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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세계의 형이상학, 포스트모던을 넘어 본문
「이제 논의를 정리해보자. 원칙적으로 우리는 다양한 세계를 구성해(만들어) 볼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렇게 구성된 세계들은 그것이 '이' 세계를 얼마나 잘 설명해주는가에 따라 '살아남을' 것이다. 아울러 세계에 대한 이러한 관점은 이른바 문화적 세계들의 존재론적 근거를 마련해줄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파생세계로서의 다양한 세계는 자신의 존재 근거를 가장 근원적인 토대세계이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생활세계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한에서 이떤 종류의 파생세계들은 새로운 학문적 탐구 영역으로 주어질 수도 있다.
가능세계의 형이상학은 하나의 제안이다. 그것은 이 세계에 대해 구성 가능한 설명 모델들 일반의 구조적 특성을 해명하는 일, 그리고 개개의 학문 탐구가 그려내는 세계들을 하나의 통합적인 시선에서 볼 수 있는 개념틀을 제공하는 일을 과제로 삼는다. 왜냐하면 학문적 탐구 자체가 가능세계를 묘사하는 일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가능세계들 중 어떤 것은 현실에 좀더 가깝고, 또 어떤 것은 순전히 논리적으로만 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설명 모델이 좀더 토대적이고, 어떤 것은 파생적인지, 또 그런 모델들의 지속 가능성의 조건과 개개 설명 모델의 진화의 조건은 무엇인지 등의 학문 이론적 과제들은 가능세계의 형이상학을 추동해가는 주요한 물음들이 될 것이다. 훨씬 더 다양한 논의를 통해 구체화되어야 할 이러한 과제들 중 오늘날의 학문 현실에서 중요한 한 가지는 그 가능성의 세계에 대한 탐구가 현실의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좋은 길잡이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20세기 지성의 반형이상학적 경향에 대한 대안적 제안이기도 하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두드러졌던 지적 경향은 보편성, 절대성,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 형이상학에 대한 거부였다. 이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지적했던 계몽주의적 기획의 좌초와 학문 일반의 전형으로 새롭게 등장한 자연과학적 학문상이 시너지를 낸 결과이기도 하다. 계몽주의적 기획이 빚어낸 정치적 결과인 제국주의와 공산주의적 유토피아가 하나의 허구로 입증됨으로써, 그리고 포스트모던적 태도를 통해 정점에 달한 지난 세기의 지적 경향은 인간 지성의 불완전성을 순순히 인정하는 자연과학의 겸손한 태도를 통해 시대적 조류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 지성의 불완전성은 보편타당한 진리가 불가능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바로 그런 사정이 보편타당한 진리에 대한 탐구로서 학문이 계속되어야 할 이유를 설명해준다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전환은 학문적 탐구와 올바른 삶 사이의 간극이 심각할 정도로 벌어져버린 오늘날 우리가 처한 학문 현실에 대한 가능한 돌파구를 제시해주기도 한다. 물론 그런 돌파구의 조건은 과거의 잘못을 단순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역사적 경험에 대한 판단 능녁을 가진 구성원과 그런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시스템의 진화가 그것을 가능케 할 것이다.」*
16/05/27
* 박승억, <학문의 진화: 학문 개념의 변화와 새로운 형이상학>
2016/05/20 - 과학은 다시 형이상학을 요청한다
2016/05/21 - 새로운 형이상학은 복잡계적 다양성을 지지한다
2016/05/26 - 문화세계도 자연종이며, 파생세계는 가능성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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