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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이 철학이냐? 불교가 종교냐?

모험러
수신(修身) 혹은 수양(修養)을 철학의 중심 과제로 늘 꽉 부여잡고 있었다는 것, 이것이 동양의 종교나 철학 전통의 위대함이다. 동양의 전통에서 형이상학은 단지 지식으로 알아할 과제가 아니라 몸으로 증득하고 체험하고 검증해야 할 과제였다. 공자가 말했듯이,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로다.

「'철학'의 외양을 한 필로소피가 등장함으로써 전통유학이나 불교는 때 아니게 정체성을 의심 받고, 정당성을 도전 받게 되었다. 논리와 체계로 무장한 철학은 묻는다. 

"얘야, 유교는 일상의 조언들로 가득 차 있던데, 그건 철학이냐, 잠언집이냐." 

그리고 유일신의 초월성을 등에 업은 '종교'는 묻는다.

"불교야, 너는 무신론 같기도 하고, 다신론 같기도 한데, 너를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물음이다. 그것은 흡사, 선글라스를 낀 권력자가 상대방을 심문하는 자세 같은 것이었다. 6·25전쟁 때 산골의 어느 외딴집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방문을 열어젖히고,

"너희들은 누구 편이냐"

고 물었을 때 대답을 잘못했다가 죽은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불빛을 등지고 선 군인들의 신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나친 비유인지 모른다. 그러나, 동양철학은 이 갑작스러운 물음에 화들짝 놀랐다. 당황한 나머지 그들은 혹은 부끄러워하고, 혹은 변명하고, 혹은 저만큼 피해갔다. 그때 정신을 수습하고 이렇게 되물을 수 있었어야 했다.

"대체 철학은 무엇이고, 종교란 건 또 무엇이냐."

하는 수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렇게 뻗댈 수도 있어야 했다.

"유교는 철학이 아니다. 그리고 불교 또한 종교가 아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는가. 가르침이고 배움이면 족하지 않은가?"

질문을 거꾸로 던질 줄도 알아야 했다.

"예수는 과연 깨달은 사람이냐."
"아리스토텔레스의 학문은 위기지학(爲己之學)인가, 위인지학(爲人之學)인가."

한 걸은 더 나아가서 이렇게 핍박할 수 있었어야 했다. 

"주자는 학자란 '제 몸의 자득을 통해서, 바깥의 사물에 사사로이 유혹되지 않고, 자신의 내재적 본연의 선을 구현해나가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근대 이후 이 모델에 적합한 사람은 스피노자 말고 누가 있는가."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러셀 이래, 철학은 삶의 보편적 문제이며, 서양의 철학적 전통만큼 동양의 철학적 전통이 소중하다는 것, 그리고 그 둘의 융합이 몰고 올 문명사적 의미가 심대하다는 것을 인정해가고 있는 추세이다. 서양에서도 철학을 과학의 오랜 시녀로부터 해방시키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철학은 역시 지혜의 과학이다. 여기 지혜란 삶의 기술을 말한다. 삶의 최종 목표는 행복이니, 쾌락이 아니라 덕이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할 것이다. 이런 정의를 받아들인다면, 동양은 어느 전통보다 철학적이며, 이 기반 위에서 동서양의 철학은 절실하게 대화하고 풍요롭게 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동안은 이렇게 대처하지 못했다. "철학이 아니다"라는 대답은 "그것은 깊이 없는, 일상의 잔소리이다"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었다. "종교가 아니다"라는 것은 "그것은 미신이거나, 야만적 습속이다"라는 것과 진배없었다.」*

1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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