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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적 현대의 삶

모험러
지그문트 바우만 선생은 현대 세계는 모든 것들이 액체처럼 출렁거리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라고 말한다. 

「이 세계에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고사하고 지속성을 띠는 것조차 전혀 없다. 오늘은 유용하고 필수불가결한 물건들도 극히 일부의 예외를 빼면 내일은 쓰레기가 된다. 어떤 것도 진정으로 필요하지 않으며, 어떤 것도 대체 불가능하지 않다. 모든 것은 임박한 죽음이라는 낙인이 찍힌 채 태어나고, '사용 기한' 딱지가 붙어 생산 라인을 떠난다. 건축은 철거 허가(필요하다면)가 나지 않는 한 시작도 되지 않고, 계약서는 시한이 정해지거나 미래의 위험 요소에 따른 종료가 허락되지 않는 한 서명되지 않는다. 최종적인 그 어떤 조치나 선택도 없으며, 변경 못할 그 어떤 것도 없다. 어떤 서약도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할 만큼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태어난 것이든 만들어진 것이든, 인간이든 아니든, 유한하며 없어져도 상관없는 존재이다. 유동적 현대 세계의 거주민들과 그들의 노고와 창조물들 위에 유령이 떠돌고 있다. 잉여라는 유령이.
 유동적 현대는 과잉, 잉여, 쓰레기, 그리고 쓰레기 처리의 문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버려지는 것, 쓰레기장으로 갈 차례가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가장 절실히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일들이 우리에게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확실성이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편재하는 제외의 위협으로부터 면제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유해한 악취가 풍기는 쓰레기 더미로 떨어지지 않기를 꿈꾼다.」

그러나 견고한 결속, 긴밀한 공동체, 성숙한 관계가 거의 다 해체된 상황에서 그 꿈은 역시 그냥 꿈일 뿐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운명을 공유한다는 느낌도, 형제애도, 대열에 합류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발맞추어 행진하려는 충동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연대감이 싹트고 뿌리내릴 가망은 거의 없다. 인간관계는 대부분 취약하고 피상적인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친족과 친구와 이웃이 제공하던 진정한 공동체와 안전망을 고통스럽도록 그리워한다. 스마트폰은 잃어버린 친밀성을 대신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카카오톡 명단이 잃어버린 공동체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가상의 공동체들은 흥미로워 보일지는 모르지만 친밀성에 대한 환상과 공동체의 가면을 만들어낼 뿐이다." 환상은 현실의 빈약한 대체물이다. 환상의 공동체는 방대한데, 현실의 공동체는 왜소하다.

소비 시장은 다양한 상품을 우리에게 제시하며 우리의 이 타는 갈증을 없애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갈증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아마도 소모품으로 재활용될 수 있겠지만 소모품은 인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상품은 가짜인 것이다. 가짜에는 진짜에는 있는 뿌리, 친족 관계, 우정, 사랑이 없다. 가짜를 통해 갈증이 해소될 수 있을 것 같았으면, 우리 사회에 불행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도 '진짜배기' 인간보다 대체 소모품을 더 찾을 것 같다. 우정, 사랑, 공동체는 자기희생, 양보, 타협 같은 성가신 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싫증 난다고 다른 신상품으로 교체하기도 어렵다. 쓸모없다고 버릴 수도 없다. 

우리는 애라 모르겠다, 다시 환상을 선택하고, 외로움을 선택하고,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편리함을 선택한 후, 언젠가 우리 자신이 쓰레기통에 들어갈 날을 불안에 떨며 기다릴 것이다.

13/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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