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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한 휴머니티의 긴급한 필요성 본문
「실제로, '인권'을 부여받은, 오직 그것만 부여받은 인간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즉 '인'권을 담고 제대로 유지하기 위해 훨씬 더 잘 제도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다른, 즉 더 잘 옹호할 수 있는 다른 권리는 아무것도 부여받지 못한 인간은 모든 실천적 면에서 상상할 수도 없다. 인간들의 인간다움을 보장하려면 분명 사회적인, 전적으로 사회적 역능이 요구된다. 그리고 근대라는 역사적 시기 내내 그러한 '역능'은 변함없이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경계선을 그릴 수 있는 역능이 되어버렸고, 현대에는 시민과 이방인 사이의 경계선으로 위장하고 있다. 주권국가들의 영토로 잘게 쪼개진 이 지구에서 집 없는 자들은 권리도 없고, 법 앞에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에게 적용할 법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이 받고 있는 부당한 대우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거나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법이 없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다.
『전체주의의 기원』이 나온 몇 년 후에 쓴 칼 야스퍼스론에서 아렌트는 이전 모든 세대에게 '휴머니티'는 그저 하나의 개념이나 이상(덧붙이자면, 철학적 요청, 휴머니스트들의 꿈, 때로는 돌격 구호. 하지만 정치적 행동의 조직화 원리였던 적은 거의 없었다)에 불과했지만 이제 "긴급한 현실성을 가진 어떤 것"이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것이 극도로 긴급한 현안이 된 이유는 서구가 가한 충격이 나머지 세계를 서구의 기술 발달의 산물들로 흠뻑 적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해체 과정"도 나머지 세계로 수출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형이상학적·종교적 믿음들의 붕괴, 자연과학의 경이로운 발전 그리고 민족-국가가 가장 두드러진 모습으로 등장한 유일한 정부 형태로 부상한 것 등이 있었다. 서구에서 "오래된 믿음과 정치적 생활방식의 기반을 무너뜨리는 데" 여러 세기가 필요했던 힘들도 이젠 "세계의 다른 모든 부분들에서 그렇게 하는 데"는 불과 수십 년밖에 걸리지 않는다.
아렌트는 이러한 종류의 통일[획일화]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종류의 인류의 연대"를 낳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다. 이 지구에 사는 인간의 각 부분은 다른 모든 부분들에 의해 취약해질 수 있으며, 다른 부분들 각자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위협과 위험과 공포의 '연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 속에 '지구촌의 통합'이란, 세계 ― "끊임없이 팽창 중이며 그 자체는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세계" ― 의 저 먼 곳에서 배태되거나 배양되는 위협들에 대한 공포를 핵심으로 하게 된다.」*
15/10/20
* 지그문트 바우만. (2013). 리퀴드 러브. (권태우 & 조형준, Trans.). 새물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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