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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쓰레기의 양산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 폐기 장소는 바닥나고 있다 본문

명문장, 명구절

인간쓰레기의 양산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 폐기 장소는 바닥나고 있다

모험러

「현대는 처음부터 엄청난 규모의 인간쓰레기를 만들고 또 계속 만들어내고 있다.


인간쓰레기의 양산은 (여전히 전면 가동 중이며 생산 능력은 충분히 발휘 중인) 현대 산업의 두 분야에서 특히 대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분야 중 첫 번째 분야의 분명한 기능은 사회질서의 생산과 재생산이었다. 어떤 모델의 질서든 선별적이며, 인간이라는 원료 중 새로운 질서에 부적합한 부분들, 즉 어떠한 것이든 틈새를 메울 수 없거나 그렇게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은 부분들을 잘라내고, 다듬고, 분리하고 격리하며, 쫓아낼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질서 구축 과정의 다른 쪽 끝에서는 그러한 부분들이 '쓸모 있는' 제품과 구분되는 '쓰레기'로 나타난다.


방대한 양의 인간쓰레기를 지속적으로 쏟아내는 것으로 알려진 현대 산업의 두 번째 분야는 경제 발전이었다 ― 이것은 이번에는 겨우 인간적 생존을 이어가는 몇 가지 방법과 수단의 무효화와 해체 그리고 결국에는 제거를 요구한다. 그러한 생계유지 방법으로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생산성과 수익성의 기준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것이다. 평가 절하된 삶의 형태를 영위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경제 활동을 위한 새로운, 점점 더 유연해지고 영리해지는 배치 과정에서 집단으로 수용될 수 없게 된다. 그들은 새로운 사회적 배치가 적법한 것/의무적인 것으로 만든 생계수단에 대한 접근을  거부당하는 한편 이제 가치가 떨어진 정통적인 방식으로는 더 이상 생존을 보장받지 못한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들은 경제 발전의 쓰레기가 된다.


하지만 인간쓰레기가 집적되면서 파괴적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을 결과는 현대사의 대부분 동안 현대의 또 다른 혁신, 즉 폐기물처리 산업 덕분에 그나마 완화되고, 상쇄되고, 또는 적어도 경감될 수 있었다. 이 산업은 지구의 큰 부분이 '인류의' 모든 '잉여', 즉 현대화된 영역들에서 양산된 인간쓰레기들을 싣고 와서 쏟아낸 다음 오염을 제거하는 폐기장이 되었기 때문에 번성하고 있다 ―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가 연소와 폭발의 위험을 모면하고 있다.


지구촌에는 지금 그러한 폐기 장소가 바닥나고 있다. 이는 대체로 전 지구로 확산된 현대적 생활양식의 놀라운 성공 때문이다(최소한 로자 룩셈부르크 때부터 현대[성]란 궁극적으로 '제 꼬리를 제가 삼키는' 뱀처럼 자살적인 경향을 띤 것으로 의심받아왔다). 폐기 장소는 점점 더 공급이 달리고 있다. 인간쓰레기의 양산은 줄어들지 않는 반면(오히려 지구화 과정 덕분에 양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폐기물처리 산업은 큰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현대의 전통이 되어버린 이러한 인간쓰레기 처리 방식들은 더 이상 실현 가능하지 않으며, 새로운 방식은 작동은커녕 고안되지도 않았다. 전 세계적 무질서의 단층선을 따라 인간쓰레기들이 산더미처럼 쌓이고, 최초의 신호들은 자가 연소와 금방 폭발할 듯한 징후들로 치닫는 경향을 배가시키고 있다.」*


15/10/21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리퀴드 러브. (권태우 & 조형준, Trans.).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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