을 도전 받게 되었다. 논리와 체계로 무장한 철학은 묻는다. "얘야, 유교는 일상의 조언들로 가득 차 있던데, 그건 철학이냐, 잠언집이냐." 그리고 유일신의 초월성을 등에 업은 '종교'는 묻는다. "불교야, 너는 무신론 같기도 하고, 다신론 같기도 한데, 너를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
"공자의 절사(絶四)*, 안연의 낙도(樂道),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 장자의 소요유(逍遙遊)는 모두가 똑같이 마음을 닦는 학문(心學)이다."** 14/08/20 * 절사(絶四): 무의(毋意: 억측), 무필(毋必: 집착), 무고(毋固: 고집), 무아(毋我: 아집). ** 선영 지음, 박완식 편역, 심학
"공부를 하면 할수록 눈에서는 야수의 눈빛이 사라진다. 남한테 들은 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자기 눈에서는 짐승의 눈빛이 사라진다."* - 최진석(서강대 철학과 교수), 중 유가에서 야(野)하다는 것, 즉 야성은 주로 부정적인 맥락으로 쓰인다. 그리하여 군자(君子)는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인의예지의 덕성을 함양해야 한다. 그러나 도가에서는 야성을 훨씬 긍정한다. 진인(眞人)은 시비분별을 따지지 않는 원초적 마음으로 인의예지의 속박에서 벗어나 천지간에 자유로이 노니는 사람이다. 최진석 교수는 도가의 입장에서 야성을 잃지 말고 거침없이 자신을 표현하는 삶을 살라고 권하고 있다. 야(野)할수록 섹시하다. 당연하다. 동어반복이다. 이상에서 나는 도가다. 그러나 현실에서 나..
「평소 팽옥린은 봉급을 받으면 집안 살림에 쓸 최소한의 돈 이외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 데 사용했다. 환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마음의 편안함을 구하기 위해 그리했던 것이다. 그는 거듭 관직을 사직하면서 학문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같이 말했다. "공부는 수를 놓는 것과 같다. 가는 바늘로 짓는 땀 하나하나에 정교한 기술이 드러나듯이 말이다. 학문에서 속성법을 찾아서는 안 된다. 스스로 총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해치는 경우가 흔하다. 반면에 보기에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무엇인가를 해내는 경우가 많다."」* 공부도 안하면서 난 맨날 이런 글이나 올린다. 14/02/26 * 신동준, 에서 봄. 2014/02/26 - 지인至人은 평범하다 학문
「영월은 중모 출신의 시골 사람이었는데, 밭 갈고 농사짓는 일이 하도 괴로워서 그의 벗에게 일러 말하기를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을 면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더니, 그 벗이 "어떠한 것도 배움보다 나은 것은 없다. 삼십 년을 배우면 가히 통달할 수 있다"라고 대답 했다. 그러자 영월이 말하기를 "내 한번 십오 년만 해보겠다. 남들이 쉬고자 할 때 나는 감히 쉬지 않을 것이고, 남들이 눕고자 할 때 나는 감히 눕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고는 십오 년을 배우더니 주周 위공이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화살이 빠르기는 하지만 불과 2리를 못 가서 멈추고, 걸음은 느리기는 하지만 삼천 리를 가도 멈추지 않는다. 이제 영월의 재능에 오래도록 (배우기를) 멈추지 않았으니, 그가 제후의 스승이 되는 것이 어찌 마..
"듣지 않는 것은 듣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은 보는 것만 못하며, 보는 것은 아는 것만 못하고, 아는 것은 실천하는 것만 못하다. 학문은 실천하는 데 이르러 그친다."* - 순자, 「유효」(儒效) 중 14/02/06 * 윤무학, 에서 봄. 2013/04/02 - 주자와 왕양명 순자
내게 순자가 맹자보다 덜 매력적인 이유는, 칸트가 헤겔보다 덜 매력적인 이유와 비슷하다. 순자와 칸트는 신비주의를 이론에서 배제하여 합리적 철학은 얻었을지 몰라도 그로 인해 영원의 철학(영성, 하느님, 신, 天, Sprit, 뭐라 부르든)을 잃어버렸다. 도올을 포함해 순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사서에 맹자가 아니라 순자가 들어갔으면 어땠을까 아쉬워한다. 그러나 나는 순자가 아닌 맹자를 택한 주자의 안목은 과연 탁월했으며, 또한 그것이 신유학이 도달한 경지가 높았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서에 맹자가 아닌 순자가 들어갔으면 중국도 서양 못지않은 과학 문명을 발달시켰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순자 번역가의 주장은 순자가 들어도 코웃음 칠 속류 관념론이다. 사서에 패도가 아닌 왕도를 주장하는 맹자가 들어갔다고 중국..
"배우며 도를 구하는 일은 생이 다하기까지 멈출 수 없다."* - 『순자』의 첫 편 「권학」의 첫머리에 나오는 첫 번째 어구. 14/01/18 * 둥팡숴, 에서 봄. 순자
"이렇게 전개되어가는 자기가 곧 정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의 이 정신의 모습이 바로 학문이다. 학문이란 정신 그 스스로가 현실성을 띤 가운데 자기의 고유한 터전 위에 쌓아올린 정신의 왕국이다."* "학문적인 지의 본성과 요소와 운동은 자기의식이 순수하게 자기와 마주하여 자기를 깨우치는 데 있다."* - 모두 헤겔 "학문이란, 별게 아니라 자기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 맹자 14/01/06 * 헤겔, 에서 봄. 헤겔 맹자 학문
― 어떤 하급 관리가 오랫동안 선생의 학문을 청강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학문은 매우 좋기는 하지만 공문서를 관리하고 소송을 관장하는 일이 번잡하여 학문을 할 수가 없습니다." (왕양명) 선생께서 그것을 듣고 말씀하셨다. "내가 언제 그대에게 공문서를 관리하고 소송을 관장하는 일을 떠나 허공에 매달려 강학하라고 가르친 적이 있는가? 그대에게는 이미 소송을 판결하는 일이 주어져 있으니, 그 소송을 판결하는 일에서부터 학문을 해야만 비로소 진정한 격물이다. 예를 들어 하나의 소송을 심문할 경우에 상대방의 응답이 형편없다고 화를 내서는 안되며, 그의 말이 매끄럽다고 기뻐해서도 안된다. 윗사람에게 부탁한 것을 미워하여 자기 뜻을 보태서 그를 다스려서는 안되며, 그의 간청으로 인해 자기 뜻을 굽혀서 그의..
"무릇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을 수 있고 입으로 말할 수 있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학(下學)이다.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은 상달(上達)이다. 예컨대 나무를 재배하고 물을 주는 것 따위는 하학이며, 밤낮으로 조금씩 자라서 가지가 뻗고 잎이 무성해지는 것은 바로 상달이다. 사람이 어떻게 그 생장하는 힘에 간여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무릇 힘을 기울일 수 있고 말로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모두 하학이다. 상달은 오직 하학 속에 있다. 무릇 성인이 말씀하신 내용은 비록 매우 깊고 미묘하다고 할지라도 모두 하학이다. 학문하는 사람들은 오직 하학으로부터 힘쓰기만 하면 자연히 상달하게 되기 때문에 따로 상달하는 공부를 찾을 필요..
"지렁이에게는 손톱이라든가 이빨과 같은 날카로운 도구도 없고, 단단한 힘줄과 강력한 뼈도 없지만 언제나 땅속에서 위로는 진흙을 먹고 아래로는 황천의 맛있는 물을 먹고 산다. 그것은 오직 마음을 한 군데 쏟기 때문이다. ... 두 길을 동시에 걸어가려고 하는 자는 결국 어느 한 길도 그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 『순자』, 「권학」 13/08/21 * 도올 김용옥, 에서 재인용. 순자
도올 선생은 고전번역을 박사학위로 인정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나는 이 주장에 적극 동의할 뿐 아니라, 인문학 분야를 넘어 사회과학 분야에까지 박사학위까지는 아닐지라도 번역을 중히 여기는 정신이 확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계는 마치 갈증에 미친 흡혈귀마냥 외친다. "새로움, 새로움을 다오!" 그러나 새로움은 한 분야에 통달한 장인들이나 (간신히) 개척하는 경지이지(일부 분야 제외), 학문의 길을 이제 막 걷기 시작했거나 얼마 길을 못 간 초짜들이 개척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보자, 백날 새로움 타령하는 학계에서, 정말 새로운 논문이 쏟아지고 있는가? 거의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심지어 논문을 쓴 본인조차 다시는 자기인용하지 않는 논문들, 좀 솔직하게 말해서 쓰레기같은 논문들만 쏟아져 나오고 있을..
"학문이란, 대장장이가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며 착실히 노력하는 과정 속에서 공구를 만들어내듯이, 배움의 세계 속에서 어김없이 지식을 달구어 도를 만들어내는 것."* - 자하(공자의 제자) 13/07/30 * 도올 김용옥, 에서 인용. 학문 도
"사람이 무엇을 하는 것도 어떤 것이 시키는 것이고, 사람이 무엇을 그만두는 것도 어떤 것이 시키는 것이니, 무엇을 하고 그만두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의지는 기의 통솔자이고, 기는 우리 몸에 충만한 것이어서, 의지가 가는 곳으로 기는 따라간다." "훌륭한 사람이란 어린이의 마음을 잃지 않은 사람이다." "학문하는 방법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잃어버린 마음을 되찾는 것일 뿐이다." "우환은 사람을 살리고, 안락은 사람을 죽인다." "자신의 마음을 다하는 사람은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고, 자신의 본성을 알게 되면 하늘을 알게 된다."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다." "모든 사람들이 각자 자신을 바로잡고자 한다면, 전쟁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백성이 가..
삶에 철저히 환멸을 느끼거나, 허무함을 느끼거나, 절망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자살이냐 명상이냐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해 왔다(물론 후자의 선택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나카지마 요시미치의 책 는 제3의 선택지도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반은둔'이다. 딱 절반만 은둔하는 것이다. 사는 게 권태롭지만 그렇다고 자살씩이나 할 마음은 없고, 그렇다고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위험한 삶에 뛰어들 용기는 없는 우유부단한 사람들에게 맞는 삶의 기술이다. 어차피 "당신은 머지않아 죽는다". 그러니 위선과 가식은 벗어버리고 철저히 자기중심적으로 살라는 게 저자의 메시지다. 대학이나 회사에 사표를 던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의 삶은 세상 따위는 어떻게 되든 최대한 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 반은둔..
'당신은 자기만 생각하잖아! 자고로 학문하는 사람은 민중을 사랑하고 널리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한 공부를 해야지!'라는 비판에, 이탁오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당신이 하는 것을 보면, 특별히 다른 사람과 차이 나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고, 나 역시 그렇고, 당신 또한 그렇습니다. 편안하게 살기 위해 집 구하러 다니고, 직장을 잡으려고 공부를 하고, 지위를 높여보고자 일을 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 살기 위해 머릿속으로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날마다 하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을 위해 계획하고 염려하는 것일 뿐, 남을 위해서 생각하는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꼭 입을 열어 학문을 논할 때만 '너는 자기를 위하지 말아야 하고 타인을 위해야 한다'고 합니다. '너는 자기 자신을 이롭게 하려고 ..
「대저 달구지꾼과 말은 먼 길을 가는 데 도움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중도에 그것을 잃으면 사람의 발만 같지 못하고, 힘은 사람의 힘만 못해서, 나가고자 해도 나갈 수 없으며, 물러가고자 해도 물러갈 수 없고, 좌우 어느 쪽으로도 돌이킬 수 없다. 그러나 어찌 주저앉아만 있겠는가? 돌이켜 자신을 의지해 나아갈 뿐이다. 내게 말이 없어도 발이 있으며, 내게 달구지꾼이 없어도 힘이 있지 않은가. 발이 비록 약해도 다니지 못할 정도는 아니며, 힘이 비록 약해도 거동치 못할 정도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날 듯이 뛰어 서울에 도착할 수 있었지만 나는 발이 부러질 듯한 어려움 속에서 간신히 서울에 도착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이전에 서울에 도착했다. 진실로 수고로움을 꺼리지 않으며 뒤처지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