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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과 현자 본문
「관건은 선견지명이나 명상에 있는 것이지, 점술이나 예언자의 흥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가시와 비가시가 함께 생각되지 아니하면, 인간은 오직 혼돈으로 빠져드는 극렬한 도취의 순간에 잠긴 채 자신을 감싸는 한계의 벽을 무너뜨리며 시간의 틀을 부숴 버린다. 인간의 정상적 기능이 혼돈 속에 빠져듦으로 말미암아 단 하나의 기능만이 과도하게 작용하면서 신들린 듯 진실을 말하게 된다. 물론 현자는 이러한 무당과는 완전히 상반된다. 현자는 실재에 대한 깊은 탐구를 통해 실재에 생기를 불어넣는 리와 자발적으로 통하게 된다. 비가시는 단지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포착될 수 있다. 지각될 수 있는 최소의 전조를 통해 실재를 파악함이란 앞으로의 흐름을 밝혀주어 향후 향방에도 수정을 가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함과도 같은 것이다.」*
15/09/23
* 프랑수아 줄리앙. (2003). 운행과 창조. (유병태, Trans.). 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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