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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이 되는 삶과 쓰레기가 되는 삶 본문

명문장, 명구절

여행객이 되는 삶과 쓰레기가 되는 삶

모험러

「'삶의 전략'과 관련된 논의에서 바우만은 여행객이라는 개념을 언급합니다. 세계화는 여행자의 삶을 부추기지요. 이곳저곳을 방문하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하고는 다시 또 떠나는 것이죠. 이러한 삶의 형태가 갖는 윤리적 함의는 무엇일까요? 바우만이 보기에 이러한 글로벌 여행자들은 일종의 글로벌 엘리트들에 해당합니다. 공항 출국 라운지를 들락거리는 그들에게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휴가지 호텔과도 같은 것이죠. 바우만은 이 여행자라는 단어를 특정한 사회 계층을 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단순한 휴가객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예를 들면,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일어나자마자 가장 먼저 여행객처럼 홀연히 일본을 떠났던 금융 투자자들의 경우를 들 수 있겠죠. 소위 글로벌 엘리트라 불리는 이들은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랑곳하지 않고, 전용기를 타고 몇 시간 만에 떠나버리는 겁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일본이란 전혀 인간적 유대를 맺고 있던 곳이 아니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화의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삶의 양식은 철저히 제한되어 있지요. 그들에겐 이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난민 캠프나 빈민촌 등으로 이동이 강요당하는 일은 있겠지만 말이죠. 이것이 바로 쓰레기가 되는 삶을 양산하는 세계화의 구조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화가 갖는 양면의 거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편에는, 일본이나 한국, 혹은 태국 등을 다니는 글로벌 엘리트들이 있고, 이러한 여행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취한 후에 싹 사라지지요. 그들은 그 어떤 윤리적 관계에도 속박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반대편에는, 쓰레기 같은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이들이 존재하지요. 이들에게도 윤리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계층은 그로부터 '배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첫째, 공간의 사회적 배치가 구분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난민촌이나 빈민가 등은 세계화의 그물망 밖에 존재합니다. 외부 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경찰, 의사, 브로커 등의 매개를 거쳐야만 하고, 이러한 어려움이 점점 더 이들을 고립시키는 것이지요. 둘째, 세계화가 자유로운 이동, 즉 여행객 유형의 삶의 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이상, 한 장소에 고착되어 삶의 권리를 박탈당한 이들은 얼굴 없는 대중이 되어 사회적 위협으로 간주됩니다. 그리고 나서 사회는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저들을 내쫓아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가진 것을 해칠 수 있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호모 사케르들을 사회속으로 편입시키는 방법을 고안하는 것, 배제의 논리를 격파하고 인간 공생의 전략을 모색하는 것, 이것이 곧 세계화에 대한 바우만 논의의 핵심이라 할 수 일을 겁니다.」*


- 키스 테스터


15/08/08


* 인디고 연구소(InK) 기획. (2014). 희망, 살아 있는 자의 의무: 지그문트 바우만 인터뷰. 서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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