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러의 책방
주역을 연구하는 목적은 의식을 일깨우는 데 있다 본문
「왕부지는 <주역>을 보는 두 극단적 관점의 오류를 밝힌다. 그 오류의 하나는 <주역>을 도덕론으로서만 고찰하여 <주역>에 내포된 투시력을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며, 다른 하나는 <주역>을 운명서로서만 고찰하여 예견능력의 토대인 도덕적 요소를 간과해버리는 관점이다. 사실 <주역>은 다음 두 가지 측면을 갖추고 있다. 하나는, 사람은 운행으로서의 모든 생성에 내재하는 일관성의 개념 ― 연속과 변이, 시초와 성향 ― 에 의거할 때 비가시에 이를 수 있으며 그 효능성과 맺어져 경향을 탐지하고 변화를 예견할 수 있음이며, 다른 하나는 바로 생성에 관련된 모든 징후는 때로 상황이 요구하는 대로 운행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는 반면, 정도로부터 탈선할 수도 있는 까닭에 항상 윤리적 의미를 지닌다는 점이다. 따라서 <주역>은 사적인 목적을 추구하는, 도덕성이 결여된 자들의 도구가 될 수 없다. (이 점에서 <주역>은 당대當代의 다른 점서나 <주역>에 자주 차용된 미신적인 해석들과는 다르다.) 도덕성이란 운행의 논리를 따르는 데 있는 반면, 오류와 과오는 운행의 논리를 역행하거나 탈선하는 데 있다. <주역>에서 전통적으로 말해지는 '길과 흉'과 '득과 실'은 행운이나 불운이 아니라 '선'이나 '악'을 뜻한다. 교대와 대체를 통한 괘의 구조는 '귀함과 천함', '해로움과 무사함'등의 상반된 상황을 두루 거침에도 그 어느 쪽으로도 치우침이 없다. 그러면서 괘의 구조는 수시로 변화하는 매 상황의 규칙성을 밝힌다. 적합하지 않는 조건이란 없으며 사람이 평정을 찾을 수 없는 조건 또한 없다. 그러니 관건은 상황에 부응하고 순응할 줄 아는 것이다. 효와 위치의 관계를 통해 괘상이 우리에게 던지는 경고는 이렇듯 전체의 모습(만물의 전반적인 상황과 우리와의 상호관계)을 고려하지 않은 채 개인의 의도나 욕망에 따라 각자의 위치로부터 벗어나려는 데서 야기되는 위험이다. 그러므로 <주역>은 운행으로부터 잇속을 취하는 요령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신이 처한 상황이 요구하는 바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는 가를, 또한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모두의 관점에서 가장 이로운 결과로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상황의 흐름을 예견하는 것은 자기성찰을 동반한다. 그리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현재를 수정하기 위함일 따름이다. 괘를 연구하고 조합을 행하는 목적은 의식을 끝없이 일깨우는 데 있다.(이는 신유가전통에서 인仁이 뜻하는 바이다.) 의식은 운행에 부합하려는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보다 주의 깊게 내면이 정도와 일치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괘를 연구하는 태도는 (행동거지를 통해 이미 들어선 방향이 드러나기 전일 망정)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면 안 된다. 항상 엄정함을 견지하면서 모든 조절의 뿌리에 머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맹자는 사리사욕을 공동체의 요구인 공정성에 대립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제시하였다. 고대 주석과 왕부지가 이미 명시한 것처럼, <주역>은 이 대립을 전반적인 운행논리와 결부시켜 (개인과 집단의) 도덕의 토대로서 간직하려 했다. 즉 가장 부정적인 리利의 개념도 가장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다만 이는 리가 운행에 도움이 되고 그 흐름에 협력한다는 의미에 한해서이다. 만물에 대해 아무런 차별 없이 행해지는 이로움은 하늘의 덕성이다. 마찬가지로 각자의 변화가 올바르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 각자의 완성에 기여함은 현자의 덕성이다. 따라서 리의 개념도 가장 보편적이고 실천적이며 나아가 가장 객관적인 긍정성 속에 포괄시키는 경우에 한해서는 바로 맹자의 입장이 지향하는 이상을 내포하는 개념이다. 자신에게 이로운 것은 모두에게 이롭기 마련이다.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공동체에게 도움을 주는 이로움보다 현실적으로 더 적절한 이로움이란 없다. 그렇다면 다시금 확인토록 하자. 우주관과 도덕관은 논리적으로 구분될 수 없으니, 세계를 보는 시각과 자신을 보는 시각은 긴밀하게 결속되어 있음을. 이 점에서 스토아학파의 논지는 유가의 논지와 만난다.」*
15/09/26
* 프랑수아 줄리앙. (2003). 운행과 창조. (유병태, Trans.). 케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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