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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고 싶은가?(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본문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은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고, 소설가의 정신 세계가 궁금한 사람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는 책이다.
이 책은 소설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좌절과 희망을 동시에 준다.
좌절은 소설가가 되는 건 운이라는 것이다. 타고나야 한다,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운명론적인 느낌이 드니 일단 운이라고만 해두자. 하루키는 야구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다 생각한다. '그래, 소설을 써야 겠다.' 이것은 하루키 본인도 영어의 에피퍼니(epiphany)라는 단어를 빌려 말하는 바, 일종의 계시다. 사도 바울이 느닷없이 계시를 받아 사도의 삶을 살기 시작했듯, 하루키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와 소설가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계시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일종의 예언도 이루어진다. 생애 처음으로 쓴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가 군조 신인 문학상 후보에 오른 후, 하루키는 어느날 문득 자신이 그 상을 탈 것이며 그 이후로 꽤 괜찮은 소설가가 될 것임을 '안다'. '믿었다'가 아니다, 그냥 '안' 것이다. 책 후반부에 그가 적었듯, 이 책을 쓴 계기 중 하나는 자신이 소설가가 되었고 그리고 잘해나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신비로움과 경이감이다.
희망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핵심 재능이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재능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예술가들 특유의 광기라던가, 방랑기라던가, 천재적 영감이라던가, 그런 것들.
필요한 핵심 재능은 매일 장시간의 육체 노동을 버틸 수 있는 '의지의 견고함'이다. 소설가의 링에 오르는 건 쉬우나 버티기는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반짝반짝 빛나는 재능과 재기로, 혹은 독특한(굉장한) 체험에 의지해 소설을 쓰는 사람은 몇 번 (훌륭한) 소설을 써낼 순 있어도 곧 시들고 만다. 그래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은 소설가에 맞지 않다. 그 지난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이사크 디네센을 인용하며 말한다.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쓴다.′
결국 소설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질은 단 두가지다. 소설을 쓰고 싶은 충동과 장기간의 고독한 작업을 버틸 능력.
당신은 그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하루키는 말한다. 확인할 방법은 단 하나 밖에 없다고.
"링에, 어서 오르십시오."
평가: 기대 이상
16/12/30
*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서평(리뷰).
2017/01/03 - 젊은 소설가의 고백(움베르토 에코 가상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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