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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서평, 감상

섀도우런 홍콩(Shadowrun Hong Kong)

모험러


섀도우런 홍콩은 게임보다는 SF 소설에 가깝다. 엄청난 양의, 정말 엄청난 양의 텍스트가 나온다. 이번엔 배경이 홍콩이라 풍수지리, 음양오행, 기의 흐름 같은 테마를 중심으로 게임의 시나리오가 짜여져 있다. 동양적이고 신비적인 개념과 서구적이고 기술적인 개념 모두가 어우러져 게임은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거대 사적 기업들이 지구 전역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사회의 윤리는 무엇을 허용하고 허용할 수 없는가, 인간과 기계가 융합되는 세상에서 어디까지가 인간 본질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이 아닌 것인가, 기(氣)도 분명한 과학적 실체라면 그것의 통제와 조작은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가,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힘없는 자들과 섀도우러너들의 생존을 위한 폭력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가. 성인을 위한 게임이다. 서양에선 성인 게이머들을 존중하고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이런 게임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또 사랑받는다. 게이머들 저변의 깊이와 넓이도 우리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런 좋은 게임이 한국에도 널리 번역·소개되어 게임 문화가 더 풍부해지면 좋겠다.


. . .


[뉴스 카메라의 불빛이 꺼지자 리포터는 가식적인 표정을 거둔다. 그는 방금 인터뷰를 마친 그 후즐그레한 사내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장비를 챙기기 시작한다.]


[얼마 후, 자신을 응시하고 있는 당신을 발견한 그는 얼굴을 찡그린다.]


리포터: 뭘 봐?


주인공: 저 남자가 기업이 써준 헛소리들을 되뇌었을 뿐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


리포터: [그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계속 짐을 싼다.]

우리 모두가 기업의 헛소리들을 반복할 뿐이지, 친구. 설령 의식하고 있지 못하더라도.

당신이 본 모든 것, 당신이 배운 모든 것, 당신이 '뽑은' 공직자들 모두, 배후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돈을 댔거나 고용한 것이야.


던칸: 그래도 그들이 '내' 생각은 어찌할 수 없을걸?


리포터: [쳐다보지조차 않는다. 여전히 장비를 챙기는 중이다.]

물론 그러시겠지, 친구. '당신은' 다르겠지.


[리포터는 짐을 다 싸고 손의 먼지를 털고 일어선 후 눈살을 찌푸린채 당신의 동료들을 훑다가 다시 당신을 바라본다.]


보아하니 당신들은 저 안쪽에 있었던 모양이군. 그럼 한 번 말해보던가,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주인공: 기업의 탐욕이 힘없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봤지.


리포터: 고작 그걸 알기 위해 '구룡성채'에 들어갔었단 말인가? 지금은 2056년이야. 탐욕이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작은 엔진이라는 건 상식이지. [중략]


주인공: 그럼 진실은 어쩌고?


리포터: 진실은 내 일이 아니야. 광고 수입이 내 일이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경쟁이 요새 얼마나 치열한지 알아? 오늘날 뉴스는 BTL(전자마약)과 같은 컨텐츠에 불과해. 이 섬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 뉴스 서비스가 그저 집행위원회의 주둥이임을 알아. 젠장, 더 자세히 살펴보면 아예 집행위원회 멤버들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지.


그래도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떠먹여 주는 걸 넙죽 받아먹어.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그건 겁나는 일이거든. 그들은 자신이 소외되었다고 느끼지. 그래서 그들은 비난할 희생양이 필요하고 그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알려주는 권위자가 필요해. 우리 뉴스 네트워크는 그걸 충실히 제공할 뿐이고.*


16/08/08


* Shadowrun: Hong Kong - Extended Edition의 대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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